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하나도 돌 위에(2009. 8. 30)
본문) 마태복음 24:1-3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그에게 가리켜 보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에,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이제 우리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설교 중에서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설교인 종말설교 앞에 섰습니다. 다시 한 번 다섯 편의 설교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5-7장 산상설교
10장 제자 파송 설교
13장 비유 설교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밀과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세 가지의 비유 시리즈
- 보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 바다에 던져진 그물
18장 공동체 설교
24-25장 종말 설교
그렇다면 종말 설교는 어떤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24:1-3 서론 = 성전 파괴 예고
4-14 진통의 시작 = 종말 예고 전조들
15-28 큰 재난 = 종말 직전 전조들
29-31 인자의 내림 = 종말 사건들
32-44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24:45-25:46 종말 비유 네 편
24:45-51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의 비유
25:1-13 열 처녀의 비유
14-30 달란트 비유
31-46 최후의 심판 비유
자, 오늘의 본문인 1-3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시고, 그것을 통해 제자들이 세상 끝 날에 있을 징조가 무엇인지를 묻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당시 호화찬란하게 서 있으면서 그 위용을 자랑하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고하셨고, 그 말씀에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23:37-39절의 말씀과 오늘의 본문 1-2절의 말씀으로 충격을 받은 제자들이 즉각적으로 세상의 종말에 대해 묻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종말 설교로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한탄하신 후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키며 뭐라고 말했는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께서 왜 생뚱맞게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 말의 내용이 나와 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 (마가복음 13:1-2)
“몇몇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서, 아름다운 돌과 봉헌물로 꾸며 놓았다고 말들을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 (누가복음 21:5-6)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공연히, 아무런 이유 없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돌로 쌓은 성전 건물을 바라보며 대단하다고 감탄하니까, 즉 성전의 크기와 겉모양만을 보고 감탄하니까 그것이 곧 망할 것이라고, 무너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도대체 얼마나 크고 화려했기에 제자들이 그렇게 감탄하고 자랑스러워 했던가요? 요한복음 2장에 힌트가 되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에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요?’ ” (요한복음 2:19-20)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존재했던 예루살렘 성전은 마흔여섯 해나 걸려 세워진 건물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이 구약 에스라기에 나와 있습니다. 에스라기 1장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가 왕위에 오른 첫해이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하늘의 주 하나님이 나에게 이 땅에 있는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셨다. 또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그곳에 계시는 하나님 곧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라. 그 백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빈다. 잡혀온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누구든지 귀국할 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이웃에 사는 사람은 그를 도와주어라. 은과 금과 세간과 가축을 주고,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에 바칠 자원예물도 들려서 보내도록 하여라.’ “
(에스라기 1:1-4)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레스 칙령입니다. 그 칙령에 따라 유대인들이 고국 땅으로 돌아왔고, 그들이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했으니 에스라기 3장에 나와 있습니다.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 터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이태 째가 되는 해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들의 나머지 동료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사로잡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모든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스무 살이 넘은 레위 사람을 주님의 성전 건축 감독으로 세웠다.” (에스라기 3:8)
그러니까 고레스가 왕위에 오른 첫해 즉 기원전 559년에 칙령에 의해 유대인들이 귀국했고, 그 다음 해인 기원전 558년에 성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성전을 다 짓고 봉헌한 것이 다리우스 왕 6년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이 끝난 것은 다리우스 왕 육년 아달월 삼일이다. 그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사로잡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기뻐하면서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올렸다. 하나님께 이 성전을 바치면서, 그들은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는, 이스라엘 지파의 수대로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 그렇게 한 다음에, 그들은 갈래별로 제사장을 세우고, 무리 별로 레위 사람을 세워서,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에스라기 6:15-18)
여기 나오는 다리우스 왕은 기원전 522-486년까지 왕위에 있었으니까 다리우스 왕 6년은 기원전 517년이 됩니다. 그러니까 기원전 558년에 성전을 짓기 시작해서 517년에 완공, 봉헌했으니 요한복음에 나온 42년은 바로 이것에 근거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자료들에 의하면 42년 동안 계속 성전건축 공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사를 하지 못했던 기간이 있었지만 어쨌든 유대인들은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성전을 지었고, 마침내 하나님께 봉헌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쪽은 에돔 족이었던 헤롯 대왕이 자기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기원전 20-19년까지 2년에 걸쳐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하였으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았던 성전은 헤롯 대왕에 의해 증축된 바로 그 성전이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요,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자랑스러워 할 만큼 크고 화려한 건물이었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통곡의 벽이라고 해서 남아 있는 돌벽을 통해 얼마나 큰 돌들로 튼튼하고 잘 지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그 성전건물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주시고, 자기들이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얼마나 굉장한 돌이냐고, 얼마나 굉장한 건물이냐고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히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참으로 엄청난 재앙입니다. 그 크고 웅장한 돌로 지은 건물이 철저하게 무너질 터인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고요?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철저한 파괴를 예고하는 것이니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유대전쟁사 제6권에 의하면 서기 70년 8월 29일 로마군이 성전 건물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물론 문자 그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는 되지 않았지만 그러나 더 이상 그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철저하고 완전한 파괴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물론 유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23:37-38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보아라, 너희 집은 버림을 받아서, 황폐하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27:37-38)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전 건물이 화려하고 돌로 정교하게 쌓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 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곳이라면 하나님께 버림받고, 황폐하게 되고 말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996년도에 성지 순례를 갔을 때 터키를 갔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명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있지요. 그곳을 둘러보았는데 일곱 교회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 허물어진 교회 터와 거기에 세워진 몇 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건물이 온전히 남아 있는 교회는 하나도 없고, 돌기둥 몇 개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무엇을 자랑할 것입니까? 크고 화려한 건물입니까? 돌로 쌓은 아름다운 성전입니까? 본당, 교육관, 사회관이라고 자랑할 만한 건물들입니까? 아무리 건물이 크고 화려하더라도 거기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입니다.
3절에 의하면 이제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 앉으셨고, 제자들이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그 징조는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도대체 제자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한 것인가요? 분명히 예수께서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23장 39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다’ 하고 말 할 그때까지, 너희는 나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또 24장 2절에서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이제 예수께서 종말의 때에 말씀하시는 것으로 알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의 대답이 24-25장에 나오는 종말 설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올리브 산인가? 예언자 스가랴에 의하면 올리브 산은 세상 종말 때에 하나님께서 도래할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날이 온다.
그 날이 오면,
약탈자들이 너희 재산을 약탈하려다가,
너희 보는 앞에서 그것을 나누어 가질 것이다.“
‘내가 모든 이방 나라를 모아서,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겠다.
이 도성이 함락되고,
가옥이 약탈당하고,
여자들이 겁탈당하고,
이 도성의 주민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갈 것이다.
그러나 이 도성 안의 나머지 백성은 살아남을 것이다.‘
주님께서 나아가셔서,
이방 나라들과 싸우실 것이다.
전쟁 때에 싸우시던 것처럼 하실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맞은편 동쪽,
올리브 산 위에 발을 디디고 서실 것이다.
그러면 올리브 산은 한가운데가 갈라져서
동서로 뻗은 깊고 넓은 골짜기가 생길 것이다.
산의 반쪽은 북쪽으로
다른 반쪽은 남쪽으로 옮겨질 것이다.“ (스가랴서 14:1-4)
오늘의 본문 3절은 바로 이 구절,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맞은편 동쪽,
올리브 산 위에 발을 디디고 서실 것이다“
라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종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준비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특히 겉모습만 화려한 한국교회를 향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깊이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만 희망을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09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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