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7 년도

2007. 12. 9 / 두 번째 징표 - 눈이 열리다 / 마태복음 9:27-31

람보 2 2015. 4. 2. 23:24

두 번째 징표 / 2007. 12. 9

   - 눈이 열리다 -


본문) 마태복음 9장 27-31절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 먼 사람 둘이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예수를 뒤따라 왔다.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눈 먼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그들이 “예, 주님!”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다짐하셨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라.”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지역에 퍼뜨렸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우리가 그동안 집중적으로 읽어온 네 복음서를 몽땅 다 합해서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치유 이적 사건을 세어보면 모두 마흔 두 번의 치유이적을 행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집단으로 이루어진 치유 이적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4장 24절과 같은 기록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같은 사건인데 두 복음서나 세 복음서에 다 나오는 것들도 있기에 그런 것들은 하나의 치유 이적으로 계산하면 예수께서 모두 스물한 번의 치유이적을 행하신 것으로 계산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하신 치유이적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네 번 있었는데 모두 여섯 군데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다음이 앞을 보지 못하던 맹인을 고치신 사건으로서 모두 세 번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여섯 군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이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 중풍병자와 나병환자를 고치신 사건 등이 그 뒤를 따라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예수께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즉 새로운 세상을 이루기 위해 오셨는데 그 징표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고 그 다음이 바로 앞을 보지 못하던 소경을 보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 밖에도 열병, 혈루증, 벙어리, 손 오그라든 사람, 등 굽은 여인, 수종병 등이 예수께서 고쳐주신 병인데 이 많은 질병들 중에 가장 독특한, 다른 치유이적들과는 다르게 표현된 사건이 바로 소경을 보게 하는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치유이적사건이 불과 네 번밖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9장 1절부터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께서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질병들도 다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라고 생각했지만 특히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어떤 벌보다도 더 가혹한 벌이라고 생각했기에 누군가 눈이 멀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본인이든 부모든 죄를 지은 대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그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밝혀 주셨습니다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해서 당시 유대인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다른 질병들을 고치실 때는 대부분 말씀 한 마디로 고치셨습니다. 군대귀신을 내쫓으실 때도 말씀 한 마디로 내쫓으셨고, 죽은 자를 살리실 때도 말씀 한 마디로 그들을 살려내셨습니다. 그런데 유독 소경들의 눈을 뜨게 하실 때에는 힘든 과정을 거친 때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마가복음에는 예수께서 소경을 고치실 때 단 한 번에 고치지 못하고 두 번의 수고를 거쳐야 했던 것처럼 보이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벳세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 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로 데려와서, 손을 대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물으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그 사람이 쳐다보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 사람이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 (마가복음 8장 22-26절)  

  

  그렇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에서 예수는 단 한 번에 귀신을 쫓아내고, 환자를 고치시는데 비해 유독 여기에서만 처음에는 두 눈에 침을 뱉고, 다시 두 눈에 손을 얹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불완전한 사건처럼 보였기에 마태복음 기자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사건을 오늘의 본문에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여 집니다.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후에 거기에서 떠나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예수를 보고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라고요? 이 표현은 마태복음 기자가 이미 맨 처음부터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낼 때 쓴 표현이지 않습니까? 다른 복음서와 달리 마태복음 기자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마태복음 1장 1절)

  그리고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맨 마지막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계보를 끝내고 있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 (마태복음 1장 16절)


  또한 예수는 다윗의 자손이기에 유대인의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별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동방의 박사들은 헤롯왕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마태복음 2장 2절)

  헤롯왕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였고, 온 예루살렘 사람들도 그와 함께 당황하였다고 기록되었으니 참으로 놀랍게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자기 입으로 고백한 첫 번째 사람이 바로 헤롯왕이었던 것입니다.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 지를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마태복음 2장 4절)


  그리고 여러분, 보십시오.

  이후 마태복음에서 9장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도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부르고 고백하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에 와서야 비로소 두 사람이 예수를 향해 “다윗의 자손”이라고, 즉 그리스도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보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눈이 멀었기에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전혀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눈을 떴다고 해서 보아야 할 것을 다 보는 것도 아니요, 육신의 눈을 뜨지 못했다고 해서 보아야 할 것을 못 보는 것도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믿음의 눈으로 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셨는데, 눈 먼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느냐?”

  무슨 말입니까?

  눈 먼 사람들이 눈을 뜨게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닌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 있느냐는 물음이지요. 그들은 대답했습니다.

  “예, 주님!”


  그들의 그 고백이, 간단한 대답이 참으로 진실되다는 것을 예수께서 아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뜨기를 원하는지를 예수께서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믿음의 눈을 가진 자들만이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은 믿음이 있었기에 기적의 체험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사건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이 온 것의 두 번째 징표가 될 수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이미 구약에서 맹인 치유를 하나님의 지배의 표징으로 여겼고, 예수에게서 구약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거짓되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놀랍고 기이한 일을 행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한 번 놀랍고 기이한 일로

  이 백성을 놀라게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지혜가 없어지고,

  총명한 사람들에게서 총명이 사라질 것이다.“   (이사야서 29장 13-14절)


  물론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이 단순히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뿐만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똑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제 하나님께서 놀랍고 기이한 일로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놀랍고 기이한 일이 무엇입니까? 메시아가 오는 일,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볼 것이다.

  천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더없이 기뻐하며

  사람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할 것이다.

  포악한 자는 사라질 것이다.

  비웃는 사람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죄 지을 기회를 엿보던 자들이 모두 끝장날 것이다.

  그들은 말 한 마디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성문에서 재판하는 사람을 올무에 걸리게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의로운 사람의 권리를 박탈하던 자들이다.“   (이사야서 29장 18-21절)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그리스도가 오면 그분이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인데 그때 새로운 세상의 징표로 나타나는 것들이 바로 “듣지 못하는 사람이 두루마리의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어둠과 흑암에 싸인 눈 먼 사람이 눈을 떠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자 이사야는 35장에서 메시아가 오면 거룩한 길이 열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될 것을 선포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 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 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이다.


  너희는 맥 풀린 손이 힘을 쓰게 하여라.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여라.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  (이사야서 35장 1-7절)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세상이 왔다는 징표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는,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종으로 오시는 분이신데 다음과 같은 분입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사람이다.

  내가 택한 사람,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가 뭇 민족에게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실 것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으며,

  끝내 세상에 공의를 세울 것이니,

  먼 나라에서도 그의 가르침을 받기를

  간절히 기다릴 것이다.“   (이사야서 42장 1-4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메시아를 통해 다음과 같은 역사를 일으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 주가 의를 이루려고 너를 불렀다.

  내가 너의 손을 붙들어 주고,

  너를 지켜 주어서,

  너를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할 것이니,

  네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 줄 것이다.“  (이사야서 42장 6-7절)


  그렇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을 이끌어 내고, 어두운 영창에 갇힌 이를 풀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는 다시 한 번 메시아가 할 일을 총정리해서 선포합니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이사야서 61장 1-2절)


  여러분!

  바로 이 예언이 예수에게서 이루어졌음을 예수 스스로 선포하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아시지요?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께로 쏠렸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   (누가복음 4장 16-21절)


  비록 이 구절이 마태복음에 똑같이 나오지는 않습니다마는 눈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사건은 분명히 예수께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 곧 새로운 세상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믿음의 눈으로 예수가 우리들에게 희망의 삶, 생명의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는 야이로의 딸과 같이,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같이 절대적인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예수를 통해 희망의 삶, 생명의 삶을 살게 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는 눈먼 사람 둘과 같이 어둠과 흑암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희망의 삶, 생명의 삶을 살게 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나오는 것처럼 귀신이 들려 말 못하던 사람의 말문이 열림으로 희망의 삶, 생명의 삶을 살게 되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도대체 누가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희망의 삶, 생명의 삶을 살게 될 것인가요? 오늘의 본문에 이어서 마태복음을 계속 읽어보면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네 번 더 나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주시니, 그가 말을 하고,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가 모두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다윗의 자손이 아닌가?’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이 사람이 귀신의 두목 바알세불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12장 22-24절)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15장 21-22절)

  “그들이 여리고를 떠날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왔다. 그런데 눈먼 사람 둘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무리가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들은 더욱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희 소원이 무엇이냐?’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엽게 여기시고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니, 그들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를 따라갔다.”  (마태복음 20장 29-34절)

  “성전 뜰에서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셨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또 성전 뜰에서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이들이 무어라 하는지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예수께서 그들을 두고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에서 밤을 지내셨다.”   (마태복음 21장 14-17절)


  그렇습니다.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메시아라고 고백한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로부터 홀대받던 무리들, 가나안 여인, 눈먼 사람 둘 그리고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새파 사람들,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은 그것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스스로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 종교지도자로서 존경받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그 누구도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눈먼 사람들과 같이, 가나안 여인이나 어린아이들과 같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소외되었던 사람들만이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고백했고, 따라서 그들만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진정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임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도 바로 새로운 세상을 이루는 일에 헌신하기 위함인 것을 믿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란 단순히 지적으로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바쳐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그 믿음만이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맹인 두 사람과 같이 전적으로, 진실되게 믿음을 고백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