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10 년도

2010. 2. 21 / 주님의 참된 제자 / 마태복음 27:57-61

람보 2 2015. 4. 4. 22:51

주님의 참된 제자(2010. 2. 21)

 

본문) 마태복음 27:57-61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출신으로 요셉이라고 하는 한 부자가 왔다.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이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청하니, 빌라도가 내어주라고 명령하였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삼베로 싸서, 바위를 뚫어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에, 무덤 어귀에다가 큰 돌을 굴려 놓고 갔다. 거기 무덤 맞은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구약 신명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럽혀서는 안됩니다." (신명기 21:22~23)

 

율법에 의하면 무언가 큰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은 죽어서도 그 죄의 대가를 치르기 위하여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두고 그것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도록 깨우쳐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죄를 지어 처형을 당하고 그 주검이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죽어서도 영원히 수치를 당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죽을 죄를 지은 사람마저도 긍휼히 여기셔서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해가 지기 전에 나무에 매달린 주검을 내려서 장례를 치러 주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구절에 근거해서 유대인들은 누군가가 죽으면 하루가 지나기 전에, 즉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살던 지역이 매우 더운 지역이니까 주검이 쉽게 부패한다는 것도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또한 창세기 3장 19절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흙에서 왔으므로 될 수 있으면 빨리 흙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덤에 시신을 안치할 때 세마포로 싸거나 나무관을 이용한 것도 시신이 빨리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어쨌든 유대의 관습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는 겉으로만 보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죽은 사람의 주검을 만지는 것도 부정을 타는 일일진대 하물며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의 주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좀처럼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22~24)

 

자,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어쨌든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도 율법의 명령대로 해 지기 전에 시신을 내려서 무덤에 장사지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운명하신 시간이 오후 세 시이니까 남은 시간은 길어야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제 해가 지고나면 안식일이 시작되니 아주 급하게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장례는 가족들이 치러야 하고, 가족들이 그 시신을 가족묘에다가 묻어야 하는데 시간도 모자라고 갈릴리 촌구석에 살던 예수님의 가족들이 예루살렘 성에 가족묘를 준비해 두었을 리도 없고, 장례식 준비는 제대로 해 놓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상태였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게 해서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시지 못한다면 예수는 이중으로 수치를 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바로 이때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아리마대 출신 요셉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출신 요셉, 예수의 장례를 맡아 치름으로써 네 복음서에 다 그 이름이 기록되고 영원히 기억된 인물 요셉, 네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빌라도는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여, 백부장을 불러서, 예수가 죽은 지 오래 되었는지를 물어 보았다.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알아보고 나서, 시신을 요셉에게 내어주었다. 요셉은 삼베를 사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려다가 그 삼베로 싸서, 바위를 깎아서 만든 무덤에 그를 모시고, 무덤 어귀에 돌을 굴려 막아놓았다." (마가복음 15:42~46)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공의회 의원이고,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유대사람의 고을 아리마대 출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삼베로 싼 다음에,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에다가 모셨다. 그 무덤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 날은 준비일이고,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누가복음 23:50~54)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게 하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였다. 그는 예수의 제자인데,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빌라도가 허락하니, 그는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렸다.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왔다. 그들은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곳에,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 날은 유대 사람이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고, 또 무덤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요한복음 19:38~42)

 

이 세 복음서에 나오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요셉은 아리마대가 고향이고, 명망있는 산헤드린 의원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고,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전국을 돌아다니시며 말씀을 선포하시고, 기적을 행하실 때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분이 신분인지라 차마 드러내지는 못하고 숨어서 말씀을 새기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산헤드린이 예수를 붙잡아다가 재판하고 사형에 처할 때 그는 그 결정과 처사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반대했다는 뜻이 아니라 소극적으로 찬성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그는 예수의 숨겨진 제자,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던 제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을 나타내는 네 복음서의 표현들 중에서 마태는 유독 그가 부자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마태에 의하면 이것 역시 구약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체포되어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그 세대 사람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그가 사람 사는 땅에서

격리된 것을 보고서,

그것이 바로 형벌을 받아야 할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느냐?

그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약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 (이사야서 53:7~9)

 

그렇습니다.

메시아는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악한 사람과 함께 묻힐 무덤을 주었고, "죽어서 부자와 함께 들어가게 하였다"는 예언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어쨌든 요셉은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청했습니다. 비록 성경에는 이렇게 너무나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죄수의 몸으로 죽은 사람을, 그것도 로마제국의 반역자나 마찬가지인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겠다고 나섰으니 자칫 잘못하면 그 일당으로 몰려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라도를 찾아가고, 시신을 내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또한 빌라도가 예수의 시신을 내어 주라고 명령하자 요셉은 예수의 시신을 가져다가, 깨끗한 삼베로 싸서, 바위를 뚫어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에, 무덤 어귀에다가 큰 돌을 굴려 놓고 갔다고 복음서 기자는 증거합니다.

 

이것 역시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율법에 누누이 나오는 대로 시신을 만진다는 것은, 더구나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알려진 나무에 매달린 사람의 시신을 만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온 몸이 부정타는 일이요,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이제 곧 해가 지고나면 거룩하게 지켜야 할 안식일이 시작되고, 그러면 부정을 깨끗케 할 방법이 없는데 요셉은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의 시신을 가져다가 무덤에 모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비록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용기가 없고, 자기의 믿음을 좀처럼 드러내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마태복음에 의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자기의 목숨과 명예와 부를 몽땅 내걸고 예수의 시신을 모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기자는 한 마디로 "그도 역시 예수의 제자이다"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결국 누가 진정한 제자인가는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수가 살아계실 때, 능력을 행하시고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실 때는 너도나도 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큰소리치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기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께서 붙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자 그 많던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아서 용기가 없어 보였던 아리마대 요셉만은 그 어려움의 순간에, 그 위험한 순간에 용감하게 자기가 예수의 제자라는 신분을 밝히면서, 자기 몸이 불결하게 되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시신을 장사지냄으로써 예수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갈 때 주님의 제자라고 큰소리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크고 잘 될 때 거기에 다니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가 작고 형편이 어려울 때 거기에 다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일들을 통해 누가 과연 주님의 참된 제자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요셉은 주님의 참된 제자로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어떤 제자인가 스슬 되돌아보며 아리마대 사람 요셉같이 주님이 힘들고 어려우실 때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