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10 년도

2010. 4. 18 /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 마태복음 28:16-20

람보 2 2015. 4. 4. 23:13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2010.4.18)

 

본문) 마태복음 28:16-20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자, 우리는 이제 마침내 마태복음의 맨 끝에 이르렀습니다. 오늘로써 저는 마태복음 강해설교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써 네 복음서 전체의 강해설교 역시 끝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행한 네 복음서 강해설교 내용이 전부 다 우리 교회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보관되어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언제든지 와서 읽으실 수 있고 이제 이것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어쨌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갈릴리로 가셨다고 오늘의 본문은 증거합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가라는 명령을 들은 제자들도 역시 갈릴리로 갔습니다.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이 어디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제자들은 예수를 만났다고 분명히 오늘의 본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예수께 절을 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기뻤을 것이며,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뜻밖의 표현이 하나 들어있습니다. 17절에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표현입니다. 이 간단한 기록을 통해서 마태복음 기자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아님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앞에서 보았던 8절 말씀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8장 1절부터를 보면 안식일이 지나고 이레의 첫날 동틀 무렵에 무덤을 찾아갔던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7절까지를 읽어보면 그 두 여인은 그때까지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즉 자기들의 눈으로 예수가 부활하신 것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예수가 살아나셨다고, 그의 무덤이 비었다고 하는 말만 전해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8절에 의하면 “여자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이 엇갈려서, 급히 무덤을 떠나, 이 소식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에 그런 이야기만 듣고 기쁨에 들떠서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달려가다가 도중에 예수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두 여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것이 먼저가 아니라 들은 소식을 전한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 두 여인은 결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기만 한 상태에서 의심없는 기쁨으로 나타나는 신앙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제자들 중에서 직접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도 여전히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결국 신앙은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보아야 믿겠다는 것은 결국 신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 이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요? 18절부터 20절까지를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이것은 한 마디로 왕의 칙령입니다. 예수 자신이 왕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일찍이 마태복음 2장에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아기 예수가 태어나셨을 때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복음 2:2)

 

그렇습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예수가 단순히 유대인만의 왕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닌 세상의 왕,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구약에서 메시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고레스 왕의 칙령을 생각나게 해 줍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를 빈다. 그들은 모두 올라가게 하여라.’ ” (역대지하 36:23)

 

보십시오.

당시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렸던 고레스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권세를 가지고 칙령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정복했던 고레스 왕이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그러니 예수야말로 고레스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만왕의 왕이요, 구세주라는 것을 마태복음 기자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가 만왕의 왕이요, 구세주라는 표현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활동하고, 마태복음 기자가 복음서를 기록하던 때는 로마가 세계를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공화정이 끝나고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황제는 단순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살아있는 신으로 숭배받던 존재요, 로마 황제만이 만왕의 왕이요, 구세주로 섬김을 받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 황제 대신 다른 누군가를 만왕의 왕이요 구세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입니다. 그렇게 고백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요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 밖에 없는 엄청난 사건인 것입니다.

 

사실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선 것은 대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장로들 같은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로마 제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세력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총독 빌라도로 대표되는 로마 제국은 그 정체를 숨긴 채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반대세력들, 독립세력들을 감시하다가 조금이라도 반역의 낌새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나타나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요세푸스의 역사에 의하면 한꺼번에 삼천 명을 십자가에 매단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사실은 예수도 바로 그렇게 희생당한 인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은 예수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팻말을 붙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나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라고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과 땅의 주인은 로마 제국과 그 황제가 아니라 예수라는 놀라운 선포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권력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으며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력들이 아무리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 하지 못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 권력들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며, 그 권력들은 결코 정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이 아님을 예수께서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상에는 마치 절대 권력을 쥔 것처럼 행세하는 권력자들이 세계 곳곳에 있습니다. 미국의 부시가 대표적인 예이고, 우리 가까이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권력자들이 그 권력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지 않을 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세를 가지고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는 그 권세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끊임없는 교회성장을 합리화하고 있지요. 그러나 저는 여기서 오직 한 가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명령한 것이 대체 무엇인가?

 

사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행하신 설교도 많고, 보여주신 기적도 아주 많습니다. 그 많은 설교나 기적을 관통하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 명령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고 보여주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의 첫 번째 설교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로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시고,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복음서 전체는 바로 그것을 증거하기 위한 책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은 바로 너희들도 나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헌신하라는 명령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한 가지 복을 허락하셨으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축복입니다. 임마누엘의 축복 말입니다.

 

임마누엘,

마태복음 1장에서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났던 천사가 전했던 유명한 말씀에 나오는 그 표현입니다.

“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이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이르시기를,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2:20-23)

 

그렇습니다.

예수가 태어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나타내는 사건이며, 바로 그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 역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산으로 와서 당신을 만나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우리들과도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생명을 사랑하고, 정의를 이루기 위해 희생을 각오할 때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이 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이요, 복음서입니다. 이 약속을 기억하며 우리가 헌신할 것을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이 약속을 기억하며 앞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