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를 채운 후 / 누가 12:16-21 / 1983년
이솝의 여우와 포도 이야기 소개
사람은 욕심의 동물입니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다 욕심이 있고, 무언가를 자꾸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어린아이들도 제 손에 쥔 것을 누군가가 가져가려 하면 손을 꼭 쥐고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힘을 쓰고 끝내는 울어버립니다.
요즘 시대는 아이들을 하나나 둘만 낳은 시대가 되어서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끔찍이도 귀엽게 키웁니다. 특히 소위 강남의 엄마들은 아이들을 일류로만 키우려고 애쓰고 제 3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지 다른 사람을 생각하거나 어려움을 겪게는 키우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 것이 자녀를 잘 키우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부모님들도 있고, 무엇이든지 소유하고자 하는 탐욕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부모님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현대인들의 특징은, 한국인들의 특징은 바로 “많이많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말씀드렸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단지 여우가 아니라 지극히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배를 채우고 손에 쥐려고 애를 쓰지만, 그래서 그런 일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 욕심에 사로잡혀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배는 채웠지만 배를 채운 다음의 삶은 어떤 것인가를 잃어버린 인간들의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읽어주신 본문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그냥 다 아는 이야기라고 쉽게 넘겨버릴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내용 설명
오늘의 비유는 철저하게 소유만을 생각하는 인간, 많은 것을 누리면 그것이 곧 삶의 목적을 이룬 거시라고 생각하는 인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는가로 판단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오직 창고를 채우는 것만으로 생각했지 창고를 채우고 난 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소위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껏 차이가 있다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술 마시지 않고 담배 피우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주일날 예배시간에 빠지면 공연히 마음이 꺼림직하고 무언가 허전한 듯해서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정도의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닌가요? 그런 것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욕심을 부리는 데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더 욕심을 많이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순전히 제 개인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믿는 것이고, 기도도 순전히 제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고, 만일 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사를 탓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결국 하나님도 제 소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직 제 창고를 채워주는 복덕방망이로 믿는 것이지 그것이 채워진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교육을 시킬 리가 없습니다. 자녀들이란 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어서 부모들의 신앙생활 모습을 자녀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 되어 버렸으니 하나님은 번번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일 다 하고 하는 것이고 시간이 나야 하는 것이라면, 교회 가는 것도 다른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가는 것이라면, 부모님이 자기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교회에 가고 바쁘면 바질 수도 있고 늦는 것은 당연하다고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아이들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교회에 빠지고 예배시간에 늦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니 시험이라 빠지고, 약속이 있어서 빠지고, 고 3이라고 빠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은 마음대로 빼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주일헌금내면 됐지 얼마나 더 내느냐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저녁부터 심령부흥성회가 시작됩니다. 아마 대부분은 “우리는 학생인데 참석할 필요 있나?”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또 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인생의 창고를 채울 때까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거기에 반드시 더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생의 창고를 채우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시간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부흥성회에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창고를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채운 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지혜롭게 판단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983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83. / 무덤조차 없는 이 죽음을 / 마가복음 15:42-47 (0) | 2015.03.21 |
|---|---|
| 1983. 1. / 가장 중요한 일 / 요한복음 6:1-15 (0) | 2015.03.21 |
| 1983 / 타는 목마름으로 / 요한복음 1:35-42 (0) | 2015.03.05 |
| 1983. 12. 24 / 임마누엘 / 누가복음 2:22-35 (0) | 2015.03.05 |
| 1983. 12. 18 / 메아리 / 누가복음 2:8-20 (0) | 2015.03.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