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8 년도

2008. 2. 10 / 두려워하지 말아라 / 마태복음 10:26-33

람보 2 2015. 4. 3. 15:16

두려워하지 말아라 / 2008.2.10.


본문) 마태복음 10장 26~33절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까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자, 오늘은 ‘두려워하지 말아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이 자리를 빌어서 우선 두 주에 걸쳐 병원에 입원해있는 동안에 찾아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또 전화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솔직히 허리 수술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을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물리 치료를 하든지 운동으로 고쳐야하고 또 자세만 교정을 해도 그건 낫는데 자칫 잘못해서 허리수술이 잘못되면 그건 평생 고생을 하니까 하면 안 된다 하는 말을 저한테 해주시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아팠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도저히 걸을 수 없었을 지경이었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고 여기저기 수술하지 않고 고칠 데가 없는지 찾아볼 생각도 했지만 상황이 너무나 급박해져서 수술을 했던 것입니다. 수술하기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교회까지 올 때 중간에 몇 번씩 주저앉아서 쉬어야 될 만큼 다리가 아팠고, 다리 전체가 너무 무거워서 발걸음을 띠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그렇게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했습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건강한 편이 아니었고, 그래서 잔병치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는 결석을 많이 했던 편입니다. 장성해서도 뭐 그렇게 썩 건강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고, 주기적으로 감기몸살을 앓았었습니다. 그동안 전신마취를 필요로 하는 수술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 맹장수술을 했던 것이 첫 번째로 전신마취를 했던 때였고, 십여 년 전에 탈장수술을 두 번 했었고, 몇 년 전에 요로결석 수술을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요로에 무슨 돌멩이가 있다고, 그래서 수술해서 빼내야 된다고, 그래서 영동세브란스 병원에서 사진도 찍고 수술을 받았는데 마취에서 깨어나서 눈을 떴는데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아무것도 없네요!’ 참으로 황당했던 그런 수술도 받아봤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분명히 맥주도 마시지 않았는데 그게 저절로 없어졌는지 도대체 지금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했으니까 전신마취를 다섯 번이나 한 거죠. 아마 우리 박동찬집사님과 비슷하게 했는지 몰라요.


  사실 전신마취 했다가 깨어나지 않으면 큰일입니다. 전신마취를 했는데 그만 ‘어~안 깨어  나네’ 이러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죠?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신마취라고 하는 것이 사실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믿고 맡길 수 없다면 전신마취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전신마취를 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고 보호자 동의서를 받아야 해 줍니다.

  금동희 권사님이 백내장 수술을 받아야하는데 혈압이 높아서 수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혈압이 높으면 마취했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 의사들이 아마 수술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겠지요.

  어쨌든 수술을 잘 마치고 처음에는 일주일 정도만 입원을 하면 될 것 같았는데 다리가 아프고 저려서 두 주일을 넘게 입원을 했고, 여러분 보시다시피 지금도 여러 가지로 불편합니다. 앞으로 꾸준히 걷고, 운동을 해서 고쳐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원해있는 두주동안 아무래도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과 가까워졌고 그들과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병실에 있어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 하고 티브이 보는 것, 아니면 잠자는 것, 뭐 그 정도입니다. 그래도 몇 사람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티브이에서 ‘뉴스 후’ 라는 프로그램을 두 번에 걸쳐서 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나온 그 내용이 한국의 대형교회를 비판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거기에 같이 입원해있던 사람들이 제가 목사인걸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하고 같이 그 내용을 보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그리고 힘들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 집중적으로 취급이 되었던 세 사람의 목사님. 즉 세계 최대 교회라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목사님, 세계 최대 감리교회라는 금란교회 목사님, 한국 최고의 장로교회라는 소망교회 목사님, 그 세분이 주로 취급이 되었는데 한결 같이 수십억짜리 저택에 살고 수억 원짜리 차를 몰고, 그렇게 살면서 세금은 내지 않는다고, 그렇게 티브이에서 비판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나오는 그 목사님들은 하나같이 그 모든 것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 잘 믿고 잘 사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이냐? 예수 믿으면 잘 살게 되어있고 그것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다!

  예수 믿으면서도 잘 못살면 그것은 예수를 잘못 믿어서 그런 것이고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서 늘 사는 것이 별로 넉넉지 않은 저는 몹시 부끄러웠고, 또 나도 교인들에게 그 목사님들처럼 설교를 해야 하는가 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교회 나오면 복 받아서 잘산다고, 누구나 잘살게 되어있다고, 여러분들이 잘 못 살면 그건 신앙생활을 잘하지 못한 것이라고 그렇게 나도 설교해야 되는가. 우리 교회 나오면 병도 걸리지 않고 무엇이든지 만사형통하고 잘 살 수 있다. 축복받을 수 있다! 그렇게 설교해야 되는 것 인가?. 만일에 그렇다면 허리디스크 걸려서 수술 받은 나는 믿음이 없는 목사인거죠. 거기 나온 목사님들은 다 감기몸살도 안 걸리고 복 받아서 잘 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복음은 무엇인가?


  여러분,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 마태복음 식으로 표현해서 ‘하늘나라’입니다. 하늘나라. 그것도 예수천당 불신지옥 식의 죽어서 가는 천당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야하는, 또 이루어가야 하는 ‘하늘나라’, 그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게 제가 지금까지 평생 해온 설교의 주제입니다. 예수는 바로 그것을 전하고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복음서는 바로 그러한 예수 사역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마태복음을 정리해보면 5장부터 7장까지는 하늘나라 헌법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 이루어져야 되는 하늘나라의 헌법. 그것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8장부터 9장까지에는 그 하늘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징표 열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10장에 넘어오면 그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일꾼들 즉 사도들을 선택하시는 이야기가 나오고 그 선택된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0장을 보면 1절부터 4절까지에서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는 이야기가 나오고, 5절부터 15절까지에서 이제 세상에 나아가서 하늘나라를 전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16절부터 25절까지 에서는 전도를 할 때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하늘나라 일꾼이 된다고 하는 것, 주님의 사도가 된다고 하는 것, 지금 식으로 말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쉽거나 편한 일이 아니고 또 세상적인 축복을 이루는 일도 아님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눈으로만 보면 고난의 길이고 힘들고 어려운 길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수 믿는 것을 그만둘 것인가. 다 그만두고 세상과 어울려서 휩쓸려 들어갈 것인가. 예수를 믿으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그거 굳이 믿을 거 있어? 뭐 힘들게 예수 믿어. 그냥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서 편하게 살지.


  제가 입원했던 병실 중에 첫 번째로 들어갔던 6인실에 저 말고 디스크 환자가 한사람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은 디스크가 터져서 하반신 마비가 왔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몇 달 째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고 나머지 네 사람은 교통사고 환자였어요. 그 교통사고도 가벼운 환자들이 아니고 아주 심한 그런 환자들인데 이 사람들이 밤에 열두시가 넘도록 한 게 뭐냐 하면 간식 사다 먹으면서 노는 것이었습니다. 병실에 몇 달씩 있는 사람들이니까 아주 답답해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자기들끼리 아주 친해지고, 또 병원비도 다 나오는 사람들이니까 그날도 뭐 족발, 순대 같은 것들을 사서 먹고 마시는 것이지요. 나는 수술 막 끝나고 아파서 누워있는데 나보고 일어나서 그거 먹으라고 하더군요.

  사실은 그 사람들이 진정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제가 목사라는 것은 전혀 신경도 안 쓰면서 와서 뭐 한잔하라고 권하는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복음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세상 편하게,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게 휩쓸려서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과 똑같이 살아갈 것인가?


  그런데 주님은 이제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신앙생활 하면서 어려움 당하는 것,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모두 여덟 절 밖에 되지 않는데 그 여덟 절 밖에 되지 않는 본문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라는 말씀이 세 번씩이나 나옵니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또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신앙생활 하면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주님은 어떻게 제자들에게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가요?


  자 우선, 오늘의 본문을 보면 세상에 비밀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티브이에 나온 목사들의 그 성공철학이, 아까 말씀드렸던 여의도나 금란이나 소망교회 그 목사님들이 설교하는 그 성공철학이 복음 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그것은 가짜 복음인 것이 드러날 날이 올 것입니다. 덮어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 27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데서 말하여라. 너희는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고 귓속말로 수군거리셨다는 겁니다. 복음이 뭐다, 하늘나라는 뭐다 라고 하는 것을 조용조용히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말씀하신 복음이 성공철학이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듣기 좋은 얘기만 하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그것을 굳이 어두운데서 귓속말로 전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그게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쉬운 거 아니다.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꼭 중요한 것이고 꼭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두운데서 조용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때가되면 제자들이 그것을 밝은데서 말하게 될 것이고, 지붕위에서 외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말아라. 반드시 진리는 반드시 복음은 밝히 드러날 것이다.


  또한 진정한 제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세상의 박해자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박해자들은 우리의 몸은 죽일 수 있지만 목숨인 영생은 죽이지 못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리의 몸도 죽이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기 쉬운 구절이 나오는데 바로 몸과 영혼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 몸이라는 단어는 히랍어로 ‘쏘마’ 라는 단어인데 문자 그대로 몸입니다. 우리의 몸입니다. 그리고 영혼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투시켄’ 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복잡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목숨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영혼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정신 이라고 번역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게 희랍어니까 희랍 철학을 나타내잖아요. 그런데 희랍철학에 의하면 몸과 영혼이 아주 철저히 구분이 됩니다. 그래서 몸은 악한 것이고 영은 선한 것이고 그래서 몸은 죽으면 썩어서 없어지는 것이고 영은 하늘나라로 가고. 이게 희랍철학입니다. 소위 영육이원론이지요.

  그런데 구약 성경에 의하면 몸과 영혼이 결코 구분되지 않습니다. 몸과 영혼이 구분되지 않아요. 그래서 히브리어에는 몸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히브리어로 따지자면 몸과 영혼은 인간자체를 나타냅니다, 인간자체. 그래서 영과 육을 합해서 구약으로 말하면 그게 인간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지으셨다고 했을 때, 인간, 그게 아담입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우리말로 목숨을 불어 넣은 거죠.

  자, 어쨌든 이게 희랍어이기 때문에 몸과 영혼으로 구분이 되어있지 사실은 이건 하나로 봐야 되고 그 두 개를 합해서 사람이라고 표현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인간은 죽은 다음에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반드시 육의 부활도 믿습니다. 그렇죠? 몸은 썩지만 사도바울이 정확히 가르쳐 준 대로 변화된 몸이죠. 변화된 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부활 사건도 역시 육의 부활, 변화된 몸으로서의 부활을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그럼 화장하고 나면 어떻게 우리 몸이 부활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분이 있을 터인데 우리가 진정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새로운 몸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믿는 겁니다.

  자, 그러니까 이 28절 말씀은 이승에서 생명을 끊는 그러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러한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지옥권세까지 갖고 계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인간의 몸과 영혼을 구분하지 말고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만을 생각하라는 걸 보여주는 유명한 성경구절이 마태복음 6장 25절이죠. 몸과 목숨을 구분하지 말라는, 자 25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그렇죠? 거기에 목숨이라고 하는 것, 그것과 몸이라고 하는 건 같은 겁니다. 자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마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우리들을 보호하고 우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기 떄문입니다. 그것이 29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여기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라고 했을 때 여기서 한 냥이라는 것은 한 앗사리온이고, 한 앗사리온은 한 데나리온의 16분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싼 거죠.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들의 하루품삯이니까 그것의 16분의 일. 그러니까 이건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양고기든지 또는 일반적으로 보는 고기를 먹을 수 없을 때 먹는 음식. 참새입니다.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참새. 그것까지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놓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분명히 참새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가난한 자들의 먹잇감이 되고 제자들의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빠지며 예수의 제자들은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기까지 합니다. 결코 참새 한 마리도 죽지 않는다던지 제자들은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는다던지 박해도 받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려움을 자주 겪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결코 이것들을 사소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참새 한 마리나 제자 한 사람 등을 사소한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은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보잘 것 없으니까 그거 어쩔 수 없지’ 이러시지 않습니다. 이 모든 생명체들은 심지어 참새들까지도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은 당신의 손안에서 보호하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인간은, 또 주님의 제자들은 그 많은 참새들보다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고 그러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주님의 제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시인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32절, 33절 말씀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여러분, 구절 말씀은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을 얘기합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인데 그때 예수께서 변호인으로 참여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변호인이 되실 텐데 변호인이 되실 때의 조건이 딱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시인하면, 내가 예수믿는 사람이라고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얘기한다면 그 최후의 심판 때 예수께서 우리를 안다고 하실 것이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아 나 예수 몰라 하면서 살면 최후의 심판 때 예수께서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 여러분 이이야기를 정리합시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감하게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라고 선포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켜주실 것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 때 예수께서 나의 변호인이 될 것이라는 걸 믿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그 누구도 두려움 없이 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 두려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그 불안감을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맡겨버리고 살아갑시다. 지금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러나 담대하게 용기를 갖고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고 그러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