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9 년도

2009. 7. 19 / 눈 먼 인도자들 / 마태복음 23:16-22

람보 2 2015. 4. 4. 21:37

눈 먼 인도자들(마23:16-22/2009.7.19)


본문) 마태복음 23:16-22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또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놓여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고 한다.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요,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의 본문인 16-22절은 23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저주 선언 중에서 세 번째에 해당되는데 다른 선언들과는 시작이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눈 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왜 예수께서 이렇게 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기들을 눈 먼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길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인이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무지한 백성들을 진리로 인도해서 구원받게 해주는 길잡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을 스스로 바리새파에 속했던 사도 바울이 그의 책 로마서에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가 유대 사람이라고 자처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대는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하며,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모습으로 들어있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아이의 교사라고 확신한다고 합시다.”   (로마서 2:17-20)


보십시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기들이 율법에 대해 정통하기 때문에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며,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아이의 교사라고 확신하고 큰소리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바로 그들을 향해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고 꾸중을 하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원래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우리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옛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아야 하고, 네가 맹세한 것은 그대로 주님께 지켜야 한다’ 한 것을, 너희는 또한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께서 발을 놓으시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크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5:33-36)


왜 맹세하지 말아야 하는가? 인간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에 맹세하고도 지키기 어렵고, 또한 인간은 너무나 간사한 존재이기에 맹세하고도 끊임없이 맹세를 어기고 싶은 유혹에 빠져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존재, 하나님의 영역에 해당되는 것을 걸고 함부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 예루살렘과 같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두고 함부로 맹세하는 것은 그야말로 분수를 모르는 일이요, 주제를 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고, 왜냐하면 너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뭐라고 가르쳤는가?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그들은 맹세에 대해 두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  (16절)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으나, 누구든지 그 제단 위에 놓여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지켜야 한다.”  (18절)


무슨 말입니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르친 바에 의하면 성전이나 성전 안에 있는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아무래도 좋다는 것이니 이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금이나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이나 제단보다는 그 안에 있는 금이나 제물이 더 중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 안에 있는 금은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에 있던 황금촛대나 지성소에 안치된 계약함을 덮은 황금 속죄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지고, 제단 위의 제물은 제사장이 매일 아침 바치는 진설병으로 보여지는데 어쨌든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가르침입니까? 도대체 어떻게 성전보다 성전의 금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고, 제단보다 제단 위에 놓여 있는 제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 성전과 제단은 붙박이로 있는 것이니 그것을 이용할 수도 없고, 그것으로 돈을 벌 수도 없지만 성전 안의 금이나 제단 위에 놓여있는 제물은 황금이 값이 아주 비싼 것이고, 먹고 배부를 수도 있으니 그것이 훨씬 더 귀하다고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아무리 율법을 다 지킨다고 큰소리치고, 믿음이 좋다고 큰소리쳐도 결국은 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고, 자기에게 도움이 될 때에만 신앙을 내세우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전이 없다면 어찌 그 안에 금이 있을 수 있으며, 제단이 없다면 어찌 그 위에 제물을 올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성전과 제단이 먼저 있고 금과 제물이 나중에 있는 것이며, 성전과 제단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터전이라면 금이나 제물은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것이 중요한지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던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고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눈 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중하냐? 제물이냐?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오늘날 이것을 뒤집어 놓은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보다 교회에서 받는 직분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보다 얼마나 더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똑같이 저지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물으셨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하냐?” 그리고 대답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금보다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 더 중하고, 제물보다 그 제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 더 중합니다. 그러므로 금을 두고 맹세하지 말 것은 물론이요, 성전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제물을 두고 맹세하지 말 것은 물론이요 제단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20-22절에 나와 있습니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요,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니 결국은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나 제물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또한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성전과 그 안에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니 이는 곧 하나님을 두고 제 마음대로, 함부로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까지 두 가지 이야기가 나란히 진행되다가 22절에 엉뚱한 것이 덧붙어 있습니다. 16-22절까지는 두 가지가 번갈아 나오면서 순서가 잘 지켜지고 있는데 22절에 엉뚱한 것이 덧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앞에서 읽은 것처럼 마태복음 5장 34절의 말씀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말아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아라.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의 본문은 그 어느 것을 두고도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원래 연약한 존재이기에 공연히 맹세하면서 큰소리치지 말고 신실하게 말과 행동으로 마음과 신앙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본문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변하기 쉬운 존재인지를 늘 기억하고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함부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지키지 않아도 된다.”


바로 그래서 그들은 눈먼 인도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2장에서 이미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하며,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모습으로 들어있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아이의 교사라고 확신하고 큰소리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그들은 사실은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도둑질하고,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간음을 하고, 우상을 미워한다고 하면서 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함부로 맹세하는 자들이요,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탐욕에 사로잡힌 자들이었으니 눈먼 인도자들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는 제목이 붙은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가 해고를 당하게 되자 꾀를 내어 자기의 살 길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유 끝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비유 이여기가 끝나고 난 다음에 재미있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이런 구절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나서, 예수를 비웃었다.”


한 마디로 바리새파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또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종교지도자라고 하면서 돈을 밝히고, 그것을 위해 함부로 맹세하고, 종교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면 이는 눈먼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본문의 핵심은 성전이나 제단, 성전의 금이나 제단 위의 제물을 자기들의 욕심을 위해 이용해 먹으면서 입으로는 믿음이 좋다고 큰소리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저주가 있으리라는 주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을 빙자해서 욕심을 채우는 종교지도자들은 눈먼 인도자들입니다. 그들과 그런 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은 다함께 어둠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대형교회 목사들이나 부흥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눈먼 지도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한국교회와 한국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우리 모두 영적 분별력을 갖추어 누가 참된 지도자인지, 눈먼 지도자인지 구분하고, 그래서 참된 인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