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죽이려고(2009. 11. 1)
본문) 마태복음 26:1-5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셨을 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인데, 인자가 넘겨져서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그 즈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모여서, 예수를 속임수로 잡아서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 가운데서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명절에는 하지 맙시다’ 하고 말하였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율법인 모세 오경과 맞먹는 다섯 편의 설교로 이루어진 책이라고 처음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우리는 이제 25장까지를 통해 다섯 편의 설교를 다 보았습니다. 그 다섯 편의 설교는 다음과 같습니다.
1편(5-7장) 산상설교 하늘나라의 법 - 참된 의로움이란 무엇인가?
2편(10장) 파견설교 하늘나라 일꾼들이 맡은 사명에 대하여 - 참된 제자상
3편(13장) 비유설교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하여 - 일곱 가지 비유
4편(18장) 공동체설교 하늘나라 백성들 간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 참된 형제사랑
5편(23-25장) 심판설교 하늘나라는 누가 들어가는가? - 종말심판에 대하여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께서 행하신 다섯 편의 설교를 기록하면서 그때마다 설교를 마치셨다는 표현을 해 놓았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니, 무리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 (마태복음 7:28)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지시하기를 마치고, 거기에서 떠나셔서, 사람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셨다.” (마태복음 11:1)
“예수께서 이 비유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곳을 떠나셨다.” (마태복음 13:53)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서, 요단강 건너편 유대 지방으로 가셨다.” (마태복음 19:1)
그러니까 1편부터 4편까지 네 편의 설교를 마치실 때 마다 꼭 “이 말씀을 마치시고”라는 의미의 문구를 씀으로써 하나의 설교가 끝났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섯 번째 설교를 마치시고 난 후에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셨을 때에,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쳐 주기 위해 설교하시는 일은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긴 설교를 행하시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설교는 하실 만큼 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오직 하나, 행동인바 그것도 보통의 행동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음”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모든 말씀을 마치셨을 때에, 곧바로 자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인데, 인자가 넘겨져서 십자가에 달릴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제 복음서 이야기는 아주 빠른 속도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향해 달려갑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를 죽이기 위해 그렇게도 애를 쓰는지, 예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감당하셨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인지 일사천리로 기록해 갑니다. 독자들이 조금도 한 눈 팔지 못하고 이야기에 빠져 들게 사건을 전개해 갑니다.
그렇다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구요? 유월절이 도대체 어떤 날입니까? 유월절이 어떤 날이기에 그 날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그 옛날 유대 민족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이나 노예 생활하던 때, 너무나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그 어디에서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다고, 조상들과 하신 약속을 다 잊어버리셨다고 체념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던 바로 그 시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다.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한 하나님‘으로는 나타났으나, 그들에게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않았다. 나는 또한, 그들이 한동안 나그네로 몸 붙여 살던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을 세웠는데, 이제 나는 이집트 사람이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나는 주다. 나는 이집트 사람들이 너희를 강제로 부리지 못하게 거기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그 종살이에서 너희를 건지고, 나의 팔을 펴서 큰 심판을 내리면서, 너희를 구하여 내겠다. 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곧 너희를 이집트 사람의 강제 노동에서 이끌어낸 너희의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너희를 데리고 가서,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나는 주다.“ ” (출애굽기 6:2-8)
이후 모세와 바로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는 출애굽기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내 백성을 해방시키라고 아무리 요구해도 듣지 않자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그 마지막 재앙이 바로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밤중에 이집트 사람 가운데로 지나갈 것이니,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이 모두 죽을 것이다. 임금 자리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맷돌질하는 몸종의 맏아들과 모든 짐승의 맏배가 다 죽을 것이다. 이집트 온 땅에서,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큰 곡성이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집트의 개마저 이스라엘 자손을 보고서는 짖지 않을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을 보고서도 짖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 주가 이집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였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리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나에게 와서, 내 앞에 엎드려,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백성은 모두 나가 주시오’ 하고 사정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에야, 내가 여기서 떠나겠습니다.“ 모세는 매우 화를 내면서, 바로 앞에서 나왔다.” (출애굽기 11:4-8)
이제 바로가 너무나 강퍅해졌기에, 그래서 끝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 있는 처음 난 것은 모두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임금 자리에 앉아있는 바로의 맏아들을 비롯하여, 맷돌질하는 몸종의 맏아들과 모든 짐승의 맏배까지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만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집은 대문에 칠해져 있는 피를 보시고 건너뛰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모두 불러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들과 함께 먹을 양이나 염소를 준비하여, 유월절 제물로 잡으십시오. 우슬초 묶음을 구하여다가 그릇에 받아 놓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십시오. 여러분은 아침까지 아무도 자기 집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들을 치려고 지나가시다가,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른 피를 보시고, 그 문 앞을 그냥 지나가실 것이며, 파괴자가 여러분의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을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지킬 규례로 삼아, 영원히 지키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거든, 이 예식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아들딸이 여러분에게 ‘이 예식이 무엇을 뜻합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이것은 주님께 드리는 유월절 제사다. 주님께서 이집트 사람을 치실 때에, 이집트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의 집만은 그냥 지나가셔서, 우리의 집들을 구하여 주셨다’ 하고 이르십시오.“ 백성은 이 말을 듣고서, 엎드려 주님께 경배를 드렸다. 이스라엘 자손은 돌아가서,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출애굽기 12:21-28)
그렇습니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않으면 주님께서 그 양이나 염소의 피를 보고 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이나 염소의 피를 보고 “그 집을 건너뛰었다”고 해서 그 날을 유월절, ‘건너 뛴 날’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인데 바로 그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터인데 그로 인해 당신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예수를 죽이려 합니까? 도대체 누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까? 오늘의 본문 3절에 그 첫 번째 범인들이 등장합니다.
“그 즈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는 대제사장의 관저에 모여서, 예수를 속임수로 잡아서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바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로 모의를 시작한 첫 번째 범인들입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이며, 그들은 왜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까? 도대체 예수와 무슨 철천지 원한이 있어서, 예수가 자기들에게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까? 우선 대제사장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옛날 모세 시대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형 아론을 제사장으로 삼아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일을 도맡아 하게 하셨습니다. 레위기 8장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받는 장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함께 데리고 오너라. 또 그들에게 입힐 옷과, 거룩하게 하는 데 쓸 기름과, 속죄제물로 바칠 수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와, 누룩을 넣지 않은 빵 한 바구니를 가지고 오너라. 또 모든 회중을 회막 어귀에 불러 모아라.’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회중을 회막 어귀에 불러 모으고 ‘주님께서 다음과 같이 하라고 명하셨다’하고 말하였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씻게 하였다. 모세는 아론에게 속옷을 입혀 주고, 띠를 띠워 주고, 겉옷을 입혀 주고, 에봇을 걸쳐 주고, 그 에봇이 몸에 꼭 붙어 있도록 에봇띠를 띠워 주었다. 모세는 또 아론에게 가슴받이를 달아주고, 그 가슴받이 속에다가 우림과 둠밈을 넣어 주었다. 모세는 아론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관 앞쪽에 금으로 만든 판 곧 성직패를 달아 주었다. 이렇게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이렇게 한 다음에, 모세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데 쓰는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기구에 발라서, 그것들을 거룩하게 하였다. 그는 또 그 기름의 얼마를 제단 위에 일곱 번 뿌리고, 제단과 제단의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였다. 물두멍과 그 밑받침에도 기름을 발라서, 거룩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 모세는, 거룩하게 구별하는 기름 가운데서 얼마를 아론의 머리에 붓고, 그에게 발라서, 아론을 거룩하게 구별하였다. 모세는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혀주고, 띠를 띠워 주고, 머리에 두건을 감아 주었다. 이렇게 모세는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하였다.“ (레위기 8:1-13)
그렇습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이후 레위 지파가 제사장 직을 담당하게 되었고, 아론을 비롯하여 직계로 그 대를 잇는 사람들이 대제사장이 되었고, 모든 제사장들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 때 혼자서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안식일과 유월절, 무교절, 추수절, 초막절 등의 절기 때 제사를 집례했습니다. 대제사장은 또한 유대인의 최고 행정기관이며 재판소인 최고의회(산헤드린)의 의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백성들의 대단한 존경을 받았던 대제사장은 원래 평생직이며 세습직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 왕조 시대와 로마 지배 시대에 이르러 왕이 제 마음대로 대제사장을 임명하고 갈아치우는 등 세속권력의 지배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무렵 대제사장은 바로 안나스였습니다. 그는 서기 6-15년까지 10년 도안 대제사장이었고 이후 그의 아들들과 사위들이 대제사장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은 바로 가야바로서 서기 18-36년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그는 안나스의 사위였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칼에 맞아 죽을 때 대제사장이 바로 안나스의 다섯째 아들인 안나스 2세였습니다. 그러니까 기원 1세기 경 대제사장의 자리는 안나스 집안이 독차지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대제사장의 자리를 독점했던 안나스 집안은 막대한 부를 소유했고, 그 중 일부를 헤롯왕이나 로마에 바침으로써 그 자리를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신전 업무와 관련된 모든 거래를 독점했고, 가난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빌로니아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보에투스의 집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그들의 지팡이(곤봉)가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하난(=안나스)의 집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그들의 속삭임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카드로스(=가야바)의 집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그들의 붓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피아비의 아들 이슈마엘의 집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그들이 주먹이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그들 본인은 대제사장이며, 아들들이 회계, 사위들은 재산 관리인이기 때문이며
그들의 종들은 지팡이로 백성을 두들겨 패는구나.“ (Pesahim 57)
그렇다면 대제사장은 오직 한 사람인데 왜 본문에서 ‘대제사장들’이라고 표현했는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 대제사장을 배출하는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나타내는 표현이다.
* 현직 대제사장과 퇴임한 대제사장을 합해서 표현한 것이다.
* 산헤드린에 관계되어 있던 고위 제사장들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대제사장들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성전의 감독, 경비, 제사 등을 맡아 정치적 권세와 경제적 부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같은 레위 가문에 속하지만 안나스나 가야바와는 거리가 먼, 세월이 오래 흐름에 따라 촌수가 멀어진 일반 제사장들은 전국에 퍼져 살면서 절기 때만 예루살렘에 올라와 제사를 돕고 평상시에는 수공업이나 농업, 상업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는데 그들 대부분은 당시 일반 백성들과 같이 사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그러니까 레위 지파라고 해서, 제사장 가문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대제사장과 가까운 친척인 사람들은 큰소리치고, 떵떵거리고 살지만 전국에 흩어져 살던 대부분의 레위 사람들은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모습과 흡사한 것이 많이 있지요.
또한 백성의 장로들은 바빌론 포로 이후 새롭게 등장한 평민 출신 세습 귀족을 말합니다. 즉 제사장 출신이 아니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 귀족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되고, 그 지위를 자식들에게 물려주게 된 계급입니다. 누가복음 19:47에 ‘백성의 우두머리’라고 표현된 자들입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예수를 없애버리려고 꾀하고 있었으나, 어찌 해야 할지 방도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이들 장로들은 평민귀족의 대표자로서 수 세기에 걸쳐서 돈의 힘을 바탕으로 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으며, 최고의회 즉 산헤드린의 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예수를 장사지낸 아리마대 요셉인 것입니다.
“날이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출신으로 요셉이라고 하는 한 부자가 왔다.” (마태 27:57)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그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었다. 아리마대 사람인 요셉이 왔다. 그는 명망 있는 의회 의원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대담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신을 내달라고 청하였다.” (마가복음 15:42-43)
그렇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한 마디로 부자들이요,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를 꾸민 이유는 분명합니다. 예수에 대한 시샘을 이기지 못하고 또한 자기들의 부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시자 백성들이 예수를 따랐고, 그 결과 자기들이 누렸던 권위와 백성들의 존경심을 다 잃어버리고, 마침내는 자기들이 누리던 권력을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예수를 죽이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비로 성전정화사건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첫 번째로 나선 자들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신앙도 가장 좋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 직분은 높았고, 세상적인 부와 권력도 다 누렸지만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를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를 죽이는데 앞장서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여러분 모두 쉽게 답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께서 21세기 오늘 한국사회에서 다시 십자가를 향해 걷고 계십니다. 이 땅에 대제사장이라고, 백성의 장로들이라고 큰소리치는 자들에 의해 십자가로 끌려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들에게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자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한국교회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요? 이 시간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 주님,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09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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