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9 년도

2009. 7. 12 / 율법주의란 죄 / 마태복음 23:13-15

람보 2 2015. 4. 4. 21:35

율법주의란 죄(2009. 7. 12)


본문) 마태복음 23:13-15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예수, 그분은 어떻게 생기셨을까? 모두들 궁금하시지요. 처음 만난다면 그 첫인상은 어떨까? 목소리는 어떨까? 예수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을 것이고,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다 있으시겠지요. 그리고 예수님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들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시겠지요.

   자비롭다, 인자하다, 따스하다, 부드럽다, 푸근하다 ........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향해 두 팔 내미시고 환히 웃으시는 예수님을 상상하시겠지요.


물론 예수께서 한없이 자비롭고 따뜻하며, 주위 사람들과 함께 웃고 즐기는 시간을 가지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예수께서 농담도 잘 하시고, 재미있는 말씀도 잘 하셔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담뿍 선사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세리들이나 죄인들이 당신을 청해서 대접할 때 기쁜 마음으로 잔치에 가셔서 즐겁게 대화도 나누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크게 웃으셨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시 사람들이 세례 요한과 예수 자신을 비교하여 했던 말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마태복음 11:18-19)


그런데 그렇게 자비롭고 따뜻하시며 한없이 부드러우시고 재미있으신 분이신 예수께서 몹시도 화를 내시며 저주까지 퍼부은 적이 있으니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13-36절의 글에서 예수께서는 무려 일곱 번에 걸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라고 선포하시면서 그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크며, 그들이 받을 벌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저지를 죄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이 그런 심한 벌을 받아야만 했던 것인가요?


오늘의 본문인 13-15절에는 일곱 개 중 두 가지 문제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 “너희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늘나라의 문을 닫기 때문이다. 너희는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지은 첫 번째 죄는 하늘나라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죄입니다. 자기들이 들어가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이라도 들어가게 해야 할 터인데 그것마저 방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 옛날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시마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땅이 그들이 살아가야 할 꿈의 고향이었습니다. 그곳을 차지해서 자손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셨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때 그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비밀이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한 구절을 읽겠습니다.


“보십시오. 내가 오늘 생명과 번영, 죽음과 파멸을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대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당신들이 잘 되고 번성할 것입니다. 또 당신들이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마음을 돌려서 순종하지 않고, 빗나가서 다른 신들에게 절을 하고 섬기면,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경고한 대로, 당신들은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당신들이 요단강을 건너가서 차지할 그 땅에서도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당신들 앞에 내놓았습니다.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십시오.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르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당신들이 잘 살 것입니다.”    (신명기 30:15-20)


그렇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갈 하나님의 땅이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을 따라가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사는 길이요,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계명들의 숫자만 잔뜩 늘려 놓았습니다. 무려 613가지나 되는 계명을 만들어놓고는 그것 하나하나를 문자대로 다 지켰는지만 따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십계명 중 제 4계명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 십계명의 그 구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은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한 것이다.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나,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뿐만 아니라, 너희의 소나 나귀나, 그 밖에 모든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 너희는 기억하여라. 너희가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었으므로,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다.”   (신명기 5:12-15)


보십시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바로 일에 지친 사람들을 쉬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너나, 너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뿐만 아니라, 너희의 소나 나귀나, 그 밖에 모든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안에 머무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


이것이 안식일의 기본정신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늘 굶주리고, 가진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종살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일주일에 한번은 쉬게 해 주고 그리고도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안식일의 기본정신입니다. 사람을 노동으로부터 쉬게 해 주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남종과 여종도 주인과 똑같이 쉼으로써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마태복음 12장에 기가 막힌 사건이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서,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 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 하고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다고 하자. 그것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그것을 잡아 끌어올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그런 다음에,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미니, 다른 손과 같이 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마태복음 12:9-14)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쉬게 하고, 살리기 위해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자가 있다면 안식일이라도 마땅히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괜찮습니까?”하고 물었고,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시자 “밖으로 나가서,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고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정신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생명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늘나라의 열쇠는 사도 베드로에게 넘어갔던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복음 16:19)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지은 두 번째 죄가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을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너희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유대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활발히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이방인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오고 있습니다.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랐다.” (사도행전 13:43)

여기에 나오는바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로 이방인이면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16:14)

유명한 루디아 이야기인데 그녀는 두아디라 출신이니 이방인이요, 유대교를 받아들여 하나님을 믿었기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고 칭찬받은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사도행전 17:4)

이방인인 그리스 사람들 중에 유대교를 받아들여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렇게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를 믿게 된 개종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곧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함으로써 그들을 유대교로 이끌어 오는 일이 종종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기들보다 더 지독한 율법주의자들로 만들었기에 그들이 그만 유대인들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들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죄는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잃어버리고 문자에 사로잡히고, 형식에 사로잡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율법주의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 감리교 자유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논쟁이 술 담배 문제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목사님 한 분이 이제 술과 담배로 교인들을 단죄하는 구절을 교리와 장정에서 빼자고 한 마디 한 것인데, 이를 들은 몇몇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차라리 목회를 떠나라’ 하면서 난리를 피운 것입니다. 물론 술이나 담배가 좋을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이유로 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술이나 담배로 남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고 그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자고 한 것이었는데 그만 문자에 사로잡혀 함부로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참으로 딱할 노릇입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세상 사람들보다 더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교만하니 이를 어찌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어찌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선자란 무엇입니까? 신앙의 근본정신은 잃어버리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행동하고, 믿음이 좋다고 큰소리치면서도 온갖 탐욕과 불법에 사로잡힌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이것을 넘어서야 성숙해지고 발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믿음의 근본정신을 기억하고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