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도

2011. 5. 8 / 마음이 뜨거워지는 때 / 누가복음 24:28-35

람보 2 2015. 4. 6. 16:43

마음이 뜨거워지는 때(2011. 5.8 설교)


본문) 누가복음 24:28-35

“그 두 길손은 자기들이 가려고 하는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려는 척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를 만류하여 말하였다. ‘저녁때가 되고,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의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한순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보니, 열한 제자와 또 그들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모두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두 사람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비로소 그를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하였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우리나라는 세계 200개 나라 중에서, 정확하게 유엔에 가입한 197개 나라 중에서 비교적 드물게 여러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많은 나라들이 소위 국교가 있어서 하나의 종교만을 믿어야 하거나 아니면 종교끼리 분쟁을 겪거나 합니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어도 그 안에서 수니파와 시아파가 치열하게 싸웁니다. 시리아라는 나라가 지금 두 종파 간의 싸움으로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카톨릭과 개신교의 싸움은 참으로 오래 되었고 치열했으니 영국과 아일랜드가 북아일랜드를 놓고 싸운 전쟁은 엄청난 비극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있었던 전쟁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종교전쟁이니 십자군전쟁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국교를 인정하지 않고 여러 종교가 지금까지 비교적 사이좋게 지내왔는데 유독 이 정부 들어서고 나서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남북 간의 전쟁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대립도 격화될까 심치 염려스럽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미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종교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기독교, 그중에서도 소위 수구보수기독교라고 불리는 자들입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절이 있다고 해서 거길 들어가 스님들에게 회개하라고, 예수 믿으라고 큰소리치고, 절 안에 있는 탑을 돌거나 절 주위를 돌면서 소위 땅밟기를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입니다. 또한 주로 경상도에 있는 목사님들이 나서서 절에 주는 예산을 대폭 깎게 만들고, 불교를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서슴없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상도는 불교계의 세력이 무척 강한 곳이지요.


최근 도심에서 휘황찬란한 빛을 발휘하고 있는 LED 십자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엄청나게 큰 십자가를 첨탑 꼭대기에 달아놓고 밤새도록 켠다는 것이지요. 그 불빛이 주변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엄청난 수면방해가 되기에 구청에 민원을 넣었고, 그래서 밤에는 네온을 켜지 못하도록 법을 만들려고 했는데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나서서 만들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전력 낭비가 심하고 원자력발전소 문제도 심각한 상황에서 지구도 구하고, 전력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밤중에는 껐으면 좋겠는데 굳이 밤새도록 십자가를 켜놓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가 행함으로 빛이 되어야지 네온으로 빛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안양역에 가면 하루도 빠짐없이 십자가를 걸고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남자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구루마를 끌고 다니는데 거기에 성경구절을 잔뜩 써놓았습니다. 유심히 관찰해 보면 단 한 사람도 그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는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머리는 허리까지 늘어졌는데 너무나 더러워서 땟국이 흐르는 모습으로 십자가를 걸고 다니니 사람들이 오히려 욕하고, 비웃고 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전도가 되기는커녕 십자가가 손가락질 당하는 일이 될 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참으로 기가 막히고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경상북도 문경에 둔덕산이라는 산이 있다는데 거기에 있는 채석장에서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웬 남자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시신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 상으로 그 사건에 대한 온갖 소문이 다 떠돌고 있습니다. 머리에는 가시관 같은 것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남자가 그것을 발견했는데 그는 그 과정을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에 올렸고, 그래서 널리 퍼졌습니다. 그는 벌을 치는 사람인데 전직 목사라고 합니다. 누군가가 찾아와서 벌을 치기 좋은 장소를 물었고, 그래서 채석장 생각이 나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을 보았고, 거기에 웬 남자가 매달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밀랍 인형인 줄 알았는데 이상해서 가까이 가 보았더니 사람이어서 놀라서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이 조사해 보았는데 자살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합니다. 만약 자살이라면 자기 손으로 발에 못을 박고, 옆구리를 찌르고, 손에 못을 박았다는 것인데 그게 어찌 가능합니까? 누군가가 도와준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은 평소에 자기를 예수라고 말했고, 그가 죽은 장소도 골고다입니다. 골고다라는 이름 자체가 해골곳, 돌무덤이니 해골 모양의 돌이 있는 곳이고, 이 사람도 그런 이유로 바로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을 택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가 행한 모든 행동들은 예수를 본받은 것으로 보이고, 어쩌면 그도 죽은 후 사흘 만에 자기도 부활할 것을 기대하고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깊은 의문이 드는 것은 시신을 발견했다는 전직 목사님이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그 죽은 사람을 만났다는데 그 전직 목사님의 카페 아이디가 참으로 이상합니다. 시해선(屍解仙)이라는 아이디를 썼는데 이를 풀이하면 “시체에서 해방되어 신선이 된다”는 뜻이랍니다. 이건 아무래도 도교에서 나오는 용어 같고, 그런 점에서 그는 도교에도 심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가 가졌던 믿음이 기독교인지 도교인지 알 수 없고, 죽은 사람은 대체 무얼 믿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오리무중입니다.


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가? 한 마디로 한국교회는 성경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겁을 내고,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을 겁을 내면서 무조건 믿어라, 덮어놓고 믿으라는 것만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펴놓고 읽고, 연구하고, 깊이 들어가는 신앙생활을 두려워하면서 무조건 믿는 믿음만을 강조하는 것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서나 방송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설교가 쏟아져 나오고, 길거리에서 자기네 교회 목사님 설교를 나눠 주는 교인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보십시오.

그러한 설교의 내용 중에 가장 큰 것은 자기자랑입니다. 교회 크기 자랑하고, 숫자 자랑하고, 돈 자랑합니다. 또한 설교가 아니라 예화로 가득 차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화들도 주로 미국에서 있었던 것들입니다. 서점에 가면 예화집들이 쏟아져 나와 있는데 그것들만 잘 발췌해서 엮어놓으면 좋은 설교가 만들어집니다. 물론 그런 예화를 많이 소개하면 설교가 재미있지요. 그러니까 재미있는 설교 듣고, 교인들이 은혜받았다고 말하면 설교를 그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또 어떤 분들의 설교는 성공철학입니다. 예수 믿어서 복 받고 잘 살자는 것이지요. 소위 삼박자 구원으로 대표되는 어느 교회의 설교는 대표적인 성공철학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말씀드려서 복음이 아닙니다. 만약에 성공철학이 복음이라면 예수님도 복음대로 살지 못한 것이고, 사도 바울도 복음대로 살지 못한 사람이 됩니다. 두 분 다 실패한 삶을 산 사람들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또 성경을 엉뚱하게 해석하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잘못 해석하는 것이지요. 설교를 듣다보면 그 본문이 말하려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설교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기주장을 하기 위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설교를 착하게 살자는 말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조폭들에게 가서 해야지요.


성경공부도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것들이 많고,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이용해서 정답 찾아나가기 식의 성경공부들만 너무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씀을 읽고 답을 찾아나가는 체험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오늘의 본문에서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이 속해 있는 누가복음 24장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는 유명한 사건들이 기록된 누가복음의 맨 마지막 장입니다. 1절부터 12절까지에 빈 무덤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무덤이 빈 것을 발견하고 제자들에게 달려가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절부터 두 사람이 엠마오로 떠나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읽어보면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는 글로바입니다.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데 29절에 의하면 그들이 “우리 집에 묵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글로바의 아내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두 사람이 자기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들은 예수를 3년 동안 따라다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예수가 붙잡혀가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모두들 두려움에 사로잡혀 다락방에 숨어 있는데 여인 몇 사람이 예수가 살아났다고 말했지만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이제 낙심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웬 낯선 남자가 나타나서 묻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들은 답답한 마음으로 그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했고, 그것도 몰랐느냐고 책망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낯선 사람은 뜻밖에도 성경 전체를 풀어 설명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집에 가까이 왔고, 날은 저물었습니다. 그들은 집에 들어가려고 했고, 낯선 사람은 더 멀리 가려는 척 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낯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채 집으로 같이 들어가자고, 우리 집에서 묵고 가라고 청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셨고, 함께 음식을 잡수시려고 앉으셨을 때에, 낯선 사람은 빵을 들어서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찬식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제야 그들이 눈이 열려서,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그 순간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분명히 예수께서 자기들 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떡을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눈을 떴다고 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눈이 열려야 보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저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순간적으로 예수께서 사라지셨는데 그때 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이하여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 속에서〕 뜨거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체험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을 읽을 때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한국교인들이 그 체험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 체험이 설교를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하고, 목사님들과 하는 성경공부를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하고, 개인이 혼자서 성경을 읽는 과정을 통해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 늘 하는 말이 있지요.

“내가 성경의 모든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스스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그런 성경공부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바로 이 뜨거운 체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눈이 열리고, 예수를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오로지 말씀 위에 바로 설 때 엉뚱한 짓을 하거나 헛된 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직 말씀 안에서 뜨거움을 체험하고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