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9 년도

2009. 9. 27 / 그 날이 언제인가? / 마태복음 24:32-36

람보 2 2015. 4. 4. 22:00

그 날이 언제인가?(2009. 9. 27)


본문) 마태복음 24:32-36

“무화과나무에서 교훈을 배워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글이 남아 있습니다.

“엘리야 학파는 이렇게 가르친다. 육천 년 동안 세계는 존속할 것이다. 이천 년 동안 카오스가 있을 것이며, 이천 년 동안 토라가, 그리고 이천 년 동안 메시아 시대가 있을 것인데, 우리의 많은 죄 때문에 상당수의 햇수가 이미 삭제되었다.”


이는 그 옛날 유대인들이 인류 역사가 육천 년 동안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그 육천 년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처음 이천 년은 카오스 즉 혼돈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세대를 말하는데 세상의 질서와 법인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세상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시대를 카오스의 시대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다음 이천 년은 토라 즉 율법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천 년이 지나고 나면 메시아가 오셔서 세상을 다스릴 터인데 그 기간이 원래 이천 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합해서 육천 년인데 그만 인간이 너무나 많은 죄를 지어서 상당수의 햇수가 이미 삭제되었기 때문에 세 번째 이천 년이 얼마큼인가 줄어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날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쨌든 유대인들은 그렇게 해서 세상의 끝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세 유럽, 역사학계에서는 흔히 암흑시대라고 부르지만 사실 기독교신앙이 가장 깊게 뿌리내렸던 중세 유렵에서 8세기 이후 나타난 가장 두렷한 현상은 바로 유럽에 사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지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는 열기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종교행위는, 거룩한 땅을 순례하면서 예수께서 기도한 곳에서 기도하고, 예수가 세례 받은 강에서 세례 받으며, 요단강의 맑고 푸른 물을 마시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비행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먼 길을 걸어가든지 잘 해야 배를 타고 가는 것인데 가다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어렵고 험난할수록, 그 여행은 죄를 씻기 위한 여행답게 더욱더 철저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순례여행은 점차 심신단련의 과정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승 라울 글라베가 ‘역사’라는 책을 통해 서기 1,000년은 예수가 탄생한 지 1,000년이 되는 해이고, 천지창조 이후의 여섯 번째 천년의 마지막이면서 예수 재림의 때, 종말의 때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이 알려지면서 순례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무언가 신성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종말의 징조를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났고, 이민족들의 침략이 있었으며, 전염병이 돌았고, 하늘에 이상한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 십자가가 나타나고, 성모상이 울고 신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 으스스하게 웃는 악마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다 겁에 질렸고, 모두들 종말이 가까운가 하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993년에는 베수비오스 화산이 폭발하여 엄청난 파괴가 일어났고,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불길에 휩싸이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그 뒤 몇 년 동안에는 유럽의 훌륭한 성직자들과 통치자들의 죽음이 잇따랐습니다. 교황 그레고리 5세도 99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글라베에 따르면 그보다 2년 전인 997년, 하늘에 ‘거대한 용이 북쪽에서 나와 서쪽을 향해 가며 불꽃을 내뿜었다’는 것입니다. 그 무렵 글라베는 또, 온 기독교 세계를 뒤덮어 ‘온 인류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끔찍한 5년간의 대기근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서기 1,000년에 종말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서기 1503년, 점성술사들의 말에 따르면 12월 14일 자정에 프랑스 남부의 생 레미라는 마을에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태어났으니 그의 이름은 노스트라다무스입니다. 그는 의학을 공부했고, 전염병을 잘 고친다고 해서 명성을 얻은 의사였습니다.

1555년, 그는 남들이 전혀 이해할 수없는 사행시 353편이 담긴 <상 튀르>라는 책을 발표했고, 말년에 다시 1,000편의 사행시를 내놓았는데 그것들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한 것이고,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고, 앞날을 미리 보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그가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죽음을 예언하고, 알아맞춤으로써 그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행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이것입니다.


“1900, 90의 9년, 일곱 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니,

앙골모와 대왕은 부활하리라.

마르스가 성공리에 다스리기 전에.“


우리들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1999년 7월에 세계에 종말이 온다는 것이 바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대부분의 노스트라다무스 연구자들은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오니” 라는 구절을 통해 세상을 심판할 존재를 말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쟝 샤를르라는 연구자는 “공포의 대왕”이란 인류 최후의 심판의 날에 등장하는 마지막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며, 하늘은 중국을, 앙골모와는 몽골을 의미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즉 동양인인 중국 족속 중에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대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르스는 천문학상으로는 화성을 의미하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군신(전쟁을 주관하는 신)을 의미하는 바, 따라서 공포의 대왕은 전쟁 전 혹은 전쟁이 한참 시작될 무렵에 등장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느 친절한 해설가는 바로 그날을 2002년 6월 21일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날에도 평화의 새 왕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전반기에 미국 뉴욕에 살던 농부 윌리엄 밀러는 무신론자였기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830년 어느 날  계시를 받아 참회를 하고는 믿음을 되찾게 되고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읽은 그는 마침내 1843년 4월 3일에 세상의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1831년부터 사람들에게 이를 설교하기 시작했지만 1833년 혜성이 나타나기까지는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뒤 10년 동안 혜성이 빈번히 나타나자 사람들의 생각은 종말론으로 기울어지고, 윌리엄 밀러의 예언이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843년 4월 3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밀러는 새로운 최후의 날은 7월 7일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다시 1844년 3월 21일, 10월 22일로 계속 연기했습니다. 결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열성신도들은 동요되지 않고 다시 모여 조직을 만들었으니 이름하여 “안식일재림교회‘입니다.

윌리엄 밀러가 죽은 후 조셉 베이츠와 프레데릭 휠러를 거쳐 엘렌 화이트라는 여인이 그 종파를 이끌면서 1860년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으며 약칭으로 “안식교‘입니다.


안식교의 창시자인 윌리엄 밀러의 영향을 받은 인물 가운데 하나인 찰스 러셀은 1874년에 예수가 재림하셨다고 주장하면서 다만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게 재림하셨다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1879년 잡지 ‘등대’를 펴내면서 출판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러셀은 1914년에 천년왕국이 시작될 것이며, 자기를 따르는 무리 144,000명만 천년 왕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가르쳤으니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의 시작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이야기들은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종말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관심이 “언제냐?” 하는데 맞춰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대체 종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언제 일어나는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맨 처음 이렇게 물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마 24:3)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질문을 잊지 않으시고 오늘의 본문에서 대답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에서 교훈을 배워라.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그렇습니다.

무화과나무를 기르는 농부들은 무화과나무의 모습만 보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이이 돋으면, 이제 여름이 왔구나 하고 계절의 변화를 짐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마태복음 16:2-3절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너희는 저녁때에는 ‘하늘이 붉은 것을 보니 내일은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16:2-3)


이어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그렇습니다.

일기를 보고 날씨를 알고, 나무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알듯이 시대의 징조를 보고 주님이 가까이 오셨음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일어날 것이며,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당신의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날이 언제인가? 속 시원히 알려주면 좋겠다고 다 생각했겠지요. 그 날을 미리 알려주면 준비할 것이 아닌가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간단합니다.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는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 수도 없는 것을 알려고 하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요,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안다고 하면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이니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안다고, 그것을 알려준다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이단입니다. 그것은 100% 이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말이 언제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책임성과 깨어 있음”, 이 두 가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책임성 있게 살아갈 것인가, 또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깨어있는 삶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나오게 될 여섯 개의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는 “책임성과 깨어 있음”에 대해 재삼재사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남은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과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늘 깨어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바로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의 문제인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이어지는 비유에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