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2. 3 / 세 가지 시험(1) - 무엇으로 사는가? / 마태복음 4:1-11
세 가지 시험(1)
- 무엇으로 사는가? -
마태복음 4장 1-11절/2006년 12월 3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공생애 이전 생애, 즉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의 30년에 걸친 예수의 삶의 이야기가 왜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그 부분이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아예 예수의 탄생 이야기도 기록하지 않았고,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 탄생에 얽힌 이야기들이 기록된 후에 한 삼십 년을 건너뛰고, 그러니까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나오지 않다가 느닷없이 세례 요한의 등장에 때맞추어 예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기자는 그것이 몇 살 때인지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마태복음 기자는 뒤에 가서 예수의 집안 배경을 밝히고 있기는 합니다.
“예수께서 자기 고향에 가셔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놀라서 말하였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그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 이 사람은 복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는 분이 아닌가? 그의 아우들은 야고보와 요셉과 시몬과 유다가 아닌가? 또 그의 누이들은 모두 우리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마태복음 13장 54-56절)
그러나 여러분!
이런 이력서 내용 말고, 가족사항 같은 지극히 일반적인 내용 말고, 예수께서 공생애 전에 어떤 일을 행하셨고, 어떤 생각을 하셨고, 누구를 만나셨는지 등을 좀 적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복음서 저자들은 아무런 기록도 남겨 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누가복음 기자만 예수께서 열두 살 때 성전에 올라가셨던 사건을 기록해 놓았고, 또 다음과 같은 기록을 통해 예수님의 나이를 밝혔을 뿐입니다.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실 때에, 그는 서른 살쯤이었다." (누가복음 3장 23절)
그런데 이걸 궁금해 한 것이 저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이걸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의 행적을 기록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도마에 의한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라든가 '인도로 간 예수' 같은 책들입니다. 이것들은 물론 소설 같은 창작물들이지요. 그래서 그것들은 경전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자, 어쨌든 하나의 궁금증을 남겨 놓은 채 오늘의 본문을 살펴봅시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
(마태복음 4장 1-2절)
여러분!
저는 오늘의 본문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마태복음 3장 13-17절까지의 사건, 즉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과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유혹 사건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고리가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단어입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4장 3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
그렇습니다.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는 바로 예수, 네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던진 물음의 전제 조건이 바로 예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자각하고 계셨음을 나타낸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를 통틀어서 유일하게 예수의 공생애 이전에 있었던 사건을 기록해 놓은 누가복음 2장의 기록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유월절, 절기 관습을 따라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던 예수의 부모는 그만 돌아오는 길에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찾다가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지요. 부모님은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는데 이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말했습니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여러분, 바로 그때 예수께서 한 말을 기억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참으로 당돌하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누가복음 2장 49절)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열두 살 먹은 소년 예수가 이미 그 나이에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예수에게 이미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자의식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는 자기를 찾아 헤맸던 부모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라고 되물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필연적으로 던져질 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할 방법이 없다면, 그래서 자기 혼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메시아이기는커녕 과대망상증 환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예수께서 열두 살 때의 사건 이후 한 20년 동안 바로 이 물음을 갖고 치열한 내적 싸움을 벌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인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걸 증명할 방법은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사람들이 믿어줄 것인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소명은 무엇인가?
내가 과연 내게 맡겨진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이십년 동안 던졌던 예수의 이 물음을 요약해 놓은 사건이 바로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광야에서의 유혹 사건' 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 20년을 압축해서 마태복음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밤낮 40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렇다면 왜 40일인가요? 40이라는 숫자는 성서적으로 보면 고난을 나타내고, 동시에 '고난을 통한 거룩' 을 나타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신 후 40년을 광야에서 보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광야를 지나온 사십 년 동안,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들을 광야에 머물게 하신 것은, 당신들을 단련시키고 시험하셔서, 당신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당신들의 마음속을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명기 8장 2절)
또한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금식하면서 언약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기간이 40일이었습니다.
"모세는 거기서 주님과 함께 밤낮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출애굽기 34장 28절)
예언자 엘리야는 850 대 1의 싸움에서 승리하고도 왕비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하여 광야로 숨어들어가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였는데, 천사가 주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걸어갔으니, 그 기간이 사십일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인 호렙 산에 도착하였다.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 (열왕기상 19장 8-9절)
그뿐 만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전까지 이 땅에 남아계씨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는데 그 기간이 바로 사십 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3절)
그렇습니다.
성서에서 '사십' 은 고난의 기간이며, 동시에 '고난을 통해 거룩해 지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유혹사건도 사십 일로 기록된 것입니다. 오늘날 교인들 중에 40일 금식했다고 하면서 그것을 자랑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요.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자, 이제 예수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확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러한 확증을 받게 되자 예수는 곧바로 하나의 물음에 부닥쳤습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으며 메시아가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어떤 메시아가 되라고 부르시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둘레에 널려 있는 빵 모양의 돌멩이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하는 자는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왜 이 돌멩이를 빵이 되게 하지 않느냐?'
'메시아라는 인물이라면 적어도 그런 능력은 갖고 있는 것 아니냐?'
'가난과 압제에 찌든 저 팔레스타인의 민중들을 보아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배고파하는 저 불쌍한 백성들을 보아라. 바로 저 백성들에게 민생고를 해결할 먹거리를 주어라. 그러면 그들이 너를 위해서 무엇인들 못하겠느냐?'
'먼저 그들의 굶주림을 채워주어라. 그리고 나서 그들의 영혼을 채워주어라. 그러면 그들은 자기네들을 도탄에게 건져줄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소리지르며 너를 따를 것이다.'
'민중들이 메시아라는 인물한테 바라는 것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니냐?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면 그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무어냐?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현실적인 방도 아닌가?'
‘그러니까 네가 메시아인 것을 증명하는 첫 번째 방법은 바로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거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거다.‘
그렇습니다.
일찍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노예로 살던 이집트를 벗어나 광야로 들어선 히브리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먼저 빠졌던 시험, 그것도 바로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 먹거리의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던 날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
(출애굽기 16장 1-3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 이에 모세가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 하고 책망하였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의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 (출애굽기 17장 1-3절)
그렇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이든 예수 시대의 무리들이든, 아니 사실은 오늘날 신앙생활 한다는 우리들까지 메시아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 사항은 배부르게 먹고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예수 믿고 복 받아서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와서 첫 번째 질문, 그것이 바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예수는 이럴 능력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것을 직접 보여주신 사건이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을 일으키신 분이 돌들로 떡이 되게 하는 일을 하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때 다른 소리가 들려옵니다. 곧 자신의 유다전통에서 더 심오한 진리를 발견한 예수의 참 목소리였습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신명기 8장 3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예수는 분명히 빵이 필요없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빵은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빵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그 무언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좀 더 근본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것은 바로 물질적 안정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빵을 나누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되게 하는 것. 그리고 성경에는 그 예들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세리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빵으로만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빵을 구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그는 자기의 가진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내놓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되게 했습니다.
광야에서 한 소년이 자기가 먹기 위해 도시락으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싸왔습니다. 그러다 아무도 먹을 것을 내놓지 않을 때 그것을 내놓았다가 거기에서 일어난 유명한 사건, 그것이 바로 오천 명이 배부르게 먹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았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심으로써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사건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내가 무엇으로 사는가를 묻는 과정입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묻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만약 빵이 내 인생의 목표라면 그는 사탄의 첫 번째 유혹에 넘어간 것이며 그는 곧 사탄의 제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심으로써 사탄의 첫 번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기심으로써 우리들에게도 삶의 목표를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지금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가 진정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