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8 년도

2008. 7. 27 / 잔치를 예비하다 / 마태복음 13:33

람보 2 2015. 4. 3. 16:38

잔치를 예비하다 / 2008. 7. 27


본문) 마태복음 13:33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으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표준새번역 개정판)



사실 지난주에 우리가 보았던 겨자씨 비유와 오늘의 본문인 누룩 비유는 아주 비슷하게 보입니다. 겨자씨라는 작은 것과 큰 나무라는 비교, 아주 작은 누룩 덩어리와 크게 부풀어 오른 빵 덩어리의 비교 등으로 보아 이 두 가지의 비유는 같은 내용의 말씀으로 보여 집니다. 시작은 지극히 작지만 나중에는 아주 커질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비유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두 개의 비유를 흔히 쌍둥이 비유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겨자씨는 자라서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되어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누룩은 끝내 감춰진 채로 남습니다. 빵이 부풀어 오르면 누룩은 사라지고 어디에서도 누룩이 들어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누룩의 효력이 너무나 강해서 지극히 작은 양으로도 놀라운 효과를 나타내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 어쨌든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이어서 누룩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넣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마침내 밀가루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쨌다고요? 주님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은 엉뚱한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유대인들이 다 잘 알고 있고, 또 하늘나라와 비교하기에 적당한 백향목 대신 느닷없이 겨자씨를 끄집어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는 또다시 느닷없이 누룩이라니요? 예수께서는 도대체 누룩의 정체를 몰라서 그러시는가요?


여러분!

하늘나라를 이야기하려면 좋은 것으로 비유를 들어야지요.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백향목은 유대 사회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가 좋고, 가장 단단해서 유대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귀하게 쓰이는 나무입니다. 그래서 성전이나 궁전 등은 백향목으로만 짓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하늘나라는 백향목과 같다”라고 해야 말이 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겨자씨라고 말씀하셨을까? 또 누룩이란 유대사회에서 결코 좋은 의미로 쓰인 적이 없는데 왜 누룩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구약시대 때는 물론이고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누룩을 결코 좋은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누룩이 비록 빵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누룩을 부패와 악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누룩의 역할이 밀가루를 발효시키는 것인데 발효란 결국 썩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구약에서 누룩은 어떤 희생제물과도 관련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바치는 희생제물의 피를 누룩 넣은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 (출애굽기 23:18)

이 구절은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곡식을 바치는 제사로 소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간단한 소제물이라도 누룩 넣은 것을 엄격히 금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주에게 바치는 곡식제물은, 어떤 것이든지, 누룩을 넣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나 주에게 살라 바치는 제사에서, 어떤 누룩이나 꿀을 불살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레위기 2:11)

“곡식제물을 바치는 규례는 다음과 같다. 그 제물은 아론의 아들들이 주 앞 곧 제단 앞에 바쳐야 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한 제사장이 곡식 제물에서 기름 섞인 고운 밀가루 한 줌과 곡식 제물에 얹어 바친 향을 모두 거두어서, 곡식 제물을 모두 바치는 정성의 표시로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면, 그 향기가 주를 기쁘게 할 것이다. 나머지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먹을 몫이다. 누룩을 넣지 않고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한다. 곧 그들은 회막을 친 들 안에서 그것을 먹어야 한다. 절대로 누룩을 넣고 구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내게 살라 바치는 제물 가운데서 내가 그들의 몫으로 준 것이다. 그것은 속죄 제사나 속건제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장 거룩한 것이다.”  (레위기 6:14-1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는 거룩한 것이기에 누룩을 넣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누룩은 불결한 것이기에 거룩한 제물에 집어넣지 말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월절 기간에는 아예 누룩을 소유하거나 집안에 두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시며 모세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어야 한다. 그 첫날에 너희는 집에서 누룩을 말끔히 치워라. 첫날부터 이렛날까지 누룩을 넣은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에서 끊어진다. 너희는 첫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이렛날에도 거룩한 모임을 열어라. 이 두 날에는, 너희 각자가 먹을 것을 장만하는 일이 아니면,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바로 이 날에 내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 온 이스라엘 지파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 날을 영원한 규례로 삼아서 대대로 지켜야 한다. 너희는 첫째 달 열 나흗날 저녁부터 그 달 스무하룻날 저녁까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이레 동안에는 너희 집 안에 누룩이 있어서는 안 된다. 누룩 든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외국인이든지 본국인이든지,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진다. 누룩을 넣은 것은 아무것도 먹지 않아야 한다. 너희가 어디에서 살든지, 이 기간 동안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출애굽기 12:15-20)


그렇습니다.

무교절과 유월절 기간에 누룩 든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셨기에 예수님 당시는 물론이요, 모세 시대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에 결코 누룩 든 빵을 먹지 않습니다.

그뿐입니까?

예수님 자신도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그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그리고 헤롯당의 누룩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는 예수께서도 누룩의 부정적 의미를 알고 계셨음을 나타냅니다.

“제자들이 건너편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누룩을 주의하고 경계하여라.’ ”  (마태복음 16:5-6)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그들이 탄 배 안에는 빵이 한 개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  (마가복음 8:15)


또한 사도 바울은 누룩에 대한 의미를 확대시켜서 묵은 누룩을 치워 버리고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성실과 진실을 지키자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자랑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적은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새 반죽이 되기 위해서,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십시오. 사실 여러분은 누룩이 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의 유월절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 곧 악의와 악독이라는 누룩을 넣은 빵으로 절기를 지키지 말고, 성실과 진실을 누룩으로 삼아 누룩 없이 빚은 빵으로 지킵시다.” (고린도전서 5:6-8)


지금까지 살펴본 이 모든 성경말씀을 놓고 본다면 누룩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단어로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누룩은 부패와 악의 상징이요, 악의와 악독의 표현이며, 모든 것을 썩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으로 어찌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니 예수께서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청중들은 모두 다 크나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예수께서는 “누룩”이라는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려 했을까요? 이는 한 마디로 예수께서 일으키셨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도발적이며 역설적인 진면목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특히 로마 지배세력이나 유대의 기득권 세력인 사두개파, 바리새파, 헤롯당들이 보기에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무언가 위험하고, 사회질서를 부패시키는 불온한 운동으로 보여지고 위험하게 비춰지는 것을 예수는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보기에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 함께 벌이는 하나님 나라 운동은 누룩과 같은 것이요, 무언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여졌던 것입니다. 예수는 그것을 아시고도 오히려 담대하게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너희들이 보기에 우리는 누룩과 같다. 너희들의 눈에는 우리가 위험하고 불순하게 보일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다고 큰소리치고 우리는 더럽다고 손가락질 하고 있다. 그러나 보아라. 하늘나라는 누룩과 같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당시 기득권 세력들로부터 끊임없이 멸시받고 조롱당하고 무시당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향해 말했습니다.

“예수, 가진 것도 없는 놈”

“예수, 배운 것도 없는 놈”

“예수, 죄인들과 세리들과 여자들을 제자라고 데리고 다니는 놈”

그렇게 예수는 끊임없이 무시당하고, 멸시당하고, 조롱당했습니다. 또 예수의 제자들 역시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걸핏하면 안식일 어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와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한다는 하나님 나라운동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무시당했습니다. 또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 성과가 처음에는 너무나 미미했기에 하나님 나라 운동의 일꾼들은 끊임없이 좌절하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가루 서 말 속에 살짝 섞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가루 서 말입니까? 가루 서 말이라면 한 가족이 먹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이 아닙니까? 여기 “서 말”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σάτα τρια” 즉 “3 세아 또는 3 스아”인데 구약에 의하면 “3 세아”가 “1 에바”이고 이는 40리터 가까이 되는 양입니다. 그리고 밀가루 40리터로 빵을 만들면 적어도 100명은 먹는다니까 이것은 한 여자가 집안에서 식구들을 위해 빵을 만들기에는 너무나 많은 양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는 굳이 “가루 서 말 속에”라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여러분!

구약에 보면 바로 “가루 서 말”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 등장하는 장면들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이 손님 셋을 맞이하는 사건 가운데 일어난 것인데 손님 셋 중 한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장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지고 와서, 반죽을 하여 빵을 좀 구우시오.”  (창세기 18:6)


나머지 둘은 사사 기드온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관계되는 장면입니다.

“기드온은 즉시 가서, 염소 새끼 한 마리로 요리를 만들고, 밀가루 한 에바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만들고, 고기는 바구니에 담고, 국물은 그릇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로 가지고 가서 천사에게 주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그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그 위에 부어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였더니, 주님의 천사가 손에 든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에 댔다. 그러자 불이 바위에서 나와서, 고기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살라 버렸다. 그런 다음에 주님의 천사는 그 앞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사사기 6:19-21)

“마침내 아이가 젖을 떼니. 한나는 아이를 데리고, 삼 년 된 수소 한 마리를 끌고, 밀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가 든 가죽부대 하나를 가지고, 실로로 올라갔다.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데리고 실로에 있는 주님의 집으로 갔다.”  (사무엘기상 1:24)


그러니까 “서 말” 또는 “한 에바”라는 분량은 하나님의 나타나심 또는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사건과 관련해서만 나타납니다. 이는 곧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서 말”이라는 표현 역시 그냥 생각없이 쓰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를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실망하고 좌절하는 제자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사람들의 상식과 낡은 관념을 깨뜨려 버리셨습니다. 원래 누룩을 넣어 “발효된” 것은 속되고 부패한 것을 가리켰으며 누룩없이 “발효되지 아니한” 것은 거룩하고 깨끗한 것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러한 누룩의 발효작용을 오히려 당신이 행하시는 하나님 나라 운동의 확산 또는 영향력을 상징하는 데 이용하신 것은 유대인들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충격적인 도전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은 지극히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인다. 그리고 위험하고 불순하다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보아라, 결국 나는 역사와 세상을 변화시켜 새 것으로 만드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니 의심을 떨쳐버리고 용기와 확신을 가져라.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끝으로 하나 더,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왜 밀가루 서 말이라고 하는 엄청난 양에 누룩을 넣었을까요? 그녀는 단순히 가족들이 먹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녀는 잔치를 예비했던 것입니다. 바로 복음서가 말하는 바 “천국잔치”라고 부르는 그 잔치를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바로 예수 자신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천국잔치를 예비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잔치로 초대하시는 분이십니다. 밀가루 서 말에 누룩을 집어넣고 빵이 부풀기를 기다리면서 그 빵을 함께 먹을 사람들을 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와서 나와 함께 천국잔치에 참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