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36-50/ 1996. 2. 18.
우선 오늘 교회학교 교사로 임명 받으실 선생님들께서 나오셔서 찬양을 한 곡 불러 주시겠습니다. 곡목은 “난 예수가 좋다오”입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시몬이라고 불리우는 한 바리새인의 가정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음식을 잘 차려 놓고 예수님을 청했고 예수께서는 기꺼이 그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아마 그 바리새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음식을 많이 차렸을 것이고 그것으로 자랑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49절에 “함께 앉은 자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동료 바리새인들을 많이 청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 가셔서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음식이 가득 차려진 상 가장 좋은 자리에 앉으시라고 주인이 권했을 것이고 이제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한 여인이, 청함을 받지 않은 한 여인이 바리새인의 집안으로 불쑥 들어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막을 겨를도 없이 그녀는 예수께로 다가갔습니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까 그녀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아주 비싸 보이는 옥합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의 뒤로 가더니 주님의 발 곁에 서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녀의 눈물이 예수의 발을 적실만큼 흘렀고 그녀는 무릎을 끊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옥합의 뚜껑을 열더니 그 속에 담긴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귀하고 비싼 향유가 참으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녀는 옥합을 거꾸로 들고 향유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주님의 발에 쏟아 부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녀의 하는 일을 말릴 만 하건만 예수께서는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녀는 실컷 울었고 향유를 다 쏟아부었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과 그의 동료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 바리새인은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가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았을 텐데”
예수께서 시몬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그래서 시몬을 부르셨습니다.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시몬이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십시오”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시몬아,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진 사람이 둘 있었다. 한 사람은 3,000만원의 빛을 졌고 다른 한사람은 300만원의 빚을 졌다. 그런데 두 사람이 다 갚을 길이 없게 되자 돈 놀이꾼이 두 사람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바리새인 시몬은 쉽게 대답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히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지요.”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시몬아 너는 이 여자를 보고 있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 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시몬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그냥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시몬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서는 두 사람의 중요인물이 등장합니다. 시몬이라고 이름까지 밝혀진 바리새인 남자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그냥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한 여인이 그들입니다. 바리새인 시몬, 그는 사는 것도 넉넉합니다.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많은 사람을 초대할 수 있을만큼 넉넉합니다. 공부도 할 만큼 한 사람이고 어디가서나 존경받고 살만한 사람입니다.
그 여인은 정반대의 사람입니다. 존경받기는커녕 한마디로 죄인이라고 손가락질당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유난히 여자들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이 여인은 그 이름을 밝힐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37절에 나오는 “죄인인 한 여자”라는 표현은 “죄에 몸을 바친 여자”라는 뜻인데 이것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죄인 취급받던 창녀, 곧 몸팔아 먹고 사는 여인을 말합니다.
그 여인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먹고 살려고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다가 한 남자 만났는데 살다가 버림받고 나중에는 그런 처지에 빠졌겠지요. 세상에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돈만 모아야 되겠기에 그녀는 결사적으로 돈을 모았을 것이고 그녀가 가지고 와서 예수께 부어드린 향유는 그녀의 전재산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욕먹으며 살았던 여인이었습니다. 그 두사람 중 누가 구원받을지는 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를 청해 놓고는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않았습니다. 손님을 청하면 당연히 손씻을 물을 드려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돈 들여 음식을 차리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그는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 현대의 기독교인들의 상징인지 모릅니다. 그는 자기가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는 자만에 빠져있었습니다. 내가 교회 다니니까, 장로도 되고 권사도 되고 집사도 되었으니까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죄인인 것은 조금도 깨닫지 못했고 따라서 죄의 용서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자기가 특별히 용서받아야 할 죄가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를 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자기의 모든 죄가 생각났습니다.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한 없이 울었고 머리카락으로 주님을 발을 닦았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향유를 부었습니다. 아마 이때 그녀가 노래를 불렀다면 바로 이 노래를 불렀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여러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 흘려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리고 입으로 따라 부르면서
눈물 흘려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주를 사랑한다던 베드로 고백처럼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노래에 아멘으로 응답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
제가 벌써 여러번,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하고 헌금 많이 바치고 교회 직분이 높아져서 출세하고 교회 일을 쥐락펴락 한다 해도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가 좋다오.
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소리 높여 찬송 부르지 못하고 마음껏 울어보지 못했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건 신앙이 아닙니다.
그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바리새인 시몬과 같이 스스로 혼자 훌룡한 척, 혼자 교회 위하는 척, 혼자 교회일 다하는 척 해 보아야 그 마음속에 사랑이 없고 눈물이 없다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난 주일 아침 1부 예배때였습니다. 1부 예배 때는 설교시간 직전에 할렐루야 성가대원이 나와서 특송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날도 한 여자 대원이 앞에 나섰습니다. 그녀는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녀가 부른 곡은 찬송가 337장이었습니다.
"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때에 날 부르소서."
그녀는 참으로 고운 목소리로 계속 2절을 불렀습니다.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
그런데 2절 후렴을 부를 무렵부터 그녀는 목이 메이기 시작했습니다.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사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주여 주여 내말 들으사
죄인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2절이 간신히 끝나고 반주자의 간주가 있는 동안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지만 4절을 부르는 동안 내내 그녀는 울먹였고 간신히 찬송을 끝마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의 눈물 속에서 주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그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던 제 눈에도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녀의 울먹임 속에서 주님을 향한 그녀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불렀던 노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통해 그녀의 믿음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녀가 불렀던 찬송 337장을 부르시면서 눈물 흘렸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 가사 하나하나가 바로 내 신앙 고백이라고 소리높여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하면서 주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렸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그 찬송 부르는 것을 듣고 참으로 마음을 다해 “아멘”하고 화답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혹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거룩해지고 높아져서 눈물도 메마르고 감격도 사라진 것은 아닙니까?
소위 역사를 자랑하고 오래된 교회에 다니는 교인일수록 눈물과 감격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기억하십니까?
예수를 청하기는 했지만 그 앞에 뻣뻣하게 앉아 있는 바리새인 시몬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몬, 그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교회학교 교사 임명예배로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임명받는 이 분들이 우리 교회의 장래를 짊어지게 될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지신 분들입니다. 이분들 중에는 학교에서 현직 교사로 수고하시는 분들도 몇 분 계십니다마는 대부분은 교직을 전공하신 분들이 아니고 또 아직 대학에 다니거나 대학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이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미덥지 못한 면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교사로 임명받으시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분들이야말로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좋아서 하는 분들입니다.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즐겁고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좋아서 교사를 지원하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이 분들은 모두다 “난 예수가 좋다오” 라고 고백하시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우리들 가운데 그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아이들을 위해 바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우리 교회의 장래가 젊은이들과 어린이들의 어깨에 걸려 있다면 여기 있는 바로 이 선생님들이야말로 교회의 장래를 책임진 분들입니다. 교회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을 것 기대하지도 않고, 장학금 넉넉하게 받을 것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러나 아이들 사랑하고 예수님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그 사랑만으로 교사하겠다고 다짐하고 지원한 분들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의 본문 끝부분을 읽어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고 향유를 부은 그 죄 많은 여인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참으로 놀라운 선언입니다. 율법적으로 도저히 깨끗해질 수 없고 신앙생활 한 번 제대로 해 본적 없는 여인을 향해 하신 선언입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함께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 바리새인 시몬과 그의 동료 바리새인들 모두 놀랐습니다. 자기들의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예수,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자기가 하나님이란 말인가?”
그러자 예수께서 한 마디 덧붙이셨습니다.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렇습니다.
구원의 길은 바리새인이 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은 교회의 직분이 높아지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은 얼마나 많은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 얼마나 주님을 사랑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은 바로 이 구원의 길을 전하는 분들입니다. “난 예수를 좋아 한다오” 라고 찬양 부르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를 전하기 위해 오늘도 새롭게 다짐하는 분들입니다.
바로 여기 앉아 있는 이 선생님들을 통해 교회학교가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예수가 증거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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