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예수를 거부하는가?(2009. 6. 28)
본문) 마태복음 22:41-46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였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그러자 아무도 예수께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으며, 그 날부터는 그에게 감히 묻은 사람도 없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벌이신 논쟁에서 3 대 0 완승을 거두셨습니다. 그야말로 KO 승을 거두신 셈입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상대로 논쟁을 벌일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래서 물러나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말이나 논리로 상대방을 이길 수 없을 때 악한 자들이 쓰는 방법이 주먹이나 칼과 같은 폭력입니다. 사람이 어울려 살면서 말과 논리로 자기의 주장을 하다가 자기 것이 맞지 않으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니까 억지를 부리고 힘을 쓰고, 그것으로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것은 요즘 수구꼴통 세력들이 권력의 비호 하에 저지르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덕수궁 앞에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빈소를 며칠 전 새벽에 폭력집단이 때려 부수는 일이 있었지요. 경찰이 옆에 있었는데도 막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구청에서 그것을 다 치워버리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각본에 의해서 된 것임을 보여주고, 최고의 권력자가 묵인하지 않고는 생길 수 없는 일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신체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말로는 당해낼 수 없고, 논리와 명분으로는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 권력자들이 쓰는 방법이 경찰력이나 폭력집단을 내세워서 힘으로 억압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자기들이 천 년 만 년 권력을 누릴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태복음 26:52)
어쨌든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 KO패 당한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분을 삭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번에는 느닷없이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도전하셨습니다. 먼저 시비를 건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리스도, 즉 메시아는 누구의 자손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실은 내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예수께서 밝히고 싶으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너희가 믿고 있느냐 하고 묻고 싶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왕이었고, 그의 자손은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22대 400년 동안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온다면 그는 마땅히 다윗의 자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영이 그에게 내려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그는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이사야서 11:1-4)
“그 날이 오면,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깃발로 세워질 것이며, 민족들이 그를 찾아 모여들어서, 그가 있는 곳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다시 손을 펴시어서, 그의 남은 백성들, 곧 앗시리아와 하 이집트와 상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와 엘람과 바빌로니아와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남은 사람들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실 것이다.“ (이사야서 11:10-11)
이새가 누구입니까? 다윗의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이새의 아들인 다윗의 자손 중에서 나올 것입니다. 특히 11절에 보면 메시아가 오면 앗시리아로부터 바다 섬들까지 당시 사람들이 알던 모든 세상으로부터 남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절은 메시아가 오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구원하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언을 기억한 모든 유대인들은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 나타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기자는 아예 1장 1절을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임을 선포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보면 곳곳에서 사람들은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함으로써 예수가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하고 외치면서 예수를 뒤따라왔다.” (마태복음 9:27)
“그 때에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 주시니, 그가 말을 하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가 모두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 ” (마태복음 12:22-23)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5:21-22)
“그들이 여리고를 떠날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그런데 눈 먼 사람 둘이 길 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무리가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 (마태복음 20:29-31)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대로,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어다가, 그 위에 곁옷을 얹으니, 예수께서 올라타셨다.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가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았다.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무리와 뒤따라오는 무리가 외쳤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더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 (마태복음 21:6-9)
여러분, 보십시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고, 이를 통해 예수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단 한 번도 사람들이 당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을 거부하거나 막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란 표현은 곧 메시아,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요, 예수는 사람들이 당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도록 내버려 두심으로써 당신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께서 바로 이 문제를 짚으신 것입니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냐?”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묻는지,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쉽게, 생각 없이 대답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셨으니 43-45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를 주님(=그리스도)이라고 부르면서 말하기를,
‘주님(=하나님)께서 내 주(=그리스도)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된 일이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여러분!
이 질문에서 인용된 말씀은 시편 110편 1절 말씀입니다. 이제 시편 110편을 펴보시면 거기에 ‘다윗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고, 다윗이 주님을 노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주님 또는 임금님이라는 단어들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것을 잘 구분해서 읽어야 합니다. 본문 밑에 표시되어 있는 관주를 잘 보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1절. “주님(=여호와)께서
내 주님(=아도나이)께 말씀하시기를
‘내(=여호와)가 너(=아도나이)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2절. 주님(=여호와)께서
임금님(=아도나이의 2인칭 ‘당신’)의 권능의 지팡이를
시온에서 하사해 주시니,
임금님께서는 저 원수들을 통치하십시오.
3절. 임금님께서 거룩한 산에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가시는 날에,
임금님의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고,
아침 동이 틀 때에
새벽이슬이 맺히듯이,
젊은이들이 임금님께로 모여들 것입니다.
4절. 주님(=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다‘ 하셨으니,
그 뜻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110:1-4)
그렇습니다.
시편 110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실 그리스도를 다윗이 주님이라고 부르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45절에서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당연히 바리새파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 날부터는 주님께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은 예수가 단지 육신적인 혈통으로 보아 누구의 아들인가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할 것이니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단순히 정치적 지도자, 군사적 지도자로서의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예수는 이제 당신의 목숨을 바치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세상을 여시고자 오신 분이심을 스스로 증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예수께서는 대놓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말하였다. ‘이 사람들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증언하는데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소?’ 그러나 예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예수께 말하였다.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걸고 그대에게 명령하니,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요?’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말하였소.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다시 말하오. 이제로부터 당신들은, 인자가 권능의 보좌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오.’ ” (마태복음 26:62-64)
또한 사도 베드로 역시 성령강림절 설교를 통해 이것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굴복시키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34-36)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가 누구이신지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의 적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졌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대제사장 같은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을 확실하게 대적하셔서 무참히 짓밟으시고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은 기이하게도 이방인이나 죄인들이 아니라 스스로 거룩한 척 하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끝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끝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세상 권력에 빌붙어 단맛을 빨아먹는 한기총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끝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예수를 거부하는가? 스스로 거룩한 척 하지만 예수를 이용해 돈벌이하고, 권력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구분해서 진심으로 예수를 따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우리 모두 신실한 신자로서 바른 길을 걸어가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09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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