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머물러 있으면
요한복음 15:1-10/ 2006. 3. 12
우선 시편 80편에 나오는 아삽의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하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뽑아 오셔서,
뭇 나라를 몰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습니다.
땅을 가꾸시고
그 나무의 뿌리를 내리게 하시더니,
그 나무가 온 땅을 채웠습니다.
산들이 그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울창한 백향목도
그 가지로 뒤덮였습니다.
그 가지는 지중해에까지 뻗고,
새 순은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뻗었습니다.“ (시편 80:8-11)
“주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뽑아 오셨다”라는 이 구절에서 우리는 쉽게 여기서 말하는 포도나무가 바로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 곧 이스라엘 민족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포도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 곧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그 민족을 뽑아 오셔서, 뭇 나라를 몰아내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땅을 가꾸시고 그 나무의 뿌리를 내리게 하시더니, 그 나무가 온 땅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크게 번창했다는 것입니다. 산들이 그 포도나무 그늘에 덮이고, 울창한 백향목도 그 가지로 뒤덮였다는 것입니다. 그 가지는 지중해에까지 뻗고, 새 순은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뻗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영토는 지중해에서 아라비아 사막까지, 그리고 이집트에서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뻗어났습니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시대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편기자는 바로 이어서 이렇게 한탄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 울타리를 부수시고
길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 열매를 따먹게 하십니까?
멧돼지들이
숲에서 나와서 마구 먹고,
들짐승들이
그것을 먹어 치우게 하십니까? )시편 80:12-13)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도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그렇게도 엄청난 부를 자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망했습니다.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끊임없이 이민족의 침략을 받아 약탈당하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느냐고 하나님 앞에서 한탄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왜 나라는 망해가고, 이방민족들은 끊임없이 쳐들어와서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노래를 해 주겠네.
그가 가꾸는 포도원을
노래하겠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고 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한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거기에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 뿐이었다네.
예루살렘 주민아,
유대 사람들아,
이제 너희는
나와 나의 포도원 사이에서
한 번 판단하여 보아라.
내가 나의 포도원을 가꾸면서
빠뜨린 것이 무엇이냐?
내가 하지 않은 일이라도 있느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는데
어찌하여 들포도가 열렸느냐?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내가 그 밭을 황무지로 만들겠다.
가지치기도 못하게 하고
북주기도 못하게 하여,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만
자라나게 하겠다.
내가 또한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이스라엘은
만군의 주님의 포도원이고,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이사야서 5:1-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농부이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포도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진 언덕에서 포도원을 가꾸셨습니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거기에 아주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한 가운데 망대를 세우고, 포도주 짜는 곳도 파 놓고, 좋은 포도가 맺기를 기다렸습니다. 물론 거름도 주고, 시시때때로 물도 주었습니다. 이제 좋은 포도열매만 맺으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뜻밖에도 열린 것이라고는 들포도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열매가 열리기를 바랐는데 시큼털털하고 먹을 수 없는 들포도만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무슨 일을 하려는지를
너희에게 말하겠다.
울타리를 걷어치워서,
그 밭을 못쓰게 만들고,
담을 허물어서
아무나 그 밭을 짓밟게 하겠다.
내가 그 밭을 황무지로 만들겠다.
가지치기도 못하게 하고
북주기도 못하게 하여,
찔레나무와 가시나무만
자라나게 하겠다.
내가 또한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이사야서 5:5-6)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입니까?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지자 이사야는 냉철하게 지적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선한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보이는 것은 살육뿐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옳은 일 하기를 기대하셨는데,
들리는 것은
그들에게 희생된 사람들의
울부짖음뿐이다.“ (5:7)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거문고와 소구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주님께서 손수 이루시는 일도
거들떠보지를 않는다.“ (5:12)
“악한 것을 선하다고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슬기롭다 하는 그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포도주쯤은 말로 마시고,
온갖 독한 술을 섞어 마시고도
끄떡도 하지 않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하며,
의인의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구나.“ (5:20-23)
그렇습니다.
결국 문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저지른 죄악이었습니다. 그 죄악의 결과, 좋은 포도나무였던 이스라엘 민족은 뽑혀 나갔고,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께서 새로운 포도나무를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자신이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시고, 주님은 참 포도나무이십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제자들은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그 포도나무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지가 많으면 그 나무가 풍성해 보이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라는 사실입니다. 포도나무가 아무리 가지가 풍성하고 아름답게 보여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다 하여도 먹을 수 있는 좋은 열매가 아니라 먹을 수 없는 들포도를 맺는다면 그것 역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가지는 잘라져 나갈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 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손질하신다.”
여러분!
나뭇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데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붙어 있다고 해서 다 열매를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붙어 있되 뿌리로부터 끊임없이 양분과 물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가지에 먹음직한 좋은 열매들이 풍성하게 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분과 물을 공급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양분과 물을 공급받는 관이 막혀 있지 않고 소통이 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뇌경색이나 뇌출혈이 왜 문제를 일으킵니까? 혈관이 딱딱하게 굳어서 막히거나, 피 속에 불순물이 섞여 들어가거나 혈관을 시원하게 통과하지 못하고 어느 한 부분을 막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막힌 곳은 뚫어 주어야 하고, 피 속의 불순물은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4절에 나오는 “깨끗하게 되다”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희랍어로 ‘카타이로’(καθαίρω)는 “깨끗이 하다”는 뜻인데 이 단어는 ‘카타리조’(καθαρίζω), 즉 “정화하다”라는 단어와 동의어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음으로 악으로부터,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을 때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열매는 무엇입니까?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어서 내 제자가 되면, 이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
그렇습니다.
결국 다시 사랑으로서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다시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예수의 사랑을 증거하며 사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국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어떻게 이웃 사랑으로 나타내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물음을 안고 일생동안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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