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강해(06.9.17-10.4.18)/2006 년도

2006. 9. 17 / 새로운 역사의 시작 / 마태복음 1:1

람보 2 2015. 3. 31. 23:05

새로운 역사의 시작


마태복음 1장 1절 / 2006. 9. 17



 오늘부터 우리는 함께 마태복음을 읽어가려 합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함께 마태복음을 읽어가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깨닫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크게 일어나게 되기를 빕니다.


  지난 주로 요한복음을 마치면서 그동안 했던 설교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97년 4월부터 마가복음 강해를 시작해서 98년 12월에 마쳤습니다. 잠깐 동안 빌립보서 강해를 하고나서 99년 10월부터 누가복음 강해를 시작해서 2003년 4월까지 무려 173회에 걸쳐 설교를 했더군요. 이어서 사도행전과 아모스서를 하고나서 요한복음 강해를 시작한 것이 2005년 1월이었습니다. 그것이 자난 주에 끝났으니까 1년 9개월 정도 걸린 셈이고, 약 80주 정도 걸린 것으로 계산됩니다.


  그러니까 네 복음서 중에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했으니까 마태복음만 남은 것입니다. 이렇게 살펴보면서 도대체 왜 마태복음만 남겨 놓았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MBTI로 밝혀지는데 저는 주기능이 감정인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MBTI 검사를 하면 나오는 열여섯 가지 유형이 모두 다 주기능, 부기능, 제3기능, 열등기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중에 저는 감정이 주기능인 유형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사고가 열등기능이지요. 그런데 네 복음서를 분석해 보면 마태복음이 전형적인 사고형들의 복음서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마태복음에 대한 접근이 불편했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러저런 핑계를 대면서 마태복음 강해를 미루어온 것이지요. 어쨌든 제 열등기능인 사고를 최대한 발휘해서 마태복음을 읽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마태복음 강해를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말씀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주신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공동체에게 주신 것이고, 신약은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에게 주신 책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빌레몬서와 같이 받는 사람이 개인인 것으로 되어 있는 책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그 개인을 통해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함께 읽도록 주어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왜 이 말씀을 미리 드리느냐 하면 성경은 결코 한 개인이 그것을 읽고 나 혼자만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해서 주어진 책이 아니라 성서를 읽는 독자들이 속해 있는 공동체가 함께 말씀을 읽고, 그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깨닫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책임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제 설교를 들어오셨거나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복음서를 강해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Key Word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것도 흔히 말하는 “예수 천당”이라고 해서 죽음 후의 세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서”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마태복음을 통해서도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갈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이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를 찾아갈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바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면 당연히 우리는 죽음 후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의 특성상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나라” 또는 “천국”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말씀드리게 될 것입니다.


  자, 이제부터 마태복음의 본문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그의 책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마태복음 1장 1절을 읽고 나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다른 세 복음서의 시작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네 복음서가 그 시작이 전혀 다르고, 그 다른 것을 통해 각자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복음 그 자체란 것을 처음부터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증인이 바로 세례 요한인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뜻밖에도 조금 기다란, 다른 복음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서문으로 시작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차례대로 이야기를 엮어내려고 손을 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요 전파자가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 엮어 냈습니다. 그런데 존귀하신 데오빌로님, 나도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 각하께 그것을 순서대로 써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각하께서 이미 배우신 일들이 확실한 사실임을 아시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누가복음 1:1-4)

  그러니까 누가복음 기자는 역사적 사실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자기 나름대로 남기기 위해 붓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막 끝낸 요한복음은 또 전혀 다른 말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 1:1-3)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말씀’이신 하나님이셨고, 예수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위의 세 복음서와는 전혀 다르게 첫 구절을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

  그리고는 이어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로 시작해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가 태어나셨다”로 끝나는 그 유명한 족보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된 교인들이 성경책을 읽기는 해야겠는데 아무래도 구약은 너무 어렵기도 하고 분량도 많으니까 대개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큰 맘 먹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처음부터 나오는 것이라고는 “낳고 낳고” 밖에 없으니까 그만 질려서 1장도 채 읽지 못한 채 그만두는 교인들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을 “낳고복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어쨌든 그렇다면 도대체 족보를 통해 그리고 그중에서도 1장 1절을 통해 마태복음 기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족보는 그렇게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한테도 ‘전주이씨 대동보감’이라고 해서 세 권짜리 족보가 있습니다마는 그것이 제 딸아이들한테 무슨 의미로 남겠습니까? 그냥 제 대에서 끝나고 말겠지요.

  며칠 전에 전주이씨 대동회라는 데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족보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 새로 나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 질 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이미 있는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저의 아버지 형제분들 이름도 나와 있지 않고, 또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름도 틀리는데 그런 족보를 내가 왜 사느냐구요. 살 필요도 느끼지 않고, 또 그럴 돈도 없지요.


  그러나 여러분!

  마태복음서가 기록된 고대 동방의 독자들에게 족보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족보는 그들에게 신분증 구실을 했으며, 한 개인을 사회적, 역사적 구조 속으로 삽입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개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누구이고, 그가 어느 집안 출신인지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족보에 이름이 있으면 그것은 곧 신분, 지위를 물려받는 것이고,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능한 한 멀리까지, 또 원하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마태복음에는 다윗을 거쳐서 아브라함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아브라함과 다윗인가요? 물론 아브라함은 모든 유대인들의 조상이요, 다윗은 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니까 그들의 자손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인가요?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창세기 12:1-3)


  또한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친히 맹세한다. 네가 이렇게 너의 아들까지,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창세기 22:16-18)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하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래서 예수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누구입니까? 유대 역사상 실질적인 첫 번째 왕이요,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해 주신 왕입니다.

  “이전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사사들을 세워준 때와는 달리, 내가 너를 너의 모든 원수로부터 보호하여서, 평안히 살게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나 주가 너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을 이제 나 주가 너에게 선언한다. 너의 생애가 다하여서, 네가 너의 조상들과 함께 묻히면,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바로 그가 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며, 나는 그의 나라의 왕위를 영원토록 튼튼하게 하여 주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사무엘기하 7:11-14)


  물론 이 구절은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마는 이런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아가 오리라 기대했고,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환호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바로 복의 근원이시오,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분임을 선포하는 것, 그것이 바로 1절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복의 근원됨의 역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것이오,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다윗 왕의 자손으로서의 메시아가 바로 예수시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계보’ 또는 ‘족보’라고 번역된 단어는 희랍어로 “ϒενέσεως”인데 이 단어는 기가 막히게도 ‘태어남, 탄생’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는 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의 제목(Genesis)와 너무나 유사한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가 복의 근원이시오, 메시아이실 뿐만 아니라 예수 안에서 창조 이후의 지난 역사가 요약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수의 인격 안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그의 긴 책을 통해 끊임없이 과거의 역사와 예수로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역사를 비교해서 보여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역사하셨다면 이제 예수를 통해 복음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임을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역사에 이름을 붙였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마태복음을 통해 주님께서 새롭게 시작하신 역사를 만나시게 되기 바랍니다.

  이제 마태복음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체험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태복음을 통해 예수를 만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은총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