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3:7-14/ 1996. 3. 31.
오늘은 우리의 사랑하는 교우들 중에서 몇 분이 세례를 받고 입교를 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교회의 정식 교인으로 태어나는 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생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오늘은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미 갖고 있는 생일 못지 않은, 아니 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날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우선 세례 받으신 것을 축하하면서 이미 세례를 받은 여러분들과 함께 세례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 보고 싶은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걸쳐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면서 창세기 저자는 매일매일 그 날의 창조 역사가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여섯째 날에 사람과 짐승을 만드시고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람들이 죄를 짓기 시작하여 세상이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다 먹은 이래 인간은 거짓과 위선, 형제살인, 간음, 등등 온갖 죄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에 죄가 얼마나 가득 찼는지를 창세기 6:5에서 이렇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 뿐임을 보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죄악을 쓸어버리고자 작정하셨으니 이것이 곧 노아의 홍수사건입니다. 온 세상을 물로 뒤덮어 버림으로써 죄악에 사로잡혀 사는 모든 인간들을 심판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만은 달랐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6:9-10에 의하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다.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을때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 합해서 여덟 명만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홍수의 물은 곧 죄를 씻어 버리는 것이고 물속에 잠겨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태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노아시대의 홍수는 바로 우리 기독교의 세례를 상징하는 것이니 곧 우리가 세례를 받으므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노아의 방주 사건)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입니다.“ (베드로전서 3:21, 표준새번역 신약전서 초판)
그렇습니다.
오늘 이 분들이 받으신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내려 한다면 그런 분들은 이곳에 오실 것이 아니라 사우나에 가셔야 할 것입니다. 단지 머리에 물 몇 방울 떨어뜨린다고 해서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낼 수는 없습니다. 세례의 참뜻은 단순히 육체의 더러움을 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의로운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을 얻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 표로 왜 세례를 꼭 받아야 합니까? 세례를 받지 않고도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묻고 싶은 분들이 이 자리에 계신가요? 그런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꼭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8-20 말씀입니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모든 족속에게, 항상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이렇게 세례를 강조하셨는가요? 왜 꼭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가요? 그 해답은 마가복음 16:15-16에 나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 그래서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셨고 그 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생을 주신다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믿지 않으면 사탄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심판에 들게 된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모두 한 번 솔직하게 생각해봅시다.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다 세례 받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니까, 우리끼리니까 솔직하게 한번 생각해봅시다. 과연 예수 믿고 세례 받았다는 기독교인들이 세례 받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했다는 세상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세례 받을 때 이미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우리들이 사탄의 자녀라고 손가락질 받는 세상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사실은 오늘 바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 교회를 포함하여 한국교회가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제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6개월 전 요단강 근처 어느 광야에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생전 깎지도 않은 머리에 거친 구레나룻을 기르고 몸에는 짐승의 가죽옷을 걸치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습니다.
400년 이상이나 예언이 끊어졌었기에 예언자의 출현을 기다렸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 광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세례를 받기위해 길게 줄을 섰습니다.
그런데 이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 중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다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고 큰소리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쉽게 손가락질 하던 신앙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스스로 경건한 체 하며 거룩한 척 하는 평신도 지도자들이요 목회자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려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렇습니다.
너희가 목사가 되었다고, 장로가 되었다고 그러니 이제 구원받았다고 큰소리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사가 되었다고, 권사가 되었다고,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으스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손가락질하는 세상 사람들이나 믿음이 없다고 우습게 아는 사람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직분이 높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오직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란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 당시 무리들도 답답해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하란 말입니까?”
이때 세례 요한이 대답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지극히 간단합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 옷 두 벌은 문자적으로 보면 겉옷이 두 벌 있을 때 한 벌을 주라는 말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번역에 의하면 겉옷 속에 두 벌을 입었을 때 그 중 하나를 주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추위를 전제로 하는데 다른 사람은 추위에 떨면서 속옷도 입지 못한 채 얇은 겉옷만 걸치고 있는데 자기는 속옷을 두 벌이나 껴입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쨌든 간단합니다. 겉옷이든 속옷이든 두 벌 있는 사람은 한 벌을 그나마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여유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세리가 찾아와서 물었을 때 요한은 대답합니다.
“정한 세금 이외에는 부당하게 억지로 거둬서 네 배 채우는 일을 하지 말라”
군인들에게도 대답합니다.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등쳐먹거나 하지 말고 너희들이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라”
이것 역시 아주 간단합니다. 세리든 군인이든 자기의 자리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하지 말고 정당하게 살면서 끊임없이 나누어 주고 도우며 살아가라, 그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 가운데 예수를 찾아왔던 부자청년 이야기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의 주인공 그리고 세리 삭개오를 아시지요.
내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큰소리치며 찾아왔던 부자 청년, 율법을 하나도 어기지 않았노라면 당당하게 예수 앞에 섰던 부자 청년, 그러나 그는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만 쓸쓸하게 돌아서고 말지요.
농사가 잘 되었다고 좋아하던 한 농부. 곡식이 너무 많아서 쌓아둘 데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마침내 커다란 창고를 짓고 만족해하던 한 농부 이제는 곡식을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으니 “내 영혼아, 먹고 마시며 즐기자”라고 큰소리치던 농부. 그를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가 쌓아놓은 곡식이, 뉘 것이 되겠느냐?”(네 예비한 것이)
그러나 여러분!
그들과 똑같이 부자였던 세리 삭개오. 민족 반역자라고 손가락질 받았기에. 숏다리라고 놀림 받았기에 오직 돈만 모았던 세리 삭개오.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고백했던 말을 여러분 아시지요.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부당하게 억지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나이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니라”
그렇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같이 자기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큰소리치며 스스로 믿음 좋고 경건한 척 하지만 사실은 제 욕심만 차리는 사람들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와 같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사람들이 자기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을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입으로 백날 회개한다고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회개했다고 울고불고 야단해도 소용없습니다. 돈이 회개하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지갑이 회개하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지갑에 아무리 돈이 많고 통장에 아무리 예금이 많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나, 내 가족들만을 위해 쓰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벌벌 떨고 인색 하다면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하고 직분이 아무리 높고 무슨 이상한 체험을 아무리 많이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합당한 열매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것은 곧 옷 두 벌 가운데 한 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 나누어 주고 정당하게 벌면서 끊임없이 나누어 주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인 것입니다.
이제 유명한 목사님 두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한 사람은 아주 유명한 부흥사.
내가 중고등부 시절 그분 부흥회 설교를 들었으니까(그분 기억에 남는 것은 따발총 소리뿐)
이제는 손주가 대학에 다닐 만큼 컸으니까 꽤 나이 드셨는데 아직도 신문에 사진이 빠지지 않고 제법 큰 교회 목회도 하고 있다. 정력적으로 부흥회도 다님. 손주가 할아버지이신 그 목사님께 용돈을 자주 탄다. 대개 사우나로 오라고 하는데 한 번 가면 보통 지갑에서 수표를 뭉치로 꺼내어 준다. 물론 부흥회 인도하러 가서 사례비 받고 교회에서 사례비받고 돈 많으니까
“내돈 내가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해” 그러면 할 말 없지만 그러나 그가 외치는 부흥회에서의 회개 촉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한 사람 남서울 교회를 개척해서 21년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홍정길 목사. 교회가 어느정도 성장 하면 교인들을 자꾸자꾸 떼어서 내보내고 자립시키던 그래서 그동안에 벌써 네 개의 교회를 성장시킨 분.
이번에 그 교회담임목사 자리 사표를 냈는데 그 이유가 다섯번째 개척교회를 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 교회는 바로 자폐아 정서 장애자들 모아 훈련시키고 자립시키는, 그리고 신앙으로 키우는 교회라는 것. 교인들이 돈을 모아 주어서 그 교회를 시작했는데 그 분의 지론은 헌금은 내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의 것이며 교회 예산의 70%는 선교와 구제 봉사로 써야 한다는 것.
저는 담임목회를 하게 되면 50%는 그렇게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분은 70%를 그렇게 쓰고 있다.
그런데 딱한 것은 그 장애자들 모이는 교회를 세우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그걸 결사적으로 방해하고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랄 뿐.
예언을 한가지 하겠다(연합속회 때도 했지만)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순복음등 교파간의 차이는 이미 없어졌다. 물론 감독이나 총회장등 자리 싸움때문에 교파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앞으로 교회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눨 것이다.
1. 나만을 아는 교회 2. 나누어 주는 교회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진정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단코 구원이 없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간단하고도 분명합니다. 여러분 모두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고 구원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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