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 년도

1995. 1. 22 / 회개하지 않으면 / 누가복음 13:1-5

람보 2 2015. 3. 10. 20:14

회개하지 않으면 (1995. 1. 22 )

회개하지 않으면

눅 13:1-5 / 1995. 1.22

지난 17일 오후, 그러니까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보도가 쏟아져 들어오던 화요일 오후에 전화가 왔다는 말을 듣고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대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아주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누군가 했더니 일본에 선교사로 가 있는 강신룡 목사의 어머니 되시는 집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 ”하면서 부르시더니 “우리 강 목사가 연락이 안돼요.”라고 하며 지진 난 곳이 바로 옆이라고 하는데 소식이 없어서 몹시 불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뭐라 위로해야 될지 몰랐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강 목사님이 사는 곳은 교오또인데 이번 지진으로는 별 피해가 없는 곳이고 또 그 날 교회 모임이 있어서 마침 그 전날 고오베에 갔다가 지진이 나는 걸 목격하고 급하게 빠져나와 대피했는데 집에까지 1시간이나 1시간 30분이면 갈 거리를 고속도로가 막혀서 꼬박 하루를 차속에 갇혀 있다가 간신히 집에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결국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가족 모두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언제, 어디로, 얼마나 큰 지진이 덮쳐올지 몰라 온 국민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의 이번 지진을 보면서 나는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하나는 기가 막히게도 정확하게 1994년 1월 17일 미국의 LA를 덮쳤던 지진이었습니다. LA에 지진이 일어나 곳곳에 불이 나고 고속도로가 끊어지곤 했을 때 일본의 반응은 바로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해도 적어도 고속도로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불행을 보고 다소곳하게 주의하고 함께 아픔을 나누기는커녕 우리 같으면 안 당한다는 오만, 그것이 믿는 사람들의 마음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지난 해 10월인가 우리나라의 그 유명해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일본의 반응 역시 똑 같았습니다. 시간시간 TV뉴스와 신문에서 끊어진 성수대교를 보여 주면서 그들이 끊임없이 되풀이한 말은 바로“그런 사고는 후진국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일본에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였습니다.

이제 이번 사고와 관련지어 또 한 가지 잊어버릴 수 없는, 아니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1924년 일본의 수도 동경과 그 일대를 휩쓸었던 소위 관동 대지진입니다. 무려 14만 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그 재난을 통해 당시 그 일대에 살던 우리 동포 7천 여 명이 무고하게 죽거나 다쳤습니다. 일본인들이 지진 때문에 자기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조센징들이 도둑질한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수많은 조선인이 몰매를 맞고 죽어갔습니다. 나는 내 지식이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그때 저지른 죄에 대해 사과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네가 우리나라를 점령했었기 때문에 조선이 이 정도나마 발전했다고 장관이라는 자들이 말하기도 하고 1963년에 돈 몇 푼 준 것으로 보상은 끝났다고 큰 소리치고 있습니다. 수십만의 노동자를 강제로 끌고 간 징용, 징병, 그래서 죽고 다치고 원자탄에 맞아 본인은 물론 자식들까지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야 하고 또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일생을 비참하게 살아야 했던 여인들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곳곳에 널려 있는데 잘못했다고 말하기는커녕 돈 몇 푼 내놓는 것을 아까와 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일본입니다. 하기야 오늘 날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일본만화라면 사족을 못 쓰고 있는 한심한 현실이니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쨌든 일본에서 요즘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은근히 “일본 열도 침몰론”이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지진에 의해 일본 열도가 왕창 바닷물 속으로 잠겨 버리고 그 대신 부산 앞 바다의 육지가 불쑥 솟아오른다는 설이지요. 그렇다면 일본은 왕창 망하고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갖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 우리나라 영토가 넓어지고 우리만 잘 살기 위해 일본은 망하고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 마치 니느웨 성이 한꺼번에 망하기를 바라고 있는 욥이 되어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는 말입니다. 일본 땅에 우리 동족이 얼마나 많고 또 일본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이 하루아침에 망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어찌 할 수 있는 것인지 나 자신이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일본에서 더 이상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하고 또 지진이 일어나서 재산상의 피해를 입어도 인명이 다치는 일이 없기를 우리는 바라야 하고 또 일본을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본 사람들은 이제 세계2위의 경제 대국이 되고 엄청난 돈을 벌고 산업이 발달하고 튼튼한 고속도로를 놓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지진으로 체험하면서 지금까지 이웃 민족들에게 저지른 죄를 회개하지 못한 잘못을 하나님과 이웃 민족들에게 고백하고 빌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서 주신 축복을 감사하고 그것으로 세계 인류와 더불어 평화롭게 살겠다는 다짐이 일본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재난으로 일본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이번 재난을 자기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그 옛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의 바로에게 히브리인들을 해방시키라고 촉구하고 말을 듣지 않으니까 열 가지 재앙으로 경고를 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그 경고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다가 모든 장자들이 죽고 마지막에는 홍해에 빠져 몰살당했던 하나님의 심판이 다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나님의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제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모든 지진과 관계되는 사건들은 우리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이나 당하는 일이지 우리나라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마음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면서 복음을 전하던 시대는 우리 모두 아는 대로 로마가 세계를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로마는 어떤 곳에는 왕을 두고, 또 어떤 곳에는 총독을 두고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다스리던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유난히 민족적 자긍심이 강하고 끝까지 로마에 고개 숙이지 않으려는 민족 가운데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유대 민족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빌라도가 마음 약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빌라도는 적어도 로마 황제의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 아픈 유대 민족을 가장 잘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여 총독으로 임명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결코 만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로마 군대의 유대 지방의 사령관이었고 조금이라도 자기의 권력에 도전하거나 로마의 세력이 위협을 받는다고 느껴지면 가차 없이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자기의 총독 자리가 위태해진다고 느껴지면 조금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있을 때 갈릴리 사람들 몇 명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아마 유월절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월절만이 평신도들이 자기 소유의 동물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절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제사를 지내던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서 그들의 피와 제물의 피를 섞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대뜸 그렇게 죽은 갈릴리 사람들은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었다고 정죄하였습니다. 그런 죽음은 곧 죄 때문이라는 것이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었던 것입니다.
또 실로암이라고 하는 곳, 예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었던 사건으로 유명한 곳에서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래 실로암은 기혼이라는 곳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공급된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였습니다. 이 저수지는 예루살렘 성의 남쪽과 동쪽 성벽에 접해 있었고 이 지역을 보호하기 위한 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라도가 물을 좀 더 잘 보내기 위해서 수로를 건설했는데 그 때 그만 그 탑이 무너졌고 그 때문에 열여덟 명이 깔려 죽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찬가지로 그 열여덟 명은 죄가 많아서 그렇게 죽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고와 사고에 대한 해석을 들으시고는 그 해석을 부인하셨습니다. 그 사고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죄인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을 예수께서는 거부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뜻밖의 사고를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면서 나는 괜찮다고 안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사고와 사건들의 의미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입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보면서, 특히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사고당한 그들만 죄가 많아서 특별히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만 죄가 많아서 어려움을 겪지 나는 죄가 없어서 괜찮다고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을 당할 지 누가 알 수 있느냐고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안심하고 있습니다. 또 교통사고나 다리의 붕괴 등은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안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 우리가 온통 지진 이야기에 휩쓸려 있을 때 우리 나라 남녘땅에 가뭄이 들어 먹을 물도 없고 씻을 물도 없고 심지어는 봄에 모심을 물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흥청망정 쓰고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아끼지 않고 있는 우리들이 바로 남쪽에 사는 우리의 동족들이 지금 비가 오지 않아서 저수지가 말라가고 빨래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심지어 먹을 물까지도 몇 킬로 걸어가서 양동이 하나만큼 받아오는 현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겨울 수련회를 가서 성경통독을 하던 중에 아모스의 말씀을 읽었는데 그 책에 이런 말씀이 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리는 비도 너희에게는 내리지 않았다. 또 내가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지 않았다. 어떤 들녘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들녘에는 비를 내리지 않아서 가뭄이 들었다. 두 세 성읍의 주민들이 물을 마시려고, 비틀거리며 다른 성읍으로 몰려갔지만, 거기에서도 물을 실컷 마시지는 못하였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아모스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너무 많이 지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는데 그 벌이 가뭄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실 물이 없어서 다른 동네로 물먹으러 몰려갔는데 그곳에도 물이 넉넉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본에서의 지진, 우리나라에서의 가뭄. 이것은 모두 바로 오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경고인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도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는 시간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국 성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성경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성경통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함께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