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9 년도

2009. 7. 5 / 너희가 랍비라고? / 마태복음 23:1-12

람보 2 2015. 4. 4. 21:33

너희가 랍비라고?(2009. 7. 5)


본문) 마태복음 23:1-12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21장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는 성전을 한바탕 뒤흔드는 사건을 일으키신 후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셨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권위에 대해 시비를 걸자 예수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그들이 심판받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과 소작인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그들과 네 번에 걸친 논쟁을 통해 그들의 소위 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이며 천박한 것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굴복시키기 위해 논쟁을 걸어왔지만 오히려 예수께서 그들의 무지와 허위의식을 드러냄으로써 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린 예수께서 23장을 통해 그들에 대한 심판과 일곱 차례에 걸친 불행선언을 하심으로써 유대교를 완전히 굴복시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유대교와 그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잘못을 드러내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23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오늘의 본문인 1-12절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행하신 경계의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13-36절까지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한 일곱 차례의 불행선언, 저주선언입니다.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는 구절이 일곱 번 나옵니다. 그리고 끝으로 37-39절에 예루살렘을 향한 질책과 한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오늘의 본문인 1-12절을 봅시다. 1절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절 말씀과 흡사한 것을 통해 23장의 설교가 산상수훈과 비교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마태복음 5:1-2)


그러니까 산상수훈은 무리와 제자들을 향해 행하신 설교입니다. 물론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도 멀리서 또는 몰래 끼어들어서 예수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었겠지요. 그리고 오늘의 본문 1절에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라고 기록됨으로써 두 개의 설교가 모두 다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과는 구분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는 무슨 뜻인가요? 유대인들의 회당에 가면 맨 앞에 율법 두루마리가 놓여있고, 그 앞에 빈 의자가 하나 놓여있는데 이름하여 “모세의 자리”입니다. 그 옛날 시내산에서 율법을 전수받아 백성들에게 전해준 모세를 기리는 자리이지요. 물론 그 의자는 평소에 늘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회당에서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였을 때 율법학자나 바리새인이 오면 바로 그 의자에 앉아서 백성들을 향해 율법을 읽고 강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백성들은 도무지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오로지 율법학자나 바리새파와 같이 율법을 제대로 공부하고 강론할 수 있는 사람만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특권이었고, 바로 그것을 나타낸 것이 이 표현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모세의 제자들이요, 모세의 권위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그들을 존경했고, 그들의 가르침을 경청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세의 말과 같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주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렇다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예수께서 이렇게 심한 말씀을 하신 것인가요? 우선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진정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았던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율법을 말로만 지킨다고 했지 실제로는 지키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당연히 행동이 따를 때 쓸 수 있는 표현입니다. 세상에 그 누가 행동을 하지 않고 율법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젊은이 이야기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서 물었다.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분은 한 분이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기를 원하면, 계명들을 지켜라.’ 그가 예수께 물었다. ‘어느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아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그 젊은이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     (마태복음 19:16-20)


그렇습니다.

그 젊은이는 분명히 주님이 말씀하신 바 그 모든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다 행했습니다. 그 젊은이의 말이 진실되다는 것은 마가복음 10:21의 표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이는 그 젊은이가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도 분명히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행동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바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이 4절부터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을 묶어서 남의 어깨에 지우지만, 자기들은 그 짐을 나르는 데에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지기 힘든 무거운 짐”이라고요? 예수께서 11장 28절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짐입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마 11:28)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의 율법학자들이 구약에서 지키라고 찾아낸 계명이 모두 613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실 613개의 계명이 무엇무엇인지 보통 사람들이 아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아니 사실은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가난에 찌든 생활을 하는 백성들이 언제 613가지나 되는 계명들을 지킬 수 있습니까? 지키기는커녕 613가지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은 재산이 많고 사는 것이 넉넉하니까 시간을 내서 율법을 공부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지키겠다고 노력할 수 있지만 날품팔이하고, 남의 양을 치고, 빌어먹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그 율법을 공부하고 또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은 바로 그 백성들을 향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꾸짖고, 무시하고, 욕하고 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꾸짖는 장면입니다. 잔치집에 가서 손을 씻지 음식을 먹었다가 혼이 나는 장면 말입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613가지나 되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모든 것 다 지키려고 아등바등 댈 것 없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편안한 멍에, 가벼운 짐만을 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자,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행동했는가?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립니다. 경문 곽이란 양피지에다 성경구절들을 적어서 역시 양피지로 만든 성냥갑 크기의 통에다 넣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항상, 어떤 이들은 기도할 때 경문 곽을 이마와 왼팔 윗부분에 묶습니다. 머리로는 항상 율법을 생각하고 왼팔 윗부분에 맞닿는 심장으로는 율법을 사랑하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은 그것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녔으니 한 마디로 남들 눈에 잘 띄라고 하는 짓입니다.


옷술을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신명기 22장 12절과 민수기 15장 38-39절의 말씀에 따라 겉옷 옷단 네 곳에다 흰 실과 푸른 실로 꼬은 술(히브리어로 지짓)을 달고 다니는 것인데, 이것 역시 율법을 명심하라는 표지입니다.


또한 그들은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학자들이 의관을 정제한 채 경문 곽을 크게 달고, 옷술을 늘어뜨리고 시장을 지나가면 상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랍비”하면서 인사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인사받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마태복음 6장에 보면 그들은 자선을 베풀고, 기도할 때, 금식할 때 등 모든 행위를 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그들의 행실을 따르지 말아라”는 것은 그 어떤 종교적인 행위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위선적으로 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교회공동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여러분, 여기 세 가지 칭호가 나옵니다. 랍비, 아버지, 지도자인데 이 모두 다 높은 데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스스로 높은 사람들, 권위가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랍비라고?”

“아니다. 너희는 랍비가 아니다. 랍비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무리와 제자들에게 그렇게 불리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높임을 받을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섬기는 사람이 으뜸가는 사람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높아지는 곳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목사님들이 박사 가운을 입고 설교하러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TV 설교하러 나오는 목사님들 중에도 박사가운을 입고 나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가운은 박사의 종류에 따라서 그 가운의 다자인이 다른데 어디서 이상한 가운을 걸치고 나와서 설교를 함으로써 오히려 비웃음을 사고 조롱당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설교할 때 박사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목사로서 하는 것이라면 그냥 순수하게 간단한 흰색 또는 검은색 가운만 입으면 되는데 거기에 온갖 치장을 다함으로써 그것으로 자기의 권위를 드러내려 하지요. 그런데 사실 그런 분들의 설교일수록 들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율법학자나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이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고, 인사받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심판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랍비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늘 섬기는 자가 되고,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참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