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7 년도

2007. 4. 15 / 이혼에 대한 가르침 / 마태복음 5:31-32

람보 2 2015. 4. 2. 17:25

이혼에 대한 가르침


마태복음 5장 31-32절/2007년 4월 15일


  지난 주일이나 오늘이나 부활절 기간과 전혀 관계없는 설교를 하자니 듣거나 받아보시는 분들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의하면 예수께서 네 번째 설교, 즉 공동체 설교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설교를 마치시고 난 후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 유대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이때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고, 예수께서는 거기에서도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그분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무엇이든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이것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남자 입장에서 묻는 것이지요. 남편이 보기에 아내에게 흠잡을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아내를 버려도 되는 것 아니냐 라는 물음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남자의 입장을 합리화시키는 물음입니다. 그러자 그 속셈을 아신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한다’ 하신 것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여러분!

  이 말씀은 창세기에 기록된 바, 인류의 맨 처음 시조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함부로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창조의 질서에 속하는 일이요, 그것을 어기는 것은 곧 창조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을 들고 나섰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고 아내를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까?”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하는 이 말의 근거가 어디 나오는지 아십니까? 바로 신명기 24장 1-4절의 말씀입니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습니다. 그 여자가 자기 집을 떠나가서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는데, 그 둘째 남편도 그 여자를 싫어하여 이혼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 그 여자와 결혼한 둘째 남편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으므로, 그를 내보낸 첫 번째 남편은 그를 다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주님 앞에서 역겨운 일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주신 땅을 죄로 물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을 율법에서는 소위 ‘소박법’이라고 부릅니다. 남편이 아내를 소박해서 내 보내는 경우에 대한 율법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에 의하면 남녀가 결혼을 하고 난 다음에, 남편이 아내에게서 수치스러운 것을 발견하여 아내와 같이 살 마음이 없을 때에는,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고, 그 여자를 자기 집에서 내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여자들이 흠이 있어서 쫓겨나야 하는 경우보다는 남자들이 그럴 경우가 훨씬 많을 터인데 그럴 때 아내들이 남편을 내쫓아 버릴 수 있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으니 이는 너무나 불공평한 일입니다.

  어쨌든 문제는 아내가 저지른 수치스러운 일이 과연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을 놓고 율법학자들마다 의견이 달랐는데 그것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해당됩니다. 즉 간음, 풍기 문란, 계율을 어기는 일, 음식물을 태우는 일,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이는 일 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를 따른다면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는 여인네들 중에 음식물을 태운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여인들 중에 소박당하지 않을 사람이 없게 되겠지요.


  어쨌든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내를 소박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결정권이 전적으로 남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남편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아니 도대체 남편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이는 일이 소박당하는 이유가 되고, 그 판단기준은 오로지 남편에 달려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남편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아내를 자기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어쨌든 남편이 아내를 내보내려고 한다면 남편은 반드시 이혼장을 써서 아내의 손에 쥐어 주어야 한다고 신명기서는 말합니다. 그 순간 이혼이 성립되는데 이혼장에는 이혼 사유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남편 아무개가 아내 아무개를 소박하니 다른 남자가 데려가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적은 다음 남편과 두 증인이 서명하고 장소와 날짜만 쓰면 충분합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왜 이런 율법을 내려주셨던 것인가요? 그 이유를 예수께서 아주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모세는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 준 것이지,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19장 8절)


  그렇습니다.

  여기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자들의 마음이 너무나 완악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아내를 버리고 또 새로운 여자를 맞아들이고 하는 짓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렇게 대책 없이 쫓겨난 여자들은 가족들로부터 쫓겨나고 버림받은 후 도저히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죽음에 이르거나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되고, 아니면 이혼장도 없이 다른 남자와 살았다가는 간음을 저질렀다고 해서 돌에 맞아 죽게 되기에 그런 여자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대책이 바로 이혼장을 써주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명기 24장의 소박법은 이혼을 합리화시켜 주기 위해서 제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욕심을 제어하고,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코 이혼을 합리화시켜 주고, 이혼을 허락해 주기 위해서 제정된 율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자기들 멋대로 써먹은 것입니다.


  자, 이제 신명기서에 나오는 말씀을 전제로 해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는 사람은 그에게 이혼증서를 써 주어라‘ 하고 이른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


  주의 깊게 보십시오. 여기서 예수께서도 모세와 같이 이혼을 허락하신 것입니까?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라는 전제가 들어있으니까 얼핏 보면 ‘음행했을 경우’에는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신명기서에서 비록 이혼이 경우에 따라서 허용되기는 했으나 그 실행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시대부터 불만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 말라기는 일찍이 이혼을 계약의 파기라고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너희가 잘못한 일이 또 하나 있다.

  주님께서 너희 제물을 외면하시며

  그것을 기꺼이 받지 않으신다고,

  너희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주님의 제단을 적셨다.

  그러면서 너희는 오히려,

  ‘무슨 까닭으로 이러십니까?’

  하고 묻는다.

  그 까닭은,

  네가 젊은 날에 만나서 결혼한

  너의 아내를

  배신하였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이 일에 증인이시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너의 동반자이며,

  네가 성실하게 살겠다고

  언약을 맺고 맞아들인 아내인데도,

  네가 아내를 배신하였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네 아내를 만들지 않으셨느냐?

  육체와 영이 둘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명심하여,

  젊어서 결혼한 너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나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나는 미워한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명심하여

  아내를 배신하지 말아라.‘ “   (말라기서 2장 13-16절)


  그렇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은 계약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를 버리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시고,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내를 학대하고, 이혼장을 써 주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혹 아내가 남편을 학대하고 이혼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요?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을 하면서 남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들 중에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자기를 버리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어쨌든, 그렇다면 오늘의 본문에서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라고 했을 때 ‘음행한 경우’란 어떤 경우를 말합니까? 그리고 이유야 어떠하든지 간에 ‘음행한 경우’라면 이혼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여기에서 우리는 원문을 정확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간음’에 해당되는 단어가 두 가지 나오는 바 ‘moicheia'와 ’porneia'가 그것입니다. ‘moicheia'는 문자 그대로 ’간음‘으로 번역되는 행위, 즉 부정한 성 행위를 말합니다. 만약 예수께서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면 이는 당시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파 사람들의 가르침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간음이 원인이 되는 이혼은 모두 다 똑같이 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단어는 ‘moicheia'가 아니라’porneia'인데 이 단어는 단순한 ‘간음’이 아니라 레위기 18장에 나오는 바 ‘부당한 혼인’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레위기 18장에는 여기서 제가 차마 읽기 어려운 부끄러운 일들이 기록되어 있고,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철저하게 금하시면서 그런 짓을 저질렀을 때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벌을 내리신다고 하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가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가까운 살붙이에게 접근하여 그 몸을 범하면 안 된다. 나는 주다”라고 표현된 것과 같이 주로 근친상간과 같은 있어서는 안 되는 범죄를 지적하고 계신 것이며,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엄중한 벌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범해서는 안 되는 죄목들을 조목조목 지적하신 후에 24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저지르면, 이것은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니,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들이, 바로 그런 짓들을 하다가 스스로 자신을 더럽혔다. 따라서 그들이 사는 땅까지 더럽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악한 땅을 벌하였고, 그 땅은 그 거주자들을 토해 내게 되었다. 너희는 모두 내가 세운 규례와 내가 명한 법도를 잘 지켜서, 온갖 역겨운 짓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범하지 않도록 하여라. 본토 사람이나 너희와 함께 사는 외국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서 살던 사람들은, 이 역겨운 모든 짓을 하여, 그 땅을 더럽히고 말았다. 너희가 그 땅을 더럽히면, 마치, 너희보다 앞서 그 땅에 살던 민족을 그 땅이 토해 냈듯이, 너희를 토해낼 것이다. 누구든지 위에서 말한 역겨운 짓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범하면, 백성은 그런 짓을 한 그 사람과는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지키라고 한 것을 꼭 지켜서, 너희보다 앞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이 저지른 역겨운 풍습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따라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런 짓들을 하여, 너희가 스스로를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레위기 18장 24-30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남자들이 자기 멋대로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핑계를 대고 내쫓아버리는 것을 막고 그 대신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성적인 타락을 경고하시고, 인륜을 파괴하는 죄악을 꾸짖으시며, 그런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가장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은 간음했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하는 경우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결혼에 대해 그것이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 맺은 결혼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아내를 마음대로 쫓아내버린 남편의 재혼은 물론 허용되지 않고, 나아가서 소박조차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결혼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일찍이 모세가 선포했던 소위 ‘소박법’까지 폐기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32절 말씀은 이러한 예수님의 결혼관을 깊이 깨닫고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철저하게 이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내를 쫓아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가부장적이고 가족공동체에 속해 있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당시 사회에서 소박맞고 쫓겨난 여자는 홀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너무나 힘들기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재혼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서 아내를 소박하는 것은 아내를 재혼하도록 몰아붙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결혼이 엄연히 유효한데 재혼하는 것은 간음이고, 그런 점에서 여자를 재혼하게 만드는 남자도 죄를 짓는 일이요, 그렇게 부당하게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도 역시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신명기의 율법은 남자들의 욕심을 제어하고, 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것입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이, 유대인 남자들이 제멋대로 해석해서 아내를 쫓아내고 새로운 여자를 맞아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아예 소박법 자체를 뛰어넘으심으로써 여자들이 불행을 당할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자, 이제 지난 설교를 정리해 보십시다. 마태복음 기자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21절부터 32절까지에서 세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33절부터 48절까지 에서도 또다시 세 가지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했던 세 가지 말씀 안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하게 약자들을 존중하고, 공동체 분열의 원인을 근절시키고,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 뜻인 근본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21-26절에는 형제자매로부터 공연히 화풀이당하고, 바보, 얼간이라고 멸시당하는 약자들이 나옵니다. 27-28절에는 남자들에게 눈요깃감이 되고,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29-30절에는 온갖 핑계로 남편들로부터 버림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분을 내고, 욕을 하고, 제멋대로 음욕을 품고, 이혼증서를 써주는 것이 곧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임을 분명히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참된 정신은 바로 율법을 문자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나 돈의 힘뿐만 아니라 율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들을 지키는 것임을 새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러한 약자들이 주인이 되고, 인간답게 대접받고, 참다운 정의가 이루어지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 당시 율법이 강조되던 것처럼 교회 출석이나 신앙행위는 강조되지만 진정 교회 안에서 약자들이 주인이 되고, 인간답게 대접받고, 참다운 정의가 이루어지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까? 아니면 그런 공동체와는 거리가 먼 공동체가 되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진실한 뜻, 곧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으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뜻을 실천함으로써, 주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바 하늘나라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