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2. 11 / 구원의 나팔소리 / 사사기 6:25-35(기독교방송)
구원의 나팔 소리
사사기 6:25-35 / 1995. 2. 11(기독교 방송)
이 방송을 들으시는 성도님들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미 여러분이 이 시간을 통해 들으신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받고 또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가나안 본토민들이 섬기던 우상을 받아들이고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주로 주변에 살던 이방민족들을 도구로 써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게 하고 억압하는 것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받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때서야 비로서 회개하고 잘못했다고 빌고, 살려달라고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사들을 보내셔서 자기들을 괴롭히는 주변 민족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타락-심판-회개-구원이라고 하는 단계가 계속 되풀이된 것이 바로 사사기의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에는 모두 열두 명의 사사들이 나오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기드온은 그 중 다섯 번째 사사로서 그의 이야기는 6장부터 8장까지에 걸쳐서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때는 미디안이라는 민족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여 7년 동안이나 괴롭히던 시절이었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창세기 25:1-4에 나오는 대로 아브라함의 세 번째 아내인 그두라에서 태어난 미디안의 후손들로써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침략할 때에는 모든 가축을 몰고 감으로써 그 지역의 모든 곡초를 파멸케 하는 방법을 쓰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6장 4-5절에 의하면 미디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소산을 빼앗아 가고 양이나 소나 나귀같은 가축들도 남기지 않고 빼앗아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침략으로 인해 말할 수 없이 고통을 당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부르짖게 되고 제발 살려달라고 간구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기드온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모습이겠습니까? 신앙생활 한다고 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드온을 택하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를 기드온에게 보내셔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곧 내가 너를 통하여 이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자기의 부족함을 알았기에 몇 번씩이나 사양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강권적으로 붙드셨습니다. 심지어는 기드온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다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되고 그래서 이제 죽게 되었다고 두려워하게 되자 죽지 않으리라고 안심을 시켜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렇게 기드온을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기드온에게 일을 시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일의 첫 번째가 바로 사사기 6장 25절로부터 32절에 나오는 사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대신 섬기던 바알의 신당을 헐어버리고 그 곁에 있던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들 대신 하나님께 제사드릴 단을 규례대로 쌓고 둘째 수소, 곧 일곱 살 먹은 수소를 취하여 아세라 목상을 쪼개서 만든 장작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6장 25절로부터 40절까지에 나오는 기드온의 소명에 대한 기사의 첫 번째 부분인 바 소명을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과 자신의 족속을 우상숭배의 죄악으로부터 정결케 하라는 지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대적들의 압제에서 구원하라는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아비의 집과 족속을 모든 죄에서 성결케 하며 또 제단을 쌓아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는 일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이 명령을 들은 기드온은 열 사람의 종들과 함께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리는 일을 하였는데 27절에 의하면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대낮에는 하지 못하고 그들이 다 잠이 든 밤중에 그 일을 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때 기드온은 분명히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자기의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들과 더불어 사는 이웃들이 다 바알과 아세라를 신으로 섬기고 있는데 그것을 부수어 버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용기를 내었고 마침내 우상들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성읍 사람들은 바알의 단이 다 무너지고 목상을 장작으로 변해 땔감으로 쓰였고 새로 쌓은 단 위에 둘째 수소, 곧 일곱 해 된 수소를 제물로 바친 흔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크게 놀랐고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는가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소문해 보니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행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요아스의 집으로 몰려가 아들을 내놓으라고, 그를 죽여야겠노라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그의 아비 요아스와 그의 가족들도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던 사람들이니까 기드온을 내주어서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위기의 순간에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밖에도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신앙 위에 바로 서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아스는 몰려든 성읍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요아스는 참 신과 거짓 우상을 구별하는 방법을 제시하였고 그 결과 몰려들었던 성읍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믿음 위에 바르게 굳게 설 때 악한 세력들은 힘을 잃고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서 기드온을 도왔던 열 사람의 종들을 기억합니다.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라는 구절로 밖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물론 이름도 남아있지 않고 떳떳한 직업이 소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드온의 집에서 종살이하던 보잘 것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종이니까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그 사건도 주인인 기드온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보통 일입니까? 단순히 땅 파고 농사짓고 하는 힘든 일이 아니라 이름이야 어떻든 신을 섬기는 단을 헐어버리는 일인데 어찌 두렵거나 떨리지 않았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문명천지에서 대학까지도 나왔다는 지식인들 중에도 대문간에 붙은 부적 하나만 떼어내도 큰 벌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시골의 집 뒤켠에 지푸라기로 만들어서 갖다놓은 터주대감도 손을 댓다가는 부정타서 나쁜 일을 당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형편인데 그 옛날 아무리 주인의 명령이라고 해서 그런 일에 따라나선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그 열 명의 종이 없었다면 어찌 기드온은 그 일을 해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 방송을 들으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기드온을 도왔던 종들과 같이 당신의 일을 시키기 위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겠노라고 일어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부르셔서 주의 종들을 돕게 하시고 그들을 협력하여 주의 일을 감당해 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가 기드온과 같은 사사가 될 수는 없지만 우리 모두는 그를 도왔던 종이 될 수는 있습니다. 아니 그런 종이 되어야 참다운 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복 받은 교회이고 칭찬받는 교회, 큰 역사를 이루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자, 기드온이 용기를 내어 바알 신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가요? 우선 그의 아버지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분명히 그 전에는 아버지도 바알을 섬겼기에 아버지도 성읍사람들과 한패였으나 아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난 후 오히려 몰려든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서서 바알이 어찌 신이냐고 설파합니다. 우상을 훼파한 것은 옳은 일이라고, 내 아들이 한 일은 떳떳하다고 맞서게 되었습니다. 한 아들의 믿음의 행위가 아버지와 가족들을 구원해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만드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바르게 살아갈 때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또한 기드온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기드온이라는 이름이 바뀌어 여룹바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룹바알, 그 뜻은 ‘바알은 싸워보라’, ‘바알은 싸울찌어다’ 라는 것입니다. 즉 기드온이 바알 제단을 파괴하였으니 바알이 진정 살아있는 신이라면 기드온을 대적하여 싸워 보라는 뜻이니 이 얼마나 바알의 수치를 드러내는 이름이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아는 집사님 중에 ‘은호’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집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은 이름이 은호인데 원래는 ‘팔호’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그의 부모님이 아들을 낳고나서 점집에 가서 무당에게 지어달라고 해서 얻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려서는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고 했는데 그가 장성해서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이름 때문에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답니다.
“내가 그래도 예수 믿고 새사람 되었는데 옛날 무당이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써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고민 끝에 교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사정을 쭉 말씀드리고 나서 이름을 좀 고쳐 달라고 했더니 그 목사님이 한참을 생각하고 기도하더니 가운데 글자인 ‘팔’자를 ‘은’자로 바꾸어 주더라는 것입니다. 은혜 은자를 써서 은호라고 짓고 보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진짜 하나님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 여러분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또 예수 믿는다고 모든 사람이 다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우리에게는 예수 믿고 난 후에 크리스챤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하는 분명한 이름이 하나씩 다 붙어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그냥 부르기 좋거나 걸어놓기 위해 붙인 이름이 아니라 이름에 걸맞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붙어주신 이름인 것입니다. 기드온이 여룹바알이 되어 우상을 물리치는 일에 앞장섰던 것처럼,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뀐 후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섰던 것처럼, 베드로가 게바로 변하여 이름 그대로 반석이 되고 주님께서 그의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처럼, 사울이 바울로 변하여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처럼, 또 무당이 지어준 이름대신 은혜 받고 구원받은 후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이름까지 바꾸고 이후 믿음 안에서 살려고 애쓰는 어느 집사님처럼 우리도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합당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기드온의 소명의 두 번째 단계는 ‘여호와의 신이 강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33절에 의하면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먼저 바알 신상과 아세라 목상을 부수고 있을 바로 그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멜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서 요단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이제 한바탕 전쟁이 일어날 판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모든 곡식을 빼앗기고 약탈을 당할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적자들이 동맹군을 형성하여 모여 들었을 때에 기드온을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군사 지도자로 세우기 위하여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라는 말은 ‘기드온을 옷입혔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 충만의 역사로 여호와께 절대 복종하게 된 기드온의 영적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감화를 받는 일만이 필요합니다. 인간적인 욕심이나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오직 성령의 도우심만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시지 않고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셨을 때 기드온이 한 일은 무엇이었던가요? 그것은 바로 나팔을 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지파로 사람을 보내어 나팔을 불게하고 동족을 괴롭히는 이방민족을 쫓아내는 일에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드온의 나팔소리를 구원의 나팔소리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나팔소리는 바로 오늘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들이 불어야 하는 나팔소리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도 역시 우리를 향해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님이시라고, 그 분을 믿고 구원받으라고 하는 구원의 나팔소리가 아니던가요? 바로 오늘 우리가 끊임없이 불러야 하는 나팔소리가 아니던가요?
이 시간 여러분의 귀에는 기드온이 불어대는 구원의 나팔소리가 들리십니까? 이제 일어나라고, 떨치고 일어나 복음을 전파하라고, 아직도 죄악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이웃들을 건져내라고 호소하는 구원의 나팔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부르시는 구원의 나팔소리를 듣고 복음을 전하는 귀한 삶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