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년도

1983. / 무덤조차 없는 이 죽음을 / 마가복음 15:42-47

람보 2 2015. 3. 21. 20:16

무덤조차 없는 이 죽음을 / 마가복음 15:42-47 / 1983

 

설교제목이 무슨 영화제목 같습니다. 우선 저는 두 개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1940년대 초, 히틀러가 세계정복의 야욕에 불타고 있을 때입니다. 그는 게르만 민족의 영광을 내세우면서 유대인을 말살하고자 했습니다. 유대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고, 실험대상으로 삼고, 어린아이까지 무려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이때 한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서 독일군들이 유대인들을 끌어내어 세 줄로 세우고 차례차례 교수형으로 죽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어른 두 사람 사이에 한 아이가 끼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에 밧줄이 걸리고, 줄이 당겨지고, 그들의 몸이 축 늘어졌습니다. 어린아이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통스러워했고,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불쑥 말을 내뱉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1977415일 새벽,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라 오삐니온지 편집국장 하꼬보 띠메르만이 사복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에게 체포당했습니다. 그는 1979925일까지 2년 반 동안 비밀감옥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가 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의 도움으로 해방되어 이스라엘에 정착한 후 그가 겪은 일을 이름없는 죄수, 번호없는 감방이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 책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1976년부터 78년 사이에 1만 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밖에 행방불명된 15천 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 책의 일부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p 143

 

이러한 일들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해방신학이 싹튼 남아메리카의 사람들이 말없이, 조용히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살아 계시다면 이 비극이 왜 일어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그 누가 대답할 수 있습니까?

 

누가, 가인의 살인 이후 뿌려진 무수한 이름 없는 이들의 죄의 값을 치룰 것인가?

누가, 사람들에게 강요된 부당한 고통에 대한 값을 치룰 것인가?

누가, 이 땅에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인간다움을 찾기 위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자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과연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눈을 돌리셨는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이제 우리의 눈을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저주받은 채 죽어간 한 인간에게로 돌려 봅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감탄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기 위하여 기적을 베풀었던 인물입니다.

병들어 고생하는 동포들을 불쌍히 여기고 고쳐준 인물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집과 가정도 버리고 떠돌아다니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주님의 은총의 해가 이르렀다고 선포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붙잡아 옷을 벗기고, 심문하고, 채찍질하고, 지르는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의 생애는 굶주림, 목마름, 피곤함, 뜨거운 날씨, 추운 기후, 머리 가릴 지붕 한 장 없는 불안한 생활, 눈물, 두려움, 슬픔, 핍박, 비방당함, 거센 유혹들, 죽음의 위협,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투옥, 고문, 가시관 그리고 십자가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누가복음 9:58)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은 십자가였습니다. 해골 골짜기 골고다. 저주와 수치의 상징 십자가.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의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곳. 군인들의 창이 번득이는 곳. 강도들이 매달려 있는 곳. 그 한복판에 그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를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적대자들은 십자가 주위에 둘러서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네 목숨이나 건져 보아라하면서 조롱하고, 모독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는 끝내 십자가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구약 외경의 지혜서 기자는 악인들을 등장시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의인을 골탕 먹인들 어떻겠느냐?

과부라고 특별히 동정할 것 없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라 해서 존경할 것도 없다.

약한 것은 쓸모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을 정의의 척도로 삼자.

의인은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긴다고 우리를 책망하고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니 그를 함정에 빠뜨리자.

의인은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큰소리치고

주님의 아들로 자처한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늘 우리를 책망하기만 하니

그를 보기만 해도 마음의 짐이 되는구나.

아무튼 그의 생활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고

그가 가는 길은 엉뚱하기만 하다.

그의 눈에는 우리가 가짜로만 보인다.

그는 우리가 걷는 길이 더럽다고 멀찍이 피해 간다.

의인들의 최후가 행복스럽다고 큰소리치고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가 한 말이 정말인지 두고 보자.

그의 인생의 말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기다려 보자.

의인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그를 도와서

원수의 손아귀에서 구해 주실 것이다.

그러니 그를 폭력과 고문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의 온유한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주님이 자기를 도와주신다고 말해 왔으니

그에게 아주 수치스러운 죽음을 한번 안겨 보자“ (지혜서 2:10-20)

 

여러분!

십자가에서 죽은 그는 바로 예수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죽은 후 묻힐 무덤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본문은 예수가 죽어서도 남의 무덤에 묻혀야 하는 서글픈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부활시키셨습니다. 살아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통을 겪던 예수. 죽어서는 비참한 가운데 숨을 거둘 때까지 하나님께로부터 외면당하던 예수 바로 그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맨 처음 던진 이야기를 다시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이때 누군가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지금 어린아이와 함께 밧줄에 매달려 계신다.”

 

여러분!

무덤조차 없는 이 죽음을이 제목은 말할 수 없는 절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따라서 인류에게 주어진 가장 큰 희망인 것입니다.

 

여러분!

현대의 위기를 절감하면서, 삶에 대하여 한없이 번민하면서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심을,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의 목사이며 작가인 이현주의 짧은 글을 소개하고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이 길을 가자!

때로는 어둠 밖에 아무 것도 없는 듯해도,

좌절과 실의만이 덮쳐오는 파도처럼 우리의 앞길을 농락한다 해도,

사람들은 조롱하기 위하여 한길 옆에 서서 곁눈질하고

눈먼 바람만이 봄의 꽃잎을 어지럽게 날린다 해도,

우리는 주어진 이 길을 가자.

목숨을 내걸지 않고는 나눌 수 없는 사랑의 길,

지닌 것을 모두 버리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섬김의 이 길,

순간순간 어둠에서 어둠으로 갇히지 않고는 닿을 수 없는

이 자유에의 길을 가자.

울고 있는 형제들이여,

우리의 눈에서 눈물이 더욱 흐르게 하자.

피 흘리는 형제들이여,

우리의 맨발에서 더욱 피 흐르게 하자.

남는 것 없게,

바람인 듯 아무 것도 남는 것 없게,

오호라, 우리는 무덤조차 없는 죽음을 죽으러

이 길을 가지.

눈부신 새벽의 아침과 닿아있는 유일한 길,

캄캄한 절망의 아픔 속으로

우리는 자꾸만 걸어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