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8 년도

2008. 10. 19 / 거룩하게 산다는 것 / 마태복음 15:1-11

람보 2 2015. 4. 3. 17:23

거룩하게 산다는 것/2008. 10. 19

 

본문) 마태복음 15:1-11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다. ‘당신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는 것입니까? 그들은 빵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시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게서 받으실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 사람은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를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예수께서 무리를 가까이 부르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의 본문은 원래 15:1-20까지인데 아무래도 너무 길어서 둘로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에는 1-20절까지를 묶어서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제목을 붙여 놓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절까지는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나눈 대담입니다. 그리고 12-20절까지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선 1-11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설교를 하고자 합니다.

 

하나의 국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합니다. 국민, 국토, 주권이 그것입니다. 구약에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나오는데 출애굽기 1장부터 18장까지가 국민의 형성 과정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의 국토가 확정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출애굽기 19장부터 레위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주권인 헌법 제정 과정과 헌법의 내용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스라엘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나라를 세우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8장까지에서 국민의 형성을 기록하고 바로 이어서 하나님께서 19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 주어라.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출애굽기 19:4-6)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요, 거룩한 민족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레위기에서 네 번씩이나 이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몸을 구별하여 바쳐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땅에 기어 다니는 어떤 길짐승 때문에, 너희가 자신을 부정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레위기 11:44-4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 (레위기 19:1-2)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나에게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뭇 백성 가운데서 골라서, 나의 백성이 되게 하였다.” (레위기 20:26)

“너희는 내가 명한 것을 지켜, 그대로 하여야 한다. 나는 주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것이니, 너희는 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주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었다. 나는 주다.” (레위기 22:31-33)

 

자, 그렇다면 도대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즉 어떻게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인가요? 그 답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 전체가 거룩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인 것입니다.

 

그러면 레위기가 말하는바 거룩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기서 레위기 전체를 다 다룰 수는 없고, 오늘의 본문과 관계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음식에 관한 정결예법입니다. 특히 레위기 11장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분해 놓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유명한 성경구절입니다.

이 레위기 11장의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의 삶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느 책에 보니까 모든 나라의 비행기에는 반드시 유대인들을 위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어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미리 주문만 하면 자신들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오직 유대인들만 그렇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정결예법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유와 고기를 함께 먹을 수 없기에 유대의 가정에는 반드시 그릇을 두 벌씩 준비합니다. 우유용과 고기용인 것이지요. 그러니 이천 년 전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음식에 대한 정결예법을 얼마나 철저히 지켰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서 인간의 환경이나 주변 여건이 달라지는데 그때마다 모세 오경에 나오지 않는 일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오경이 아무리 두꺼운 책이라 해도 완벽한 법전이 아니고, 인간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생겨나는데 그것에 대한 모든 대답을 다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소위 “장로들의 전통”입니다. 이것은 생각지 못했던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한 유대의 종교지도자들, 특히 바리새파나 율법학자들의 해석과 실행방법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문서화된 율법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이 규범들 전체를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일반 백성들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 바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인 것입니다.

 

자, 오늘의 본문에는 그러한 장로들의 전통 가운데 두 가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게서 받으실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 사람은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소위 ‘코르반’이라고 부릅니다. 앞의 것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들고 나온 것이요, 뒤의 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치기 위해 들고 나오신 것이지요.

 

우선 첫 번째 장로들의 전통, 즉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다른 대부분의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들도 빵을 먹을 때 손으로 떼어 먹었습니다. 손으로 빵을 집어서 손으로 떼고, 그것을 곧바로 입을 가져가니까 빵을 떼기 전에 깨끗하게 손을 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유대 지방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건조지대이기에 언제나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입니다. 그러니 손과 옷 등 몸 전체에 늘 먼지가 있었고, 그래서 어느 집이든 대문 앞에 항아리를 갖다 놓고 물을 채워 놓았다가 손님이 오면 손을 씻게 했던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포도주로 바꾸신 물이 바로 그 항아리의 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것은 장로들의 전통 때문이 아니더라도 위생을 위해서 꼭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왜 이렇게 당연한 일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는가?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빵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았던 것인가?

사실은 예수님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끼마다 빵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은 대부분 늘 굶주렸고, 빵 한 조각 얻기 위해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해야 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일거리가 없어서 돈을 벌지 못하고 굶어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의 품꾼들 비유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늘 배고파했다는 것은 그들이 밀밭을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뜯어서 날것을 그냥 먹었다는 사건에 나오지요.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이 시비 거는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게 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빵 한 조각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고픈 사람들이 빵을 먹게 되었을 때 손을 씻고 안 씻고는 따져볼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선 먹고 봐야 하나라도 더 먹을 테니까요. 여러 사람이 같이 빵을 먹을 때 손 씻을 겨를이 어디 있나요? 우선 하나라도 더 집어야지요. 그래야 내 입에 하나라도 더 집어넣지요.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정결예법을 지킬 생각이나 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본문은 그렇게도 가난했던 그 제자들의 딱한 모습, 그 당시 백성들의 그 힘든 모습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가난하지 않으니까, 자기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고생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것을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이 따지고 나선 것입니다.

 

예수의 입장이 곤란해졌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께서는 이렇게 따지고 드는 그들에게 되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시고, 또 ’아버지와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내게서 받으실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 사람은 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너희는 너희의 전통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

 

자, 여기 십계명 하나와 거기에 따르는 ‘장로들의 전통’ 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중 어느 것이 중요합니까? 당연히 십계명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자기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계명을 어기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되고, 본말이 뒤집힌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절대계명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예물로 바쳤다는 핑계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위선자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위선자들아! 이사야가 너희를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

 

여러분!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 29:13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 (이사야서 29:13)

그렇다면 이 말씀은 도대체 어떤 배경을 갖고 나온 말씀인가요? 이사야서 29장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이사야의 경고 말씀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재앙이 닥칠 것이고, 예루살렘이 처절하게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너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아리엘아, 아리엘아, 다윗이 진을 쳤던 성읍아.

‘해마다 절기들은 돌아오련만,

내가 너 아리엘을 포위하고 치겠다.

‘나의 번제단’이라고 불리던 너를 칠 터이니,

네가 슬퍼하고 통곡할 것이다.

내가 너의 사면을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삥 둘러서 탑들을 세우고,

흙더미를 쌓아 올려 너의 성을 치겠다.‘ “ (이사야서 29:1-3)

“갑자기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만군의 주님께서 너를 찾아오시되,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를 일으키시며,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태워버리는 불길로 찾아오실 것이다.“ (이사야서 29:6)

 

물론 예루살렘에도 소위 예언자, 선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명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거짓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조롱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에게 잠드는 영을 보내셔서,

너희를 깊은 잠에 빠지게 하였다.

너희의 예언자로

너희의 눈 구실을 못하게 하셨으니,

너희의 눈을 멀게 하신 것이요,

너희의 선견자로

앞을 내다보지 못하게 하셨으니,

너희의 얼굴을 가려서

눈을 못 보게 하신 것이다.“ (이사야서 19:10)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왜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인가? 그 이유가 바로 29:13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 (이사야서 29:13)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의 죄,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 일뿐 진심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그들은 진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온갖 죄악이 가득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마디로 위선자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 율법을 다 지키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 등쳐먹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율법 지키지 않는다고 옭아매고, 껍질을 벗겨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으니 이사야서 29:18-21입니다.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이사야서 29:18-21)

 

그렇습니다.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그러니 가난해서 늘 고생하다가 빵이 생겨서 손도 씻지 않고 먹었던 사람들, 그들은 더 이상 꾸중을 듣지 않고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 날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 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언자 이사야 시대 때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위선자라고 공격당하고 결국 심판받았던 것처럼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도 위선자라고 공격당하고 끝내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입술로, 말로 계명을 지킨다고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실되게 계명의 참된 뜻을 깨닫고, 계명에 담긴 정신을 삶으로 실천하는가 입니다. 입술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큰소리치는가, 아니면 삶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오늘의 본문은 소위 “거룩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자기들이야말로 “거룩하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위선자일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해도, 마음은 멀리 떠나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 정의와 사랑에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것을 지적하시며 진정 “거룩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우쳐주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가요? 한 마디로 위선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입술만 교인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그들을 꾸짖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입술만 교인이 아니라 삶의 교인이 많아져야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삶의 교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