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2011.4.17)
본문) 누가복음 22:47-53
“예수께서 아직 말씀하시고 계실 때에, 한 무리가 나타났다. 열둘 가운데 하나인 유다라는 사람이 그들의 앞장을 서서 왔다. 그는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왔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고 하느냐?’ 예수의 둘레에 있는 사람들이 사태를 보고서 말하였다. ‘주님, 우리가 칼을 쓸까요?’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쳐서 떨어뜨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만해 두어라’ 하시고, 그 사람의 귀를 만져서 고쳐주셨다. 그런 다음에,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강도를 잡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나, 너희는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다.’ ”
(표준새번역 개정판)
오늘은 사순절 여섯 번째 주일이자 종려주일이며 동시에 고난주간이 시작하는 첫째날입니다. 그러니까 사순절 즉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는 기간 중에 있는 주일 가운데 마지막주일이자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제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시면 틀림없이 붙잡혀 죽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 성으로 올라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죽음에 대한 세 번째 예고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곁에 불러 놓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인자를 두고 예언자들이 기록한 모든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인자가 이방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조롱을 받고, 모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채찍질한 뒤에,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였다. 이 말씀은 그들에게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그들은 말씀하신 것을 알지 못하였다.” (누가복음 18:31-34)
그러니까 예수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종교와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를 보면서 당신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면 붙잡혀 죽을 것을 아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의 기운이 가득 드리운 것을 아시고서도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며칠 동안의 혼란 끝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자, 바로 그 일주일, 우리가 고난주간이라고 부르는 그 일주일은 진정 불안과 공포, 음모와 간악함의 기운이 드리우던 기간이었습니다. 무언가 불안하고 음산한 공포의 분위기,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온갖 꾀를 동원하는 지도자들의 음모와 간악함의 기운이 가득 차 있던 기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오늘의 본문에서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으니 바로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입니다.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가 무엇입니까? 어둠의 권세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어둠의 권세는 곧 죽음의 기운과 세력이요, 이것을 주관하는 존재는 곧 사탄입니다. 다른 말로 악마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에 대항하여 어둠을 지배하고,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악의 세력이 어둠의 권세인데 그 두목을 누가복음 기자는 악마 또는 사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주간이란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고, 악마, 사탄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때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저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아니 느닷없이 악마나 사탄이 왜 나타나느냐? 여기에 나오는 어둠의 권세가 악마나 사탄을 나타낸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그렇습니까? 그런 증거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누가복음서을 읽어보면 누가복음 기자는 분명히 예수의 일생을 악마, 사탄과의 싸움으로 기록했습니다. 저는 오늘 누가복음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서 제 설교의 근거를 제시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말씀드릴 사탄과의 싸움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 다른 복음서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공생애는 악마 곧 사탄과의 싸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마태와 마가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세 복음서가 다 사탄과의 싸움을 기록해 놓았지만 거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12절까지에 예수께서 악마의 시험을 받으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다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그랬더니 악마는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그래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 (누가복음 4:1-12)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탄과 대결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에게 세 가지 시험을 했고, 예수는 말씀으로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이것이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 사십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마가복음 1:12-13)
마태나 누가에 비해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복음서 기자들에게는 악마와 사탄이 같은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습니까? 누가복음과 거의 같은 내용인데 다만 두 번째 시험과 세 번째 시험의 순서만 다르게 나옵니다. 그러니 그것을 다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다만 4장 11절에 어떻게 마무리되어 있는지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마태복음 4:11)
보십시오. 악마는 떠나갔습니다. 갔다가 다시 온다는 등의 말이 전혀 덧붙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그 어디에도 악마나 사탄이 다시 나타났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마가와 마태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표현이 하나 나타나 있습니다.
“악마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있었다.” (누가복음 4:13)
그렇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악마는 예수를 시험에 빠뜨려 아예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애쓰다가 실패하니까 잠시 물러갔습니다. 그러면서 돌아올 때를 엿보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후 누가복음 기자는 얼핏얼핏 악마 또는 사탄의 이야기를 끄집어냄으로써 독자들이 사탄에 대한 경각심을 놓지 않게 합니다. 우선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해설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으나, 그 뒤에 악마가 와서, 그들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가므로, 믿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누가복음 8:12)
이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 (누가복음 10:18)
또한 예수께서는 사탄이 사람들을 괴롭히기에 이를 물리치는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고 계셨다. 그런데 거기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허리가 굽어 있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 여자를 보시고, 가까이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야,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 하시고, 그 여자에게 손을 얹으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 허리를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것에 분개하여 무리에게 말하였다. ‘일을 해야 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엿새 가운데서 어느 날에든지 와서, 고침을 받으시오. 그러나 안식일에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주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너희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끌고 나가서 물을 먹이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가 열여덟 해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었으니, 안식일에라도 이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니,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하였고, 무리는 모두 예수께서 하신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두고 기뻐하였다.” (누가복음 13:10-17)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공생애 내내 사탄의 역사를 경계하시며 사람들을 거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사탄에게 사로잡혀 고생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안식일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병도 고치시고, 구해내셨고, 살려내셨습니다. 반대로 사탄도 끊임없이 자기의 세력을 키우고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예수를 죽임으로 그의 사역을 실패로 만들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공생애 기간 중의 사역은 모두 사탄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사탄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으니 22장에 그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유월절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없애버릴 방책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열둘 가운데 하나인 가룟이라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유다는 떠나가서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더불어 어떻게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줄지를 의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여,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조하였다. 유다는 동의하고, 무리가 없을 때에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누가복음 22:1-6)
여러분!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하다 실패하고 떠나갔던 사탄이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그 사탄은 드디어 기회를 잡았습니다. 바로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그만 사탄에게 사로잡혀 예수를 잡아 죽일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사탄의 제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사탄은 유다를 통해 자기의 뜻을 이룰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를 사로잡은 사탄이 그 다음에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탄은 어떻게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작전을 짜는 중입니까? 그 다음 단계로 사탄이 하고자 했던 일, 그것은 나머지 제자들을 사로잡고자 한 것입니다. 나머지 열한 제자들도 스승을 버리고 사탄을 따르도록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탄의 흉계를 아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너희를 체질하려고 너희를 손아귀에 넣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이 꺾이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누가복음 22:31-32)
무슨 말입니까?
밀처럼 체질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밀을 수확한 다음에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있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 체질하는 것처럼 제자들을 뒤흔들어 자기 손아귀에 집어넣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그래서 사탄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네가 믿음을 회복하고 돌아올 때에 형제들을 굳세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가룟 유다에 이어 시몬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까지 자기 부하로 삼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기에 그들은 끝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승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 일주일은 예수님과 사탄의 최후의 결전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판 승부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를 실패로 몰아가기 위해 벼르고 벼르다가 끝내 가룟 유다를 먼저 넘어뜨렸고, 이어 나머지 제자들마저 넘어뜨리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늘의 본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다.”
그렇다면 여러분!
사탄의 하수인은 누구입니까? 도대체 누가 사탄의 부하, 졸개가 되어 예수를 잡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22장과 23장에 밝혀져 있습니다.
22:2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없애버릴 방책을 찾고 있었다.”
22:4 “유다는 떠나가서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더불어 어떻게 예수를 그들에 게 넘겨줄지를 의논하였다.”
22:52 “그런 다음에,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씀 하셨다.”
23:11 “헤롯은 자기 호위병들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였다. 그런 다음에, 예수에 게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
23:24-25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그는 폭동과 살 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는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놓아주고, 예수는 그들의 듯대 로 하게 넘겨주었다.”
보십시오.
사탄의 부하가 되어 예수를 죽이는 일을 행한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같은 종교지도자들과 경비대장이나 장로들, 그리고 헤롯 왕과 총독 빌라도 같은 정치지도자들이었습니다. 결국 당시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이 하나가 되어 예수를 잡아 죽이는 일에 힘을 합했으니 그야말로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였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때 예수께서는 홀로, 제자들마저도 다 떠나가고 홀로 남아 사탄과의 싸움에 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도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 땅의 종교지도자들이 지금 과연 누구의 편을 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편입니까, 사탄의 편입니까? 이 땅의 정치지도자들은 지금 과연 누구의 편을 들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편입니까, 사탄의 편입니까?
이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 생명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하나님이요, 빛입니다. 반대로 생명을 죽이는 것은 사탄이요, 어두움입니다. 예수는 끝내 하나님 편에 서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셨던 분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십시오.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무너져서 엄청난 재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연구소에서는 한국에 이미 방사능이 퍼져 있고, 18일과 19일에 더 많은 양이 퍼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 정부는 아무 문제없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4대강, 원자력발전소, 구제역, 쌍용자동차와 카이스트 등 모든 문제에서 사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 어느 편에 서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우리도 어둠의 권세가 판을 치는 때를 살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끝내 사탄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아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일주일이 지나면 부활주일입니다. 어둠의 권세가 물러나고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입니다. 다음주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마는 부활이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끝내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겼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를 믿고 끝내 이겨내는 사람들이 맞이할 새 아침이 부활의 새 아침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것을 믿기에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께서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기고 부활할 것을 믿고 고난의 일주일을 살아갑시다. 이 믿음 가지고 우리 모두 소망 가운데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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