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8 년도

2008. 10. 5 / 믿음이 적은 사람아! / 마태복음 14:28-33

람보 2 2015. 4. 3. 17:15

믿음이 적은 사람아!(2008.10.5)


본문) 마태복음 14:28-33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께서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에 그는 ‘주님, 살려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께서 곧 손을 내밀어서, 그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말하였다. ‘선생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예수께서 바다와 관련된 기적을 행하신 사건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두 번씩,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한 번씩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에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기록된 사건들은 같은 내용인데 첫 번째 것이 마태복음 8:23-27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니, 제자들이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바다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물결에 막 뒤덮일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서 예수를 깨우고서 말하였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   (마태복음 8:23-27)


우리가 아까 부른 찬송가 461장은 바로 이 성경구절을 근거로 해서 지어진 찬송입니다. 김활란 박사가 가사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이 첫 번째 사건은 참으로 엄청난 사건임이 분명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는데 그만 그 사이에 큰 풍랑이 일어나서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지요. 처음에는 제자들이 자기 힘으로 풍랑을 헤쳐 갈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무지 할 수 없으니까 주님을 깨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잔잔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는 분명히 예수가 누구이신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분명히 이 사건을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8장 말씀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아주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


첫 번째 사건이 배 안에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고, 잔잔케 하신 사건이라면 오늘의 본문인 두 번째 사건은 예수께서 친히 거센 역풍으로 인해 파도가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그것을 뚫고 바다 위를 걸어오신 사건입니다. 배 안에서 바다를 꾸짖는 것은 말로 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고, 세상에 바다 위를 걸어서 풍랑을 헤치고 온다는 것, 이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리상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적어도 바다 위를 5km 이상은 걸어서 오신 셈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를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서 소리를 질렀던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자, 그런데 이제 또다시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예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이시면, 나더러 물 위로 걸어서,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여러분!

이게 도대체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만용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지금까지 숱한 기적을 행하셨으니까 그렇다 치고 베드로, 자기가 도대체 무슨 수로 물 위를 걷는다는 말입니까?

물론 베드로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면, 나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31절에서 분명히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해 “믿음이 적은 사람아” 라고 꾸짖으셨지 “믿음이 없는 사람아” 라고 꾸짖지는 않으신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런 베드로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너라.”


그런데 보십시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베드로가 진짜 물 위를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다.”  (29절)


베드로는 참으로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또 설혹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어찌 바다 위로 뛰어내린단 말입니까? 바다 위로 뛰어내리면 물에 빠져 죽을 것이 뻔한 일인데요. 그런데도 베드로는 뛰어내렸고,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칭찬받을 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물 위로 걸어가던 베드로의 눈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파도가 치고, 주위에 있는 배들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베드로는 무서움에 사로잡혔고,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놀라서 외쳤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베드로는 물론 평생을 어부로 살았고, 바닷가에서 살았으니까 수영을 잘 했을 것이고, 물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물 위를 걷다가 빠지니까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것이지요. 물론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물속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다고 복음서 기자는 증거합니다.


자, 여러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순식간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물 위를 걸어갔고, 또다시 순식간에 바닷물에 빠져들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베드로는 왜 바닷물에 빠져 들어갔습니까? 용감하게 뛰어내릴 만큼 믿음도 있고, 또 실제로 예수님처럼 바닷물 위로 걸어가기도 했는데 왜 빠져 들어간 것입니까? 3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주님만 바라보았을 때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는데 그만 거센 바람을 의식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몰아치는 풍랑을 보게 되자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 처음에는 예수만을 바라보다가 그만 거센 바람을 보는 것이 ‘의심’입니다. ‘의심’이라는 이 단어는 ‘마음이 두 가지 방향으로 가는 것’이요,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두 개의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동생으로 알려진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받을 것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마치 바람에 밀려서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5-8)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거센 바람과 풍랑 속에서도 예수만 바라보고, 그로부터 도움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삶이 거센 바람과 풍랑 속에서 흔들린다 하더라도, 우리가 바닷물과 같은 깊은 어려움에 빠진다 하더라도 우리를 향해 걸어오시고,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서 건져 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믿음이 아무리 적다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이 때로는 아니 사실은 너무나 자주 흔들린다 하더라도 우리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우리를 붙잡아 함께 배에 오르는 주님이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주님과 그의 명령 그리고 그의 도움에 한 마음으로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한 번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모든 삶의 과정을 되돌아봅시다. 우리의 삶에서 풍랑이 불지 않았던 때가 언제였으며, 바닷물에 빠지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닥쳤던 것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금 다 지났으니까 잊어버린 것일 뿐,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이 우리를 힘들고 하고, 견디기 어렵게 했었습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온 것은 결국 주님이 우리의 손을 붙잡아 준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 대신 거센 바람만 바라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은 아닙니까? 현실 생활의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손을 붙잡아 우리를 배에 오르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자, 이제 사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함께 배에 오르니, 바람이 그쳤습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무릎을 꿇고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하나님“이란 표현과 동의어입니다. 같은 뜻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신앙고백은 우리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마태복음 전체를 통해 단 세 번만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세 번 중에서 첫 번째가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두 번째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요, 세 번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십자가 밑에 있던 백부장의 고백입니다. 각각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 ”  (마태복음 16:13-16)


“백부장과 그와 함께 예수를 지키는 사람들이, 지진과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였다.”  (마태복음 27:54)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단 세 번밖에 나오지 않는 신앙고백의 첫 번째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즉 ‘예수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고백하는 위대한 사건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은 구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사건들이 왜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란 말인가? 그 근거가 구약에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곳곳에서 거센 물속에서 손을 내미시어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우선 시편 기자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며 숱하게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꾸짖으실 때에

바다의 밑바닥이 모두 드러나고,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콧김을 내뿜으실 때에

땅의 기초도 모두 드러났다.

주님께서 높은 곳에서 손을 내밀어

나를 움켜잡아 주시고,

깊은 물에서 나를 건져 주셨다.“  (시편 18:15-16)


또한 시편 69편 기자는 큰 물결이 나를 덮치지 못하게 해주시고, 깊은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목까지 물이 찼습니다.

발붙일 곳이 없는

깊고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

물 속 깊은 곳으로 빠져 들어갔으니,

큰 물결이 나를 휩쓸어갑니다.

목이 타도록 부르짖다가,

이 몸은 지쳤습니다.

눈이 빠지도록,

나는 나의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

.

.

성문에 앉아있는 자들이 나를 비난하고,

술에 취한 자들이 나를 두고서

빈정거리는 노래를 지어 흥얼거립니다.

그러나 주님,

오직 주님께만 기도하오니,

하나님,

주님께서 나를 반기시는 그 때에,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주님의 확실한 구원으로

나에게 응답하여 주십시오.

나를 이 수렁에서 끌어내어 주셔서

그 속에 빠져 들어가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를 미워하는 자들과 깊은 물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큰 물결이 나를 덮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깊은 물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큰 구덩이가 입을 벌려

나를 삼키고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시편 69:1-3, 12-15)


결정적으로 시편 144편 기자는 사람의 구원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생각하여 주십니까?

인생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하여 주십니까?

사람은 한낱 숨결과 같고,

그의 일생은 사라지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주님, 하늘을 낮게 드리우시고, 내려오시며,

산들을 만지시어

산마다 연기를 뿜어내게 하십시오.

번개를 번쩍여서 원수들을 흩으시고,

화살을 쏘셔서

그들을 혼란에 빠뜨려 주십시오.

높은 곳에서 주님의 손을 내미셔서

거센 물결에서 나를 끌어내시고,

외적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시편 144:3-7)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들이 큰 물결, 깊은 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것처럼 마태복음 기자는 베드로를 구원해 주시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베드로처럼 큰 물결, 깊은 바다로 빠져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바로 “주님, 나를 건져 주십시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였느냐?“ 물으시면서 손을 내밀어 우리를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배에 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거친 세상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