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을 통한 평화 /2008년 2월 17일
본문) 마태복음 10장 34-39절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나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자기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봐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적합하지 않고, 나보다 아들이나 딸을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게 적합하지 않다. 자기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기원전 8세기, 그중에서도 후반기에 해당되는 750년에서 700년까지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해방 이후 시대 못지 않은 격동의 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갈라지고 나서 200년 가까이 흐르면서 제각기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자기들 멋대로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둘 다 저 잘났다고 큰소리치며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으니 그들을 우리는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역사상 기원전 8세기는 예언자들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선포한 예언자가 아모스와 호세아요, 남왕국 유다에서 선포한 예언자가 이사야와 미가였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이사야와 미가가 남왕국에서 활동했는데 이사야가 먼저 예언을 시작했고, 얼마 후 미가가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두 사람이 같은 시기에 활동을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에 네 가지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이 사건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기원전 734년, 북왕국의 왕 베가는 시리아 군을 끌어들여 동맹군을 삼고 남왕국을 공격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앗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해 시리아를 끌어들여 동맹군을 삼고 남왕국을 공격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앗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해 남왕국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남왕국 아하즈 왕이 그것을 거부하자 공격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물론 남북이 분열된 후 두 나라가 끊임없이 티격태격했지만 이때와 같은 본격적인 전쟁은 생각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조상의 후손인 민족끼리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은 일어났고, 결국 남왕국 아하즈 왕은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들의 도움으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시리아 동맹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족이 칼과 창을 겨누고 쳐들어온다는 것은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이 멸망당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앗시리아는 불과 10여년 만에 북왕국을 멸망시켰고, 수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으며, 수많은 이방인들을 끌어와서 북왕국 땅에서 살게 함으로써 혼혈민족이 생겨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마리아인들입니다. 이 사건 역시 남왕국 유다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겪은 두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자기 동족의 나라가 그토록 철저하게 붕괴되고,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다는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습니다. 유다의 왕들은 한동안 앗시리아의 지배에 항거할 엄두는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년 쯤 지난 뒤 아하즈의 후계자인 히스기야 왕은 앗시리아에게 반기를 들고 조공을 거부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앗시리아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곧바로 앗시리아 군대가 몰려와 성읍 46개와 수많은 마을들을 빼앗아 유다를 파괴시켜 버리고 예루살렘 성 하나만 남겨놓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남왕국 유다도 꼼짝없이 북왕국과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세 번째 사건).
그런데 열왕기하 18-19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앗시리아 군대는 물러가고 남왕국 유다는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네 번째 사건). 그야말로 하나님이 남왕국 유다를 끔찍이 사랑하신다고 큰소리 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혼돈의 시대 때, 동족 간의 전쟁, 동족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과 비참한 파멸, 그리고 앗시리아의 무시무시한 침략과 갑작스러운 공포로부터의 해방 등과 같은 사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들이 있었고 저는 오늘 그중에서 바로 미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가는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의 예언자로서, 그의 언어는 거칠지만 힘이 있습니다. 미가가 말하는 유대인들의 죄는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상류계층의 불의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와 거기에 사는 귀족, 상류층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불의도 역시 그곳에 집중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것들을 심판하리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도대체 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의 나라가 둘로 갈라졌고, 그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북왕국은 비참하게 멸망했으며, 남왕국은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전전긍긍하고 있는가? 미가는 한 마디로 죄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야곱의 죄 때문이며,
이스라엘 집의 범죄 때문이다.
야곱의 죄가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더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더냐?" (미가서 1:5)
그렇다면 야곱의 죄는 무엇이고, 이스라엘 집의 범죄는 무엇인가요? 나라를 망하게 하고야 만 죄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요?
"악한 궁리나 하는 자들,
잠자리에 누워서도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망한다!
그들은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날이 새자마자 음모대로 해치우고 마는 자들이다.
탐나는 밭을 빼앗고, 탐나는 집을 제 것으로 만든다.
집 임자를 속여서 집을 빼앗고,
주인에게 딸린 사람들과
유산으로 받을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계획하였으니,
이 재앙을 너희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가 거만하게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재앙의 때가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너희를 두고서
이러한 풍자시를 지어서 읊을 것이다.
슬픔에 사무친 애가를 지어서 부를 것이다.
'우리는 알거지가 되었다.
주님께서 내 백성의 유산의 몫을 나누시고,
나에게서 빼앗은 땅을 반역자들의 몫으로 할당해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총회에서 줄을 띄워 땅을 나누고
제비 뽑아 분배할 때에 너희의 몫은 없을 것이다." " (미가서 2:1-5)
보십시오. 부자들, 권력을 쥔 자들은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임자를 속여서 빼앗고, 유산으로 받은 밭을 제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미가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였다.
야곱의 우두머리들아,
이스라엘 집의 지도자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할 너희가,
선한 것을 미워하고, 악한 것을 사랑한다.
너희는 내 백성을 산 채로 그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낸다.
너희는 내 백성을 잡아먹는다.
가죽을 벗기고, 뼈를 산산조각 바수고,
고기를 삶듯이, 내 백성을 가마솥에 넣고 삶는다.
살려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을 날이 그들에게 온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의 호소를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이 그렇듯 약을 저질렀으니,
주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예언자라는 자들이 나의 백성을 속이고 있다.
입에 먹을 것을 물려주면 평화를 외치고,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면 전쟁이 다가온다고 협박한다.
예언자들아,
너희의 날이 끝났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내 백성을 곁길로 이끌었으니 너희는 다시는 환상을 못 볼 것이고
다시는 예언을 하지 못할 것이다.' " (미가서 3:1-6)
결국 지도자들의 죄, 거짓 예언자들의 죄로 말미암아 나라가 멸망하는 엄청난 심판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인가? 역사의 마지막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때가 되면 메시야를 보내어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이제 너무나 유명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의 여러 족속 가운데서 작은 족속이지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다.
그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
태초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당신의 백성을 원수들에게 그대로 맡겨 두실 것이다.
그 뒤에 그의 동포,
사로잡혀 가 있던 남은 백성이,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가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이름이 지닌 그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의 떼를 먹일 것이다.
그러면 그의 위대함이 땅 끝까지 이를 것이므로,
그들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미가서 5:2-5)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진정 '평화'를 가져다주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은 요구하셨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서 6:6-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일 년 된 송아지를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나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올리브기름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참된 평화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평화는 공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미가가 아무리 외쳐도 유대인들의 죄악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거짓예언자들의 말에는 혹해서 따라갔지만 미가와 같은 참된 예언자들의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악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가는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고 선포합니다.
"아, 절망이다!
나는,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과일나무와도 같다.
이 나무에 열매도 하나 남지 않고,
이 포도나무에 포도 한 송이도 달려 있지 않으니,
아무도 나에게 와서, 허기진 배를 채우지 못하는구나.
포도알이 하나도 없고,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무화과 열매가,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없어졌구나.
이 땅에 신실한 사람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정직한 사람이라고는 볼래야 볼 수도 없다.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다만,
사람을 죽이려고 숨어서 기다리는 자들과,
이웃을 올가미에 걸어서 잡으려고 하는 자들뿐이다.
악한 일을 하는 데는 이력이 난 사람들이다.
모두가 탐욕스러운 관리,
돈에 매수된 재판관,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력자뿐이다.
모두들 서로 공모한다.
그들 가운데서 제일 좋다고 하는 자도 쓸모없는 잡초와 같고,
가장 정직하다고 하는 자도 가시나무 울타리보다 더 고약하다.
너희의 파수꾼이 날이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날이 다가왔다,
이제 그들이 혼란에 빠질 때가 되었다." (미가서 7:1-4)
그렇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혼란에 빠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마지막으로, 아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백성들을 향해서 현실을 정확히 보라고, 그리고 하나님만 기다리라고 호소합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아라. 친구도 신뢰하지 말아라.
품에 안겨서 잠드는 아내에게도 말을 다 털어놓지 말아라.
이 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다툰다.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기다린다." (미가서 7:5-7)
여러분, 보십시오.
이제 죄악이 가득차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혼란에 빠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징표가 있습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아라. 친구도 신뢰하지 말아라.
품에 안겨서 잠드는 아내에게도 말을 다 털어놓지 말아라.
이 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다툰다.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사람일 것이다. (미가서 7:5-6)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든 기본관계가 깨어지는 때가 곧 종말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웃도 믿지 말고, 친구도 신뢰하지 말고, 심지어는 품에 안겨서 잠드는 아내에게도 말을 다 털어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서로를 믿지 못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대들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다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 집안사람인 것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 당시 예수께서 경고하신 바로 그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예수는 곧 평화를 주려고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를 믿으면 그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만사형통하게 하시고, 그 결과 우리가 누리게 되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돈 많이 벌고, 건강하고, 잘 살면 신앙생황을 잘 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전혀 엉뚱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
여러분!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분명히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평화를 선포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너희가 그 집에 들어갈 때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복음 10:12)
그런데 이제 와서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려고 왔다고요? 칼을 주어서 누군가를 죽게 한다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여기서 칼은 분열을 나타냅니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누가복음 12:51)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평화를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맹목적인, 만사형통의 평화가 아니라 분열을 통한 평화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개종한 이방인이 그리스도 신앙 때문에 자기 가족들이 섬기는 신을 위한 예식에 참여하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분열이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고, 주님을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바칠 각오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내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 모두 실망이 크시겠지요? 아니 그렇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서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물론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복음 앞에 '순'자를 붙이든지, 성공철학이나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면 쉽고 편안하게 신앙생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건 복음이 아니며, 그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미가서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본다.
나를 구원하실 하나님을 기다린다.
내 하나님께서 내 간구를 들으신다." (미가서 7:7)
그렇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메시아로 보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셨고, 내 간구를 들어 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어서 나오는 40절 이하의 말씀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으셨고, 우리에게 상을 주시리라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혼란스럽고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힘들 세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더 깊이 연구하고, 말씀 안에서 예수를 만나야합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희망이시오,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셔서 희망을 품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믿고 힘차게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08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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