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2009. 8. 16)
본문) 마태복음 23:29-36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조상의 분량을 마저 채워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예언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율법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낸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뒤쫓으며 박해할 것이다.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죄 없이 흘린 모든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자, 드디어 일곱 번째까지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하여 이제 마지막으로 꾸중하시고 너희들이 죄 없이 흘린 모든 피의 대가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저지른 일곱 번째 죄는 무엇인가? 주님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민다. 그러면서,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도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기를 좋아했던, 그래서 조상을 잘 모시고 정결예법을 잘 지킨다고 칭찬받기를 좋아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 직계조상의 무덤만 아름답게 꾸밀 뿐만 아니라 옛날에 돌아가신 예언자들의 무덤도 아름답게 가꾸고, 의인들의 기념비를 꾸미는 일도 잘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큰소리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상의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의 조상들은 대체 어떤 일을 저질렀던 말입니까? 35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너희가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살해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에 이르기까지, 땅에 죄 없이 흘린 모든 피가 너희에게 돌아갈 것이다.”
의인 아벨의 피란 바로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사건을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두 아들, 가인과 아벨.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지난 뒤에, 가인은 땅에서 거둔 곡식을 주님께 제물로 바치고, 아벨은 양 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바쳤습니다. 성경에는 단순히 “주님께서 아벨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셨으나, 가인과 그가 바친 제물은 반기지 않으셨다”고 해서 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왜 이유가 없겠습니까? 틀림없이 무언가 가인이 잘못했으니까 하나님께서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지. 자기의 잘못과 죄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쳤어야 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4장에 의하면 그는 오히려 ‘몹시 화가 나서, 얼굴빛이 달라졌다’고 창세기 기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빛이 달라지느냐?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 (창세기 4:6-7)
그렇습니다.
가인이 할 일은 죄를 잘 다스려서 죄에 지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빌며 용서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죄의 지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는 아우 아벨을 들로 나가자고 유혹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 죽이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자기가 지은 죄를 아무도 모를 줄 알았습니다. 본 사람이 없으니 책임 추궁 당할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대답했습니다.
“모릅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네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냐? 모른다고? 네 아우를 죽여 놓고도 모른다고?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네 아우의 핏소리를 내가 듣고 있다.”
그렇습니다.
억울하게 죽은 동생 아벨의 피가, 형의 손에 죽어 땅바닥에 흐른 아벨의 피가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하며 울부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역대지하 24장에 보면 유다 왕 요아스가 왕이 되었을 때 나이가 일곱 살이었습니다. 그가 어렸으므로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섭정으로서 올바른 정치를 해나갔습니다. 모든 우상을 철저하게 없애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백성들을 잘 보살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백서른 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유다 지도자들이 왕을 부추겨서 다시 우상을 숭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4장 18절에 의하면 이러한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렸고, 하나님께서 백성을 깨우쳐 돌이키도록 경고하시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백성들은 예언자의 말 듣기를 거절했다고 역대지 기자가 증거합니다. 이때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되어, 백성 앞에 서서 말하였습니다.
“나 하나님이 말한다. 어찌하여 너희가 주님의 명을 거역하느냐? 너희가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주님을 버렸으니, 주님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다.”
그런데 보십시오.
유다 백성들은 이 말을 듣고 회개하기는커녕 스가랴를 없앨 음모를 꾸몄고, 드디어 왕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성전 뜰에서 그를 돌로 쳐 죽였던 것입니다. 요아스 왕은, 자기를 도와 섭정을 했던 여호야다를 생각해서라도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은혜를 저버리고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쳐 죽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 스가랴는 죽으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이 일을 굽어보시고, 갚아 주십시오.” (역대지하 24:22)
여러분!
이것이 바로 유다인의 조상들이 저지른 일들입니다. 동생을 죽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회개하라고 깨우쳐 주는 예언자들을 돌로 쳐 죽이는 일까지 서슴없이 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에스겔은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아,
속이 시뻘건 녹을
한 번도 씻지 않은 녹슨 가마솥아,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제비를 뽑을 것도 없이,
그 안에 든 고기를
하나하나 다 꺼내어라.
죄 없는 사람을 죽인 피가
그 성읍 한가운데 그대로 남아 있다.
피가 흙으로 덮이지도 못하였다.
그 피가 흙 위에 쏟아지지 않고
맨 바위 위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 피가 흙에 덮이지 않게
맨 바위에 쏟아놓은 것은 바로 나다.
내가 분노를 일으켜
호되게 보복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아,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에스겔서 24:6-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성전 안에서 돌에 맞아 죽은 예언자 스가랴가 흘린 피까지 기억하시고 그 피값을 반드시 찾으시리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성읍이기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분노를 일으켜 보복을 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조상들은 아벨로부터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의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을 채찍질하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처럼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못 박고,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뒤쫓으며 박해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사도 야고보는 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등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2절에 의하면 안디바라는 사람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러 다니다가 박해를 받았기에 그럴 경우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고을로 피하여라.” (마태복음 10:23)
그렇습니다.
그 옛날 유대인의 조상들이 살았을 때 의인들과 예언자들이 박해를 받고 죽었던 것과 똑같이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포함해서 제자들과 많은 복음 전파자들이 박해를 받고 고난을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바로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조상의 분량을 마저 채워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
그렇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마지막 죄, 일곱 번째 죄는 바로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이고도 그 무덤을 아름답게 꾸며주며 잘 했다고 큰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의인들과 예언자들이 살았을 때는 그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오히려 박해하고 죽여 놓고도 죽인 후에는 무덤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기념비를 세워준 후 자기들이 잘했다고 큰소리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뱀의 새끼, 독사의 새끼 즉 사탄의 자식들이며, 그 모든 피의 값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옛날에만 있었던 일입니까? 이런 일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수구 기독교 세력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걸핏하면 백성들을 두들겨 패고, 곤봉으로 내리찍고, 감옥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용산에서, 평택에서 죄 없는 목숨들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 권력의 핵심에 기독교인들에게 있기에 권력과 기독교가 한 묶음으로 욕을 먹고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이 시대 의인들의 피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피의 대가를 찾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의 책임은 이 시대 기독교인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시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실상을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회개하고 돌아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몫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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