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11-14:5/ 1996. 4. 20.
그 옛날 아합 왕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아합 왕은 그의 부인 이세벨과 함께 하나님을 저버리고 바알신을 섬기는데 열심이었습니다. 곳곳에 바알의 사당을 짓고 아세라신의 목상을 세우고 또 제멋대로 제사장들을 임명하여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칠 것을 요구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몰래 숨어서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 때 엘리야라는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여호와의 예언자들이 아합과 이세벨의 손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엘리야도 두려웠고 말씀을 선포하기가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엘리야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합왕에게 가라. 가서 이렇게 말하라.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앞으로 몇 년 동안 비 한 방울,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죽이려 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들어가 까마귀들이 날라다 주는 음식을 먹었다고 열왕기상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가 지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갈멜산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1:850의 싸움을 벌이게 하셨습니다. 각각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친 후에 어느 신이 불로 제물을 태우는지 확인하는 시합이었습니다. 이때 여호와께서 이기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850명의 제사장들을 잡아 죽이게 되지요.
이때까지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이 메말라 버렸습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모두 다 목이 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도 하늘에는 구름한 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사환 하나를 데리고 갈멜산 꼭대기도 올라갔습니다. 왕상 19:42에 의하면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간절한 기도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사환에게 바다가 있는 쪽을 바라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똑같은 일을 여섯번 되풀이하고 일곱번째가 되었을 때 엘리야의 사환이 말했습니다.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저 멀리 바닷가에 요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 사환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아합왕에게 가라. 이제 큰 비가 내릴 터이니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 가라고 아뢰어라” 3년 반 동안이나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는데 저 멀리 하늘 끝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보인다고 해서 이제 곧 큰 비가 내릴 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렸다고 성경은 기록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구름 한 조각을 통해 큰 비가 내릴 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예언자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지극히 작은 사건, 그래서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릴 수 있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예언자들,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설교자들은 우리에게 보여지는 지극히 작은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과천이라는 도시에 삽니다.
참으로 살기 좋은 전원도시이지요. 전국에 있는 모든 도시를 대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꼽거나 살고 싶은 도시를 조사하면 으레 1,2등을 차지하는 곳이 바로 과천입니다. 어느 신문에 보니까 대개 과천과 서귀포시를 꼽더군요.
남태령만 넘어가면 벌써 공기가 다르다.
관악산, 청계산 - 등산, 약수터
아파트 옆으로 흐르는 개울-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고기 잡으며 놀고 물장구치고 놀 수 있는 계곡도 있다.
아이들 교육 여건이 좋다.
유흥가가 없고 동물원, 미술관, 서울랜드, 자전거도로, 곳곳에 소규모놀이터가 많이 있다.
초등학교 학교급식이 이미 이루어져 있고 시청, 동회 공무원들이 참으로 친절하다.
정부종합청사가 있어서 행정 시범지구 모범실시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등등이 과천의 자랑거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파트의 반장이 무슨 앙케이트 설문지 같은 것을 가져 왔습니다. 설문지에 답을 해서 내면 전자신분증을 발급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자신분증, 아주 조그마한 크기의 신분증인데 그것 하나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Credit Card 등 모든 것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모든 신분증의 기능을 하나로 묶어서 사용할 수 있는 지극히 편리한 신분증이었으며, 설문지에 답을 써서 내일 아침까지 신청하면 전자신분증을 국내 최초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참 좋겠다.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귀에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설문에 답을 써 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설문을 읽고 답을 써 내려가는 중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카드 하나로 누군가가 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이 카드를 관리하는 사람이나 기관은 어디인가?
그곳에서 나에 관해 완전히 파악하면 나 자신의 프라이버시는 보장될 수 있는가?
지금도 내가 전혀 모르는 곳에서 불쑥 우편물이 날아와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국가가 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헉슬리가 지은 “1984년”이라는 제목의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만일 그 카드를 잃어버리면, 그래서 내 카드를 다른 사람이 대신 사용한다면 큰 혼란이 생길 것은 아닌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사람의 몸에 카드를 새기는 일이 생긴다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마음 속에 퍼뜩 요한 계시록 13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몸에 카드를 새긴다면 새길 곳이라고는 이마 밖에 없을 텐데, 아기가 태어날 때 마치 주민등록번호를 주듯이 비밀번호를 하나씩 매겨서 이마에 새겨 놓으면 평생 잊어버리지도 않고 그 이마에 새긴 카드 하나로 그 사람의 일생을 알 수 있게 되는 무서운 세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물건을 사고 팔 수도 없고 일체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그런 상황이 이미 계시록에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저는 오늘의 본문을, 특히 그중에서도 16-18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물건 사고파는 것을)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그 유명한 666, 곧 짐승의 수가 이마나 오른손에 666이라는 표가 찍혀야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찍힌 사람만이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 계시록 13장은 소위 두 짐승의 등장에 관한 장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 때가 오면 두짐승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바다로부터 나오고 또 하나는 땅에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사탄을 나타내는데 사탄이 하나님을 흉내 내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짐승의 모양으로 나타난 사탄이 새끼양 곧 예수님처럼 두 뿔이 있다는 것은 그의 권력을 나타내고 또 그 짐승은 예수님처럼 이적을 행하기도 합니다.
또 자기의 모양을 동상으로 만들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우상에 절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우상에 절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표를 찍어 주었으니 그것이 곧 666이라는 것입니다.
666이 무엇을 나타내는 가는 많은 학설이 있어 왔습니다.
루터 같은 종교개혁자들- 로마교황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이라는설, 심지어 김일성이라는 설
계시록은 미래 역사를 나타내는 연대표로 해석하려는 사람.
오늘날 많은 부흥사들이 이렇게 해석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원래 계시록을 썼을 때를 생각해보면 666은 곧 그 유명한 박해자 네로 황제로 나타난 사탄의 세력이 황제를 신으로 섬기게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예수를 배반하라고, 하나님을 모른다고 고백하라고, 그래야 마음편하게 살 수 있다고 유혹하고 그래서 끝내 비교하면 하나님 대신 살려주는 대 박해를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결국666은 네로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의 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666이라는 숫자가 단지 네로 황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늘 우리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666이라는 것과 이 목사가 전자카드 만드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목사가 괜히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저는 그 전자카드 만드는 것을 거부했는데 그것은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가 아닌가? 더군다나 오늘과 같은 컴퓨터 사회에서 컴퓨터를 666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신앙은 너무 고리타분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러분!
이제 요한계시록 14장 1절을 읽어보십시오.
“또 내가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여러분!
정확히,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사도 요한이 보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이마에 찍어 그것으로 자유롭게 물건을 사고팔고 있는데 그 옆에 144,000 명의 무리가 시온 산에 어린양 곧 예수와 함께 서 있는 것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자세히 보니까 그들의 이마에도 무엇인가가 쓰여 있었는데 그것은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144,000명이라는 숫자는 12x12x1,000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즉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1,000 곧 누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144,000명에게는 그 이마에 예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144,000명은 사도 요한 당시 박해를 당하면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고,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끝내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순교한 믿음의 용사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놀라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본문을 포함한 요한계시록이 단지 네로 황제의 박해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는가?
만약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요한계시록 네로 황제의 박해를 당해 말할 수 없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당시 교인들에게 믿음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격려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주셨던 역사 해석이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의 제시였습니다. 저는 오늘 바로 이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사도 요한의 시대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온, 또 앞으로 살아갈 모든 시대는 결국 두 세력간의 싸움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사탄, 두 세력간의 싸움입니다. 사탄은, 악의 세력은 하나님을 본 따 온갖 이적과 술수를 다 부리면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제일 확실한 방법 그것이 곧 666이니 그것만 찍으면 무엇이든지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은 곧 제 욕심을 마음 껏 채울 수 있다는 말이고 이는 인생의 목적이 오로지 제 욕심을 채우는데 있는 사람들이요, 그것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권력을 쥘까, 출세를 할까 하는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요,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예수께서 받으신 세가지 시험 중에서 첫번째 것에 해당됩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께 던졌던 첫번째 유혹,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로 떡이 되게 하라.“ 이는 곧 네가 메시야라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보라는 유혹이요, 그것을 위해 하나님마저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마에 666이 찍힌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철저하게 나만 알고 내 배만 채울 줄 아는 사람들, 사도 바울이 빌 3:19에서 말한대로 자기의 배를 신의로 삼는 (하나님으로 여기는)사람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오직 나를 위한 수단이라고만 여기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주인은 곧 사탄이고 그곳은 곧 지옥인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짧게 보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이기는 것 같고 세상은 사탄의 지배를 받는 것 같으나 사도 요한은 바로 그때 시온산에 서 있는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서 있는 144,000명의 성도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정절을 지킨 자요, 어린양이 인도 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은 사람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에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마에도 글씨가 씌어져 있었는데 그 글씨는 곧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일생동안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내가 내 삶의 목적이 아니고, 내 욕망을 채우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인생의 목표를 삼은 사람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신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일생 예수를 따른 사람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을 이루고자 꿈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탄의 세력에 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무 힘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요한 계시록은 결코 황당무계한 책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허황된 꿈을 꾸고 그것을 기록해 놓은 책도 아닙니다. 이 책은 바로 오늘 우리들에게 인생의 근본 문제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책입니다.
네 인생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사탄인가?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네 자신의 욕망 충족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너희가 이루려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제 욕심만 채우려고 싸우는 지옥같은 세상인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천국 같은 세상인가?
결국 믿음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위대한 꿈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맨 처음 외치셨던 말씀 그대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위대한 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고 겨자씨 같이 작아 보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위대한 꿈입니다. 이마에 666이 찍힌 사람들이 아니라 이마에 그리스도라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찍힌 사람들이 만들어 나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위대한 꿈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누릴,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위대한 꿈입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옥같이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현실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천국과 같은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삶의 과정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일찌기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새로운 세상을 35장 5절 이하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그리로 다닐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그리로 다닐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악한 사람은 그 길로 다닐 수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길에서
서성거리지도 못할 것이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도
그리로 지나다니지 않을 것이다.
오직 구원받은 사람만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갈 것이다.“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의 회당에 돌아가셨을 때 당신이 이루실 나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 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는 4월 20일 하루만을 “장애우의 날”로 지킨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부터 먼저 변화되어 삶의 가치관과 목적이 바꾸어질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 단 한분도 666을 이마에 찍고 사는 분이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이마에 새기고 새로운 세상을 이루려 애쓰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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