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목자들 / 2007년 12월 23일
본문) 마태복음 9장 35-38절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 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
(표준새번역 개정판)
기원전 587년, 남왕국 유다가 바빌론의 침략으로 끝내 멸망당하고 난 후 국왕을 비롯한 귀족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서 52장에 나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에 세 번에 걸쳐서 강제이송이 이루어졌는데, 그때 잡혀간 포로의 숫자는 사천 육백 명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서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다. 느부갓네살이 포로로 끌고 간 유대 백성의 수는 이러하다. 그의 통치 제 칠년에는 삼천 이십삼 명이었다. 느부갓네살의 통치 제 십팔 년에는 예루살렘에서 팔백삼십이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느부갓네살의 통치 제 이십삼 년에는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유다 사람 칠백사십오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잡혀간 포로의 수는 모두 사천육백 명이다.” (예레미야서 52장 28-30절)
물론 이 숫자는 성인 남자들만 계산한 것이니까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한 2, 3만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세 차례에 걸쳐 포로로 잡혀간 셈입니다. 물론 그들은 유다 왕국의 핵심을 이루던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 제사장 출신인 에스겔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비록 유다의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마는 그들의 국가는 바빌론과 비교했을 때 사실 너무나 자그마하고, 빈약하고, 외부와는 단절된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의 대부분은 그때까지 그 국경 너머로 여행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의 한가운데 있는 땅 위에 그 거룩한 처소를 두고 있고, 자기들은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자기들만이 그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쫓겨나서 조국과 성전을 버리고, 세계 각지로 흩어졌고, 그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했던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붙잡혀온 세계 속에서 그들은 자기들의 도성 예루살렘이 그 바빌론의 자그마한 성읍들만큼이나 작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빌론의 수도 바빌로니아는 예루살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솔로몬 왕이 누렸던 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들이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엄청난 군사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르둑 신 또는 나부 신, 아문 레 신과 같은 여러 신들의 그 찬란한 형상들을 안치해 놓은 거대한 성전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성전 안에 그 어떤 신의 형상도 놓여 있지 않은 예루살렘 성전은 너무나 초라해서 그야말로 성전이라고 부르기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자, 이제 어찌할 것인가? 야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야훼 하나님이 마르둑 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신 것 같은데 그래도 야훼 신앙을 지킬 것인가?
아닙니다. 가장 쉽고 편한 길은 바빌론 신들을 섬기는 신앙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이방종교는 눈에 보이는 신이 있고, 그 신에게 예배를 드리면 그 신이 눈에 보이는 복으로 보답한다는 것을 종교의 기능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자는 그의 신에 대해 이같이 익숙한 결과를 원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그를 보호하는 것으로 보답을 받을 것이고, 그에게 갖다 바치는 돈은 그에게 더 많은 돈을 갖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은 이같이 해주지 않는 신들은 섬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도 급격히 여기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바빌론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너희네 성전 안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서?’
‘거기에는 그럴듯한 신의 형상 하나 없다면서?’
‘너희들이 섬기던 그 신이 결국 너희들을 지켜주지 못했고, 너희들이 섬기던 신이 너희들에게 아무런 축복도 해 주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 신을 섬긴단 말이냐?’
바로 그래서 그 유대인들은 급격히 하나님을 버리고 바빌론의 신들을 섬기는 신앙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포로기 예언자들은 아주 격렬하게 우상숭배에 빠져드는 유대인들을 향해 경고와 질타를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기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진정 하나님이 마르둑 신보다 능력이 없어서 졌단 말인가?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지켜줄 힘이 없단 말인가? 이제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의 관계는 끊어졌단 말인가?
여러분, 바로 이때 예언자 에스겔이 등장합니다. 그는 유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남아있던 사람들 중 다수는 이집트로 도망가고, 그야말로 도망갈 형편도 되지 못한 백성들만 유대 땅에 남아 있게 된 그 처절한 상황을 보면서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다 백성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유대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통해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너는 그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 목자가 없기 때문에, 양 떼가 흩어져서 온갖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모든 높은 언덕에서 헤매고, 세계 각처에까지 흩어지게 되었는데도, 그 양 떼를 찾으려고 물어 보는 목자가 하나도 없었다.’ (에스겔서 34장 1-6절)
그렇습니다.
목자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입니다.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주고, 병든 것을 고쳐주고,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주고, 흩어진 것을 모으고,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람이 목자입니다.
그러나 유대의 목자들은, 지도자들은 정치지도자나 종교지도자 할 것 없이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당시 왕이나 제사장들, 관변예언자들은 목자였습니다. 백성들을 이끌 목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있느니만 못했고,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목자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언자 에스겔은 이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 내 양 떼가 약탈을 당하고, 참으로 내 양 떼가 온갖 들짐승에게 공격을 당하고 살육당하여 그것들의 먹이가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다. 내 목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내 양 떼를 찾으려고 나서지 않았다. 그 목자들은 양 떼를 잡아서 자기들의 배만 채우고, 내 양 떼는 굶겼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그 목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에게 맡겼던 내 양 떼를 되찾아오고, 다시는 그들이 내 양을 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면 그 목자들이 다시는 양 떼를 잡아서 자기들의 배나 채우는 일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의 입에서 내 양 떼를 구출해내면, 내 양 떼가 다시는 그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것이다.” (에스겔서 34장 7-10절)
그렇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굶주리고, 약탈당하고, 살육당하는 형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침내 하나님께서 친히 나선다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11절부터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내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 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먹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에스겔서 34장 11-16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양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이제 데려다가 기름진 초원과 목장에서 먹이고 눕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단순히 양 떼를 먹이고 입히는 것뿐만 아니라 친히 심판자가 되셔서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에서 심판자가 되겠다고 까지 선포하셨습니다.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양 떼야,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살진 양들아, 좋은 초원에서 뜯어 먹는 풀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먹다 남은 풀을 발로 짓밟느냐? 너희가 마시는 맑은 물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마시고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혀 놓느냐? 내 양 떼는 너희가 짓밟은 풀을 뜯어 먹으며, 너희가 발로 더럽혀 놓은 물을 마시고 있다.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그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직접 살진 양과 여윈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너희가 병든 것들을 다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너희의 뿔로 받아서, 그것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어 흩어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해 주어서, 그것들이 다시는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내가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다. 내가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다.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다. 그가 친히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나 주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나 주가 말하였다.“ (에스겔서 34장 17-24절)
그렇습니다.
유대의 악한 목자들뿐만 아니라 양들 가운데서도 살진 양들이 병든 것들을 다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뿔로 받아서 그것들을 바깥으로 내보내어 흩어지게 하였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해주어서, 그것들이 다시는 희생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양과 양 사이에서 심판하겠으며, 그들 위에 목자를 세워 그들을 먹이도록 하겠으니 그 목자는 내 종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목자들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양들도 심판하실 터인데 살진 양들과 여윈 양들로 나누어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살진 양은 무엇이고, 여윈 양은 무엇이겠습니다. 살진 양은 자기들끼리 잘 먹고 잘 산 양들이지요. 18절에서 말한 것처럼 ‘좋은 초원에서 뜯어먹던 풀들이 만족스러웠던 사람들’인데 자기들은 실컷 먹고 남들은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발로 짓밟는 사람들입니다. 또 자기들은 실컷 맛있는 물을 먹고 남은 것은 발로 더럽혀놓는 무리들입니다. 그런 무리들을 하나님은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들은 힘이 세니까 병들고 약한 양들을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내고 뿔로 받아서 바깥으로 밀어내어 흩어지게 만드는 양들입니다. 자기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자기네만 건물 크게 짓고 성장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심판하실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언자 에스겔의 말씀이 마침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다윗의 아들 예수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던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온갖 질병과 온갖 아픔을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 사역은 일찍이 예언자 에스겔이 선포했던 예언의 성취였던 것입니다. 예수는 에스겔이 선포했던 것과 같이 목자를 잃어버리고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있는 양과 같던 무리들을 위해서 오신 목자이십니다. 그분이 그 양들을 고쳐주시고, 먹여주시고, 이끌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이 땅에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일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요? 예수 혼자 할 것인가요? 과연 그 일이 예수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예수가 살아계실 때 완성되고 끝날 것인가요? 만약 다 이루어지 않은 채 예수께서 떠나가신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이 일은 결코 예수 혼자 할 것도 아니고, 또 예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함께 할 제자들이, 동역자들이, 일꾼들이 필요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씨앗을 뿌려놓고 가면 그 일을 이어서 할 사람들이 필요하셨습니다. 당신의 뒤를 이어서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해 나갈 사람들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그러므로 너희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그의 추수 밭으로 보내시라고 청하여라.”
추수할 것이 많다고요? 도대체 무엇을 추수한단 말입니까? 성서에서 추수는 흔히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민족들아, 출발하여라.
여호사밧 골짜기로 오너라.
내가 거기에 머물면서 사방의 민족들을 모두 심판하겠다.
거두어들일 곡식들이 다 익었으니,
너희는 낫을 가지고 와서 곡식을 거두어라.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마다 술이 넘칠 때까지 포도를 밟듯이,
그들을 짓밟아라.
그들의 죄가 크기 때문이다.
판결의 골짜기에 수많은 무리가 모였다.
판결의 골짜기에서
주님께서 심판하실 날이 가까이 왔다.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잃는다.“ (요엘서 3장 12-15절)
그렇습니다.
추수는 곧 하나님의 심판 때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예수는 심판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추수 때까지 밀과 가라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할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 (마태복음 13장 30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악한 목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추수 때가 되었으니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여 뽑아내듯이 악한 목자들을 구분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부화뇌동하던 무리들도 함께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악한 목자들의 편에 붙어서 자기들도 그들이 주는 것으로 잘 먹고 잘 살던 살진 양들을 함께 심판하실 것입니다. 가라지 같은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미워하시는 악한 목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들은 바로 세상 권력에 빌붙어 돈과 명예를 탐하는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너는 예언한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을 규탄하여 예언하여라. 자기들의 마음대로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나 주가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보여준 환상을 보지도 못하고 저희들의 생각을 따라서 예언하는, 어리석은 예언자들에게 화가 있다. . . . . .
그러므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가 헛된 것을 말하고 속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헛된 환상을 보고 속이는 점괘를 말하는 그 예언자들을 내가 직접 치겠다. . . . . . .
내가 이렇게 그들을 치는 까닭은, 그들이 내 백성을 잘못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무엇하나 잘 되는 것이 없는데도 잘 되어 간다고 하여 백성을 속였기 때문이다. 내 백성이 담을 세우면, 그들은 그 위에 회칠이나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너는, 회칠하는 자들에게, 그 담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하여라. 내가 소나기를 퍼붓고, 우박을 쏟아 내리고, 폭풍을 일으킬 것이니, 그 담이 무너질 때에, 그들이 발랐던 그 회칠이 다 어찌되었느냐고, 비난하여 추궁할 것이라고 하여라.“ (에스겔서 13장 1-11절)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수백 억, 수천 억 원의 돈을 들여 온갖 대리석으로 치장하여 지은 건물에서 호의호식하며 사는 목사들에게 과연 하나님의 음성이 주어진 것입니까? 온갖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고도 부자 되고, 성공하면 곧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외치는 저들의 메시지가 과연 하나님의 음성입니까?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생각하고 따라가는 양들을 대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이 땅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에 실망하여 떠나갔고, 저들이 진리에 갈급하여 목자 없는 양들과 같이 지쳐서 쓰러져 있습니다. 이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이때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 것입니까?
'마태복음강해(06.9.17-10.4.18) > 2007 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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