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7 년도

2007. 5. 20 / 너희도 완전하여라 / 마태복음 5:48

람보 2 2015. 4. 2. 18:06

너희도 완전하여라


마태복음 5장 48절/2007년 5월 20일



  오늘 설교제목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라고 주보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제 설교 원고에는 “너희도 완전하라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차마 주보에다가는 그렇게 낼 수 없어서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지요.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다가 참으로 답답해지고 나 자신이 안타까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주어진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산상수훈 말씀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들으신 대로 형제자매에게 성내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고, 자기 형제나 자매에게 얼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의회에 불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형제자매에게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불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불쑥불쑥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또 지난 주일에 본대로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그것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만일 그분이 완전하시지 않다면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너무나 부족한 존재인 것을 주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는데 그런 제자들을 향해 “너희도 완전하라”고요? 도대체 어떻게 그런 엄청난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것인가요?


  자, 그렇다면 이 말씀의 구약적인 배경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말씀의 근거가 되는 말씀이 구약에 나오는가요? 있습니다. 바로 신명기 18장 1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

  신명기서에 들어있는 말씀이니까 물론 이 말씀은 모세가 한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떤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분명히 모세 자신도 스스로가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또 모세와 더불어 살던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금방 아시겠지만 모세의 인도를 받아서 이집트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결국 이집트에서 탈출해 나온 그 많은 무리들 중에 단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우리가 알지 않습니까? 심지어 모세마저도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라고 말씀했다면 그것은 도대체 그가 어떤 상황 속에서 그런 말씀을 한 것인지를 살펴보고 이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명기 18장 13절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안 되고, 그 전후문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9절부터 읽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곳에 사는 민족들이 하는 역겨운 일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 가운데서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사람과 점쟁이와 복술가와 요술객과 무당과 주문을 외우는 사람과 귀신을 불러 물어 보는 사람과 박수와 혼백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주께서 미워하신다. 주 너희의 하나님은 이런 역겨운 일 때문에 너희 앞에서 그들을 몰아내시는 것이다.”     (신명기 18장 9-12절)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다 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경고의 말씀을 하는 가운데 가나안 원주민들의 역겨운 종교행위들을 본받지 말라고 아주 강하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여러 종류의 주술사들과 그 행위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고, 인간의 주인은 오직 한 분이시며, 인간의 삶 전체를 주관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니까 하나님 이외의 다른 주술사들을 찾아가서 점을 치고, 귀신을 불러오고 하는 일들은 다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요, 철저한 불신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역겨워 하시는 것이고, 그런 행위들을 하면 약속의 땅에서 몰아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고의 말씀 끝에 모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너희는 주 너희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


  요즘도 남아있는지 모르겠는데 미아리하면 아주 유명한 점쟁이 촌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상대로 한 통계에 의하면 거기 찾아오는 손님들 중의 30퍼센트는 기독교인이랍니다. 그러니까 우리니라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한 30퍼센트쯤 된다고 하면 그것과 비율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점치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장로, 권사, 집사 다 있고 심지어 목사님들도 있답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명기 18장 13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일편단심으로 섬겨야 하며, 이방인들의 잡귀와 우상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했던 것입니다.

  “너희는 한 마음으로 너희 하나님 야훼만을 섬겨라.”


  여러분!

  신명기 18장 13절에 나오는바 “완전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tamim"인데 그 뜻은 ”온전한, 옹근, 갈라짐이 없는, 손상됨이 없는, 건전한“ 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는 말은 곧 ”온전한 마음으로“ ”갈라짐이 없이“ 하나님만 섬기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을 모세는 신명기 6장 4-5절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 주는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단어 “tamim"이 여호수아서에 나오는데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주를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만 섬기시오.”   (여호수아서 24장 14절)


   여기 나오는 ‘진실하게’ 섬기라는 것이 바로 tamim입니다. 이방 민족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만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여호수아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여러분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를 섬길 것이오.”   (여호수아서 24장 15절)

  그렇습니다.

  모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여호수아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 하는 것은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고 아주 온전히 진실하게 주님만을 섬기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나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바 “너희도 완전하라”는 명령은 온전히, 진실하게 하나님만 섬긴다는 의미에서 완전해지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단어의 뜻이 구약성서 후기로 넘어가면서, 즉 유대교가 생겨나던 포로기 전후로 넘어가면서 이제“율법 준수”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즉 “완전한 길”이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경 말씀이 바로 시편 119편입니다.

  

  “그 행실이 온전하고

  주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은,

  복이 있다.

  주님의 증거를 지키며

  온 마음을 기울여서

  주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다.

  진실로 이런 사람들은

  불의를 행하지 않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법도를 주시고,

  성실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율례들을

  성실하게 지킬 수 있도록,

  내 길을 탄탄하게 하셔서

  흔들리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모든 계명들을

  낱낱이 마음에 새기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주님의 율례를 지킬 것이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젊은이가 어떻게 해야

  그 인생을

  깨끗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길,

  그 길뿐입니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계명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 범죄하지 않으려고,

  주님의 말씀을

  내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합니다.

  찬송을 받으실 주님,

  주님의 율례를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그 모든 규례들을,

  내 입술이 큰소리로 반복하겠습니다.

  주님의 교훈을 따르는 이 기쁨은,

  큰 재산을 가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나는 주님의 법을 묵상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주님의 율례를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잊지 않겠습니다.“    (시편 119편 1-16절)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에 의하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지는 것은 율법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까지 이르는 본문 안에 율법이나 그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무려 15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이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바로 율법학자들이요,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면 그것이 곧 완전해지는 길이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찾아왔던 부자 청년은 당당하게 “나는 이 모든 율법조항을 다 지켰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바리새파 출신 사도 바울도 스스로 “나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여러분!

  모세가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전제하고 말했다면 이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시고 나서 그러니까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완전하다”는 단어인 희랍어 “taleios"는 바로 히브리어 ”tamim"의 번역이니 이 단어 역시 “갈라짐이 없이 일편단심으로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큰소리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비교해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미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또 모든 계명들을 다 지킨다고 큰소리칠 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실 율법을 지킨다는 점에서는 완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 실천은 율법의 참된 정신을 지키는 것도 아니고, 또 온전하게 지키는 것도 아니기에 그들은 자기들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도리어 방해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개종자 하나를 만들려고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하나가 생기면, 그를 자기들 보다 배나 더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주님은 꾸짖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왜 그들을 그렇게도 심하게 꾸짖으셨던가요?

  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큰소리쳤지만 이방인들을 무조건 저주했고, 동족인 유대인들을 이런저런 이유로 너무나 쉽게 정죄하고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그렇다면 여기서 “완전하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신적인 존재와 같은 절대적 완전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이것은 오히려 절망의 이유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지금까지 나온 산상수훈 말씀들, 그리고 특히 43-47절과의 연결을 생각해서 이해하면 그 뜻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완전하라”는 것은 유대교처럼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새롭게 제시하신 바 율법의 참된 정신을 지킬 때, 그리고 특히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것처럼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갈리짐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것을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완전하라”는 명령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의미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본문이 마태복음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19장 21절 말씀입니다.


  19장에 의하면 예수께서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 유대지역으로 가셨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에게, 선한 일을 묻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고자 하거든, 계명들을 지켜라.”

  그러자 그는 예수께 물었습니다.

  “어느 계명들입니까?”

  예수께서 계명들을 말씀하셨습니다.

  “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계명들이 있지 않으냐?”

  그러자 그 젊은이가 아주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켰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무슨 말입니까? 자기는 율법을 지키는데 있어서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조항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완전하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는 계명도 완전하게 다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여기에 나오는 단어 “완전한”이 바로 taleios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마태, 마가, 누가복음 세 군데에 다 나오는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본문에는 미안하게도 “네가 완전하고자 하거든”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이것 대신 “네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는데”라고 되어 있는데 오직 마태복음에만 “네가 온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이라고 바뀌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단어 “taleios"를 써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9장에 의하면 그 젊은이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그를 향해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거든”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모든 율법을 다 지키더라도 그것이 완전한 것이 아님을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이 율법을 지킴으로 결코 완전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곧 자기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즉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바로 완전하게 되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에 돌아와서 다시 보면 “너희도 완전하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바로 이어서 6장 1절에서부터 의로운 일을 행하는 것과 자선의 행위에 관한 가르침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완전한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완전해질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문자 그대로 도덕적으로 완전해질 수 있으며, 율법조항들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까?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아무런 흠이 없는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갈라짐 없이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면, 그리고 강대상 벽면에 붙어있는 표어처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이웃을 섬기는 봉사로 나타낸다면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하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물론 하나님처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율법적으로 완전해 지라는 말도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 온전히 하나님만 사랑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말로만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완전하다고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람들이 참된 제자요, 그들이 사는 세상이 곧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