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년도

2006. 5. 7 /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 요한복음 17:20-26

람보 2 2015. 3. 31. 19:54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


요한복음 17:20-26 / 2006. 5. 7



  저는 지난 목요일에 모처럼 강화도를 다녀왔습니다. 관광을 하러 갔다 온 것이 아니고 제가 쇄암리교회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권사님 한 분이 몸이 많이 아프다고 해서 심방 다녀 온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제가 쇄암리에서 처음 단독목회를 할 때부터 알게 되어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사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저한테 가을추수가 끝나면 십일조를 보내기도 하고, 또 이번에도 쌀을 한 푸대나 주셨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마치 제 어머니같은 분이신데 지금 연로하셔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 권사님도 지금까지 사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도시에서 살다가 지금은 강화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몸이 아프다고 하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너무나 많이 아프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동네에서 늘 다니는 의사의 소개를 받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고 그 결과가 지난 화요일에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요일에 검사결과가 나온 직후 저한테 전화를 했는데 병명이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베제트병’과 ‘경직성 척추염’이라고 하더군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목요일에 강화를 가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논에 나가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달려갔고, 그래서 만났더니 약을 먹고 난 후부터서 몸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어서 논에 나갔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목을 움직이지 못했던 것부터 시작해서 온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고, 통증이 너무나 심해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의사의 말로는 두 병이 다 원인을 모르는 것들이기 때문에 완치가 어렵고, 따라서 약을 먹고 통증을 완화하고 병의 진전을 늦추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동안에 지난 이야기를 듣고 함께 기도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쨌든 고 권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베뢰아’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김기동 목사라고 귀신론으로 유명한 목사 밑에서 공부하는 그룹이라고 듣고 있는데, 한 마디로 성경 전체를 귀신론으로 풀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귀신의 역사로 풀어내는 그룹이라지요. 요즘 베뢰아 출신으로 가장 유명해 진 사람이 소위 연세**교회 담임목사라고 하는 윤** 목사이지요.


  그런데 요즘 강화나 김포에 베뢰아에서 공부하고 온 목사들이 굉장히 많답니다. 그 권사님도 그런 목사 중의 한 사람을 만났고, 그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도 나가 보았는데 예배세간에 무슨 기적을 행한다고 떠들고, 은사를 받으라고 떠들고 하는 바람에 도무지 혼란스럽다고 저한테 전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으니까 그 목사의 소개로 윤 ** 목사가 집회를 인도하는 무슨 기도원에 갔었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역시 기적을 강조하면서 방언을 하지 못하거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면 엉터리 믿음이라고 하도 떠들어대서 아이들을 데리고 빠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무언가 눈으로 보고 피부로 체험을 해야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방언을 하고, 입신을 하고, 환상을 보고, 계시를 보아야 진짜 믿음이 좋은 것이고, 치유의 은사를 행하고 기적을 보여주어야 신령한 목사라고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현실이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소의 오순절교회 계통의 교회들이 한국교회에 끼친 해악은 너무나 큰 것입니다. 그야말로 한국교회의 신앙의 수준을 철저한 샤마니즘 내지는 무당 종교의 수준으로 떨어뜨린 엄청난 죄악을 그들은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 목사들 스스로 무당의 역할만 하고 있는 셈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보고야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고, 증거를 요구하는 순간 믿음은 믿음이기를 포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의 본문에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이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20절)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9-19절에서 당신께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고 믿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그 기도의 주제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하소서.

  둘째, 악에서 지켜 주소서.

  셋째,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소서.

  그리고 결국 주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보내지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로부터 택함을 받은 제자들은 ‘보내심’을 받기 위해 선택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의 수단은 바로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잘 보십시오.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말로 전도했고, 바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예수를 믿어 제자가 되고, 다시 그들이 전도자가 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 우리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물론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기도 하셨습니다마는 그분에게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메시지는 역시 말로 전해지는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꼭 필요하실 때 기적을 행하실 능력도 있으셨고, 또 행하기도 하셨지만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아셨고, 그런 믿음은 기적이 사라질 때 곧 사라질 것임도 역시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나 이상한 체험을 통해 믿는 믿음이 오래갈 것 같지만 결코 아닙니다. 말과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의 인격을 통해 믿게 될 때 그 믿음이 진짜요, 진실로 오래가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제자들의 말을 듣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는 어떤 내용을 갖고 있을까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으니

  하나는, 그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하는 것이오.

  다른 하나는, 제게 주신 저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여 주소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의 첫 번째 주제는 바로 ‘그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1-23절)


  그렇습니다.

  불과 석 절밖에 되지 않는 본문 안에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라는 표현이 세 번씩이나 나오고 더구나 23절에는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까지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은 제자들이 하나될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은 무엇인가요? 일찍이 요한복음 기자는 1장에서 이렇게 선포한 바 있습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으나, 그의 백성은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 1:11-12)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생명을 누리는 자녀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는 곧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표현입니다. 예수가 하나님과 하나이시니, 믿는 이들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나아가는 안전한 중개자로 하는 진정한 가족을 이룰 때 주를 믿는 자들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기도의 두 번째 주제는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주신 영광을 보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여기서의 ’영광‘을 예수께서 종말론적인 왕국에서 누릴 ’하늘영광‘이라고 해석합니다마는 저는 그보다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며 사는 것 자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 주셨다.”    (요한복음 1;18)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           (요한복음 14:8-10)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하나님의 품 안에 계시고, 아버지 안에 계시기에 당신의 사람들도 당신이 있는 곳에, 하나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고 사는 그곳에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나를 기억해 달라’는 강도에게 이 구원의 선물을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궁극적인 축복, 그것은 바로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즉 그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부활시키셨음을 믿는다면 그분이 누리신 영광을 우리도 누리게 될 것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지금 여기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된 우리들을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어떤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언제나 주님만을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