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13 / 갈릴리로 가겠다 / 마태복음 26:31-35
갈릴리로 가겠다(2009. 12. 13)
본문) 마태복음 26:31-35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기원전 587년 남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열왕기하 25장에 남아 있는 기록처럼 유대 땅에는 극히 적은 무리가 남아서 간신히 먹고 살아갈 정도로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근위대장은,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 . . . . 이렇게 유다 백성은 포로가 되어서 그들의 땅에서 쫓겨났다.” (열왕기하 25:12, 21)
이제 역사는 끝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을 완전히 버리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수천 리 떨어진 이국만리 땅에 포로로 잡혀간 땅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채 역사에서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유대 땅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 죽고 그 후손들만 남아 이제 돌아갈 생각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538년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바빌론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다시 한 번 통일하면서 유대인들을 고향땅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침내 50면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제일 먼저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다리우스 왕 6년(기원전 516년)에 성전 건축을 마치고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2성전, 이름하여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그런데 다리우스 왕이 즉위하고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해 힘을 보태주던 기원전 520년, 그러니까 다리우스 왕 2년에 한 사람의 예언자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도대체 왜 예루살렘이 멸망했었는지, 그 아름다운 성전이 왜 파괴되었는지를 백성들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구원 역사를 이루실 것인지를 환상 가운데 보았고, 그것을 선포했습니다. 그 예언자의 이름은 스가랴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유대 민족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악한 길과 악한 행동을 했기에 하나님께 심판받았다고, 그러니 너희들도 조상들의 악한 길과 악한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아무리 성전을 짓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라고 그러니 이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선포했습니다.
“다리우스 왕 이년 여덟째 달에, 주님께서, 잇도의 손자이며 베레갸의 아들인 스가랴 예언자에게 말씀하셨다. ”나 주가 너희 조상들에게는 크게 화를 내었다. 그러므로 너는 백성들에게 알려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나에게로 돌아오너라.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간다.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는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아라. 일찍이 예언자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너희의 조상에게, 악한 길과 악한 행동을 모두 버리고 어서 돌이키라고 외쳤다. 그러나 너희 조상은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나 주의 말이다. “ (스가랴서 1:1-4)
또한 7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 구체적인 까닭이 나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스가랴에게 말씀하셨다.
‘나 만군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공정한 재판을 하여라.
서로 관용과 자비를 베풀어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지 말고,
동족끼리 해칠 생각을 하지 말아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나, 사람들은 듣지 않고, 등을 돌려 거역하였다. 귀를 막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음이 차돌처럼 굳어져서, 만군의 주님께서, 이전 예언자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전하게 하신 율법과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만군의 주님께서 크게 노하셨다. 주님께서 부르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렇다. 이제는 그들이 부르짖어도, 내가 결코 듣지 않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는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모든 나라로, 그들을 폭풍으로 날리듯 흩었고, 그들이 떠난 땅은 아무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아름다운 이 땅을 거친 땅으로 만들었다.’ “ (스가랴서 7:8-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번 하신 약속을 기억하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구라도 시온을 대적하면 용서하지 못할 만큼
나는 시온을 열렬히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살겠다.
예루살렘은 ‘성실한 도성’이라고 불리고,
나 만군의 주의 산은 ‘거룩한 산’이라고 불릴 것이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예루살렘 광장에는 다시,
남녀 노인들이 한가로이 앉아서 쉴 것이며,
사람마다 오래 살아 지팡이를 짚고 다닐 것이다.
어울려서 노는 소년 소녀들이 이 도성의 광장에 넘칠 것이다.“ ” (스가랴서 8:1-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회복사키기 위해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 것인가? 그것은 바로 메시아를 보내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와서 예루살렘을 다시 하나님의 도성으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가랴 예언자는 그 유명한 선언을 하게 됩니다.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만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스가랴서 9:9-10)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어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폭군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병거와 군마와 칼을 없애고 평화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뜻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를 보낼 것인데 칼이 일어나 목자로 오는 메시아를 쳐서 죽인다는 것입니다.
“칼아, 깨어 일어나서,
내 목자를 쳐라.
나와 사이가 가까운 그 사람을 쳐라.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 어린 것들을 칠 것이다.“ (스가랴서 13:7)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도대체 왜 목자를 쳐서 죽게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시험을 통해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온 땅을 치면,
삼분의 이가 멸망하여 죽고,
삼분의 일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나 주가 하는 말이다.
그 삼분의 일은 내가 불 속에 집어넣어서
은을 단련하듯이 단련하고,
금을 시험하듯이 시험하겠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그들에게 응답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그들은 나 주를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스가랴서 13:8-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불 속에 집어넣어서 은을 단련하듯이 단련하고, 금을 시험하듯이 시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험과 단련을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고, 시험을 이긴 자들은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나면 마침내 주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예루살렘에서 생수가 솟아나서,
절반은 동쪽 바다로,
절반은 서쪽 바다로 흐를 것이다.
여름 내내, 겨울 내내,
그렇게 흐를 것이다.
주님께서 온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섬기고,
오직 그분의 이름 하나만으로 간구할 것이다.“ (스가랴서 14:8-9)
여러분!
바로 이 예언자 스가랴의 예언이 이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올리브 산으로 가셨을 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내가 목자를 칠 것이니,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하였다.“
보십시오.
오늘의 본문 밑에 나와 있는 관주를 보면 이 구절이 바로 스가랴서 13장 7절의 말씀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예언이 마지막 날 밤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죽으실 것이지만 죽음이 끝은 아닙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요,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 길만이 다시 사는 길이기에, 부활에 이르는 길이기에 주님은 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음만이 희망과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기서도 주님이 가실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두 다 “내가 살아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깨닫지도 못했고,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주님을 친다고 하니까 엉겁결에 나서서 나는 아니라고 떠들고 나선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와중에서도 은근히 다른 제자들과 자기를 차별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혹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버릴지 모르지만 나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맹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왜 하필 세 번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한 두 번은 실수로 그럴 수 있다쳐도 세 번씩이나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결코 실수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어쨌든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다시 한 번 큰소리쳤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 의하면 베드로는 두 번 대답하면서 그때마다 “절대로” 라는 단어를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철저하게 약속했고, 또 그것이 그의 진심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는데 그들 역시 진심으로 그런 각오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마태복음 26:56)
오늘의 본문이 35절까지이고 달아났다는 구절이 56절이니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자들은 자기들의 맹세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물론 베드로까지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다 참으로 나약한 인간들이었습니다. 단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자기들이 그렇게 쉽게 주님을 버리고 떠나가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너무나 쉽게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노라고 큰소리칠 만큼 뻔뻔스러우면서도 나약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시고 그 모든 허물까지 품어주시고, 안아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우리들도 제자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오늘의 본문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읽을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 하나, 주님께서는 왜 살아난 뒤에 갈릴리로 간다고 말씀하셨는가?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분명히 태어나기는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살기는, 그래서 고향은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었습니다.
“요셉이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요셉은, 아켈라오가 그 아버지 헤롯을 이어서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가서,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 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마태복음 2:21-23)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한 곳도 역시 갈릴리였습니다.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다고 하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는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마태복음 4:12-13)
또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무덤을 찾아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천사와 예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찾는 줄 안다. 그는 여기에 계시지 않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는 살아나셨다. 와서 그가 누워 계시던 곳을 보아라. 그리고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다.’ ” (마태복음 28:5-7)
“그 때에 예수께서 그 여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나의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 ”(마태복음 28:10)
그리고 마태복음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도 바로 갈릴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태복음 28:16-17)
그렇습니다.
유대 지방은 종교지도자들의 땅이요, 로마 권력자들의 땅이요, 지배계급의 세상입니다. 예수를 잡아 죽인 자들의 세상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지방은 병자들, 가난한 자들, 로마에 저항하는 자들, 쫓겨난 자들의 땅이었습니다. 예수는 바로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부활하신 후 갈릴리로 가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즘 강남의 모 교회가 2,100억 원을 들여 교회건축을 한다고 해서 큰 논쟁이 붙어 있습니다. 제 3자가 뭐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강남이 곧 유대 지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곳에 과연 예수께서 계실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에 과연 예수가 살아 계실까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 예수를 찾고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갈릴리는 어디인가? 더 이상 헤매지 말고 주님을 찾아 이 시대의 갈릴리로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